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금영, 과학칼럼니스트

1964년 나이키는 스포츠 의류와 액세서리 전문기업으로 출발했다. 2000년대는 해마다 10%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했다. 이 같은 성장률은 세계 금융위기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그런데 스포츠 의류 전문기업인 나이키의 경쟁상대가 소니, 닌텐도, 애플 등을 새로운 경쟁상대로 규정했다. 

월드컵, 올림픽, PGA 등 세계 곳곳에서 열리는 스포츠 행사가 늘어나고 있는 이때, 나이키의 경쟁자가 리복, 퓨마, 아디다스가 아니란 말인가? 답은 의외로 명쾌했다. 나이키 고객층의 60%를 차지하는 청소년층이 스포츠 대신 게임에 몰두하면서 스포츠 용품 구매가 감소했기 때문이다. 

나이키와 닌텐도의 경쟁은 2006년께 시작됐다. 닌텐도가 실내에서 다양한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게임기 위(Wii)를 출시하면서부터다. 나이키의 핵심 고객층은 스포츠를 즐기는 젊은 세대다. 이들이 가정용 게임기에 몰입할수록 나이키 신을 신고 실내외 운동장에 나가 여가를 즐길 시간이 줄어들었다. 
  전혀 관련 없어 보이던 스포츠업계와 게임업계가 고객의 시간을 누가 더 많이 지배하는 가를 놓고 경쟁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가? 그동안 하나의 산업군 안에서 벌였던 치열한 ‘시장점유율’ 경쟁이 무의미해졌다. 대신 서로 달랐던 산업의 장벽이 무너지고 고객의 ‘시간점유율’ 경쟁을 벌이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과학기술의 발달이 단순히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던 수준에서 인류의 생활양식을 바꾸는 단계로 변화를 가져 온 것이다. 사용자 경험이 변하면 산업의 본질이 달라질 수 있다. 사용자를 둘러싼 환경이 달라지면서 서비스 간 경계가 무너지고 산업의 융합이 촉발된다.

이와 비슷한 일이 자동차산업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당신은 현대자동차의 경쟁상대는 누구라고 생각하는가?△BMW △GM△메르세데스-벤츠 같은 유명 해외 자동차회사일까? 단기적으로 생각하면 그렇다. 하지만 현대자동차의 생존에 가장 위협적인 존재는 애플이나 구글 같은 IT기업이 될 가능성이 크다.

자동차의 개념이 전통적인 운송 수단에서 스마트 기기로 전환됐기 때문이다. 인터넷 검색엔진으로 출발한 IT기업인 구글과 그래픽기술 전문업체인 엔비디아는 주변 사물을 인식할 수 있도록 돕는 첨단 센서와 고성능의 그래픽 처리장치의 도움을 받아 자율주행 자동차를 개발하고 있다. 기존 자동차 제조업체와 소프트웨어 기술을 갖춘 IT 기업의 전면적인 경쟁이 불가피해진 것이다.

애플은 2020년 전기자동차 생산과 출시를 목표로 ‘타이탄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애플은 시장 진출의 첫 단계로 자동차 전용 소프트웨어인 카플레이 시스템을 개발했다. 운전자는 아이튠스와 지도, 음성인식 개인비서 시스템 등 각종 아이폰 보유 기능을 자동차 내비게이션 화면을 통해 이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현대자동차도 지난 4일 ‘스마트폰 기반 디지털키’를 개발해 앞으로 출시될 신차에 순차적으로 적용한다고 밝혔다. 디지털키를 이용하면 운전자가 기존의 스마트키를 지니고 있지 않아도 스마트폰만으로 자동차의 출입과 시동, 운행, 차량 제어가 가능하다.

디지털키는 타인과 공유할 수도 있다. 자동차 소유주를 포함해 최대 4명까지 키를 사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택배 기사에게 트렁크만 열 수 있는 디지털 키를 전송해 배송 물품을 차에 실어놓게 하거나, 대리기사에게 3시간만 운행이 가능하게 설정한 키를 보내줄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빅데이터 시대로 특징되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를 맞아 한번쯤 과거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미국에서 한때 전성기를 누린 어느 마차 제조업체도 1800년대 말 자동차 기업으로 변신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만약 마차 제조업체가 자신이 속한 산업의 정의를 ‘마차 제조기업’이 아닌 ‘사람 및 사물의 이동을 지원하는 기업’으로 했다면 결과는 어땠을까. 자동차 기업도 사업영역을 ‘자동차 제조산업’이 아니라 ‘다양한 센서와 인공지능, 지리정보시스템 등을 결합한 전자산업’으로 재정의할 때가 온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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