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경 동아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절차탁마(切磋琢磨).’ 중국의 고전 시가집 ‘시경(詩經)’에 실려 있는 시에 나오는 표현이다. 원래 의미는 ‘끊고 닦고 쪼고 갈다’이지만 학문을 부지런히 닦고 인덕을 길러야 한다는 뜻으로 종종 사용된다. 큰 학문을 하는 대학(大學)에 갓 들어온 새내기 여러분들이 가슴 속에 새겨야 할 경구다. 대학은 마땅히 그런 곳이어야 하며 또 대학의 주체로서 여러분들 역시 배움과 덕성을 갈고 닦는 데에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당위적인 얘기는 여기까지. 여러분들도 인지하고 있듯이 폭압적이고 무한경쟁적인 한국 교육12년의 종착지는 대학 입학이다. 지난 2주 동안 고등학교 졸업과 대학교 입학이라는 여러분들의 인생에서 매우 의미 있는 행사를 번갈아 치르면서 아마 많은 축하 인사와 함께 새로운 시작에 대한 당부의 말을 많이 접했을 것이다. 지금 이 시각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사뭇 궁금하다. 신나게 놀면서 자유를 만끽하고자 하는 욕구가 더 있을 것으로 지레 짐작이 간다. 그래야 한다. 여러분들은 마땅히 그러한 자격이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내가 속해 있는 대학은 무엇이며 또 어떠해야 하는지 근본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시점이기도 하다.

여기서 9년 전 여러분들의 한 선배의 외침을 전하고 싶다. 2010년 3월 10일 오후, 당시 고려대 경영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이었던 김예슬씨가 봄기운이 완연한 교정에 대자보를 붙이고 대학 거부 선언을 했다.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라는 제목의 대자보는 당시 한국의 대학과 사회에 큰 파문을 던졌다. ‘글로벌 자본과 대기업체에 가장 효율적으로 ‘부품’을 공급하는 하청업체’로 전락한 대학이 ‘자격증 장사 브로커’에 불구하다며 직격탄을 날렸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이 흘렀지만 대학의 현실은 많이 변한 것 같지는 않다. 아니 더 악화된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스펙쌓기와 취업 준비에 매몰된 청춘들에게 진리탐구의 장으로서 대학의 위상은 한낱 신기루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상황이 만들어지기까지 일조한 기성세대의 일원이자 교육 담당자로서 미안함과 무한한 책임감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이른바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서 고등교육기관으로서 대학의 지위와 역할에 대한 논의가 분분하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인공지능과 자동화 기술은 미래 사회에서 인간의 지위와 노동에 대한 새로운 사고를 요구한다. 아마도 여러분들은 가까운 미래에 인공지능 로봇과 공존하며 경쟁하는 첫 인류 세대가 될 것이다. 정보와 지식이 생성되고 소멸되는 순환 주기가 급속도로 짧아진 상황에서 어떤 이들은 대학이 새로운 지식과 혁신의 인큐베이터이자 평생교육의 요람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편으로는, 강고한 기득권 구조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확대재생산하는 ‘학위 브로커’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변화와 생존의 소용돌이 속에 합류하게 된 새내기 여러분들의 존재가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누가 뭐라 해도 여러분들은 대학의 주인이다. 학문 공동체의 주인으로서 여러분들의 노력과 분발을 미안한 마음으로 당부하고 싶다.

서울대학교 교수학습개발센터에서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의 비결을 조사한 적이 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놀랍게도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 강의 시간에 자기 생각이 교수와 다를 경우에 90%의 학생이 자기 생각을 포기한다는 것이다.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 보면 대학은 여러분들이 살아갈 인생의 주요한 목표에 대한 질문을 만드는 곳이어야 한다. 자신만의 성찰과 사고를 통해 가치 체계를 형성해야 한다는 말이다. 김예슬씨는 대학 거부 선언에서 “큰 배움 없는 大學없는 대학”이라고 일갈했다. 새내기 청춘들의 큰 배움을 위한 열정적인 노력을 당부하며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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