김병민 과학칼럼니스트

업무상 한국에 방문한 외국인과 술자리를 자주 한다. 그때마다 늘 소개하는 우리 술이 있다. 바로 막걸리다. 그들에게 막걸리(Makkoli)라는 고유명보다 ‘쌀 포도주(Rice Wine)’라는 별명이 더 친근하다. 그렇다. 막걸리와 포도주는 발효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술이다. 어느 날 한 친구가 물었다. 막걸리도 포도주와 비슷한 제조방식인데 도수가 6도 정도 낮은 이유가 뭐냐는 거다. 발효주에 관해 뭘 좀 아는 친구다. 원래 막걸리도 포도주와 비슷한 도수인 12도 정도다. 단지 포도주처럼 과당이 아니라 전분과 같은 탄수화물을 재료로 한다. 누룩을 사용하고 점도가 생긴다. 걸쭉하면 술의 물성이 떨어진다. 마시기 좋게 하려고 물을 타서 알코올 도수가 낮아졌을 뿐이다. 그런데 포도주와 막걸리를 포함해 청주 같은 발효주는 왜 12도 정도일까. 다른 술에 비해 알코올 도수가 그리 높지 않은 이유가 있다. 발효는 화학반응이다. 분명 과학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다.

포도주처럼 과일을 이용하지 않는 막걸리나 약주를 만드는 경우 쌀과 같은 전분을 사용한다. 쌀을 익히고 누룩을 섞는다. 고분자인 전분을 효모가 이용할 수 있는 저분자인 단당류나 이당류로 분해해야 한다. 누룩 속에는 알파 아밀라아제 같은 효소가 있어서 전분을 분해한다. 포도당을 만들기 위해서다. 포도주는 과일을 이용해 바로 과당을 사용할 수 있어 이 과정을 건너뛸 수 있다. 이제 단세포 미생물이 개입한다. 효모(이스트)가 바로 이것이다. 생명체는 단세포든 인간처럼 복잡한 다세포 생물이든 연료를 태워 동작한다. 그 연료가 ATP(아데노신삼인산) 분자다. 미생물은 ATP 두 개에서 떼어낸 인산기를 포도당에 붙여 다른 물질을 만든다. 당을 분해한다고 해서 해당(解糖)이라고 한다. 그리고 일련의 화학반응을 거쳐 당은 ‘프루브산’이 된다. 이 과정에서 수소 양성자 두 개를 잃고 인산 네 개가 남는다. 그 인산으로 ATP를 다시 만든다. 결국 ATP 두 개를 사용해 당을 변화시키고 ATP 네 개를 만들었다. 세포에 투자 대비 100% 이익이다. 이런 이유로 미생물은 이 과정을 지속한다. 막걸리와 달리 포도주를 만들 때는 효모를 넣지 않았다고? 포도주를 만들 때 껍질째 으깨 넣는다. 술의 색깔 때문이 아니라 껍질에 효모가 있다.

이제 발효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해당 과정 중에 잃어버린 수소 양성자가 여기에 사용된다. 효모는 피루브산 분자를 이산화탄소와 아세트알데하이드로 분해한다. 이 아세트알데하이드에 수소를 붙여 에탄올을 만든다. 이산화탄소는 공기 중으로 날아가고 술이 만들어진 것이다. 막힌 병 안에서 발효가 일어나면 이산화탄소가 술에 녹아 들어가고 병을 열면 압력이 낮아져 뻥 하고 튀어나온다. 바로 샴페인이다. 빵을 만들 때도 밀가루와 설탕에 효모를 넣어 반죽한다. 그리고 숙성과정을 거치는데 결국 과정이 같다. 빵이 부풀어 오르는 건 바로 이산화탄소 때문이다. 그리고 알코올은 빵을 구우면 열에 의해 날아가 버린다. 어릴 적에 먹었던 술빵은 발효가 많이 된 것이다.

이제 알코올의 농도를 보자. 그렇다면 왜 12%일까. 아직 알코올로 바뀌지 않은 재료가 넘쳐나는데 왜 효모에 의해 바뀌지 않을까? 효모를 더 많이 넣으면 100% 알코올이 되지 않을까? 답은 간단하다. 우리는 상처가 났을 때 알코올로 소독을 한다. 알코올은 미생물을 죽이는 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발효주의 알코올 농도가 12% 정도에서 유지되는 이유는 바로 이 지점에서 효모가 알코올에 의해 죽기 때문이다. 발효는 끝나지 않았다. 알코올의 발효는 또 다른 부산물을 만든다. 포도주를 나무통에 넣고 목질이 다른 여러 통을 옮겨 가며 숙성한다. 세균이 알코올을 발효해 아세트산을 만든다. 바로 초산이다. 향기가 좋다는 이탈리아어 발사믹(Balsamic)은 모데나 지방의 포도 품종으로 포도주를 담가 만든 식초에 붙여진 이름이다. 우리 몸에서도 화학 반응은 지속한다. 술을 마신 몸은 알코올을 산화시켜 초산을 만들고 다시 물과 이산화탄소로 돌려놓는다. 우리 삶의 모든 것은 화학이 지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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