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6월 18일, 한국과 이탈리아의 한일 월드컵 16강전이 열린 대전월드컵경기장에 이런 문구의 카드섹션이 등장했다. 1966년은 잉글랜드 월드컵이 열린 해다. 그해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응원단이 이런 문구를 내세웠을까? 여기에는 남북한 스포츠 역사상 최고의 평행이론이 깔려 있다. 월드컵 4회 우승에 빛나는 축구 강국 이탈리아를 제물로 한 1966년과 2002년의 평행이론을 살펴보자. 

1966년 7월 19일 북한 국가대표 축구팀은 잉글랜드 북동부에 자리 잡은 작은 도시 미들즈브러의 에이섬파크 경기장에서 이탈리아 팀과 조별예선 경기를 벌였다. 당시 북한은 아시아,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세 대륙을 통틀어 딱 한 장 배정된 출전권을 따내 본선에 참가하고 있었다. 북한은 우승 후보로 꼽히던 소련, 칠레, 이탈리아와 함께 제4조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2라운드 진출은 사실상 불가능해 보였다. 잉글랜드 축구의 변방에 속하는 미들즈브러 사람들은 세계의 변방에서 온 북한 팀에게 동질감을 느껴 열렬한 응원을 보냈다. 에이섬파크는 북한 팀에게는 홈구장이나 다름없었다. 그 덕분일까, 북한은 소련과의 1차전을 0 대 3으로 내줬지만 선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전 대회 3위에 빛나는 칠레와 맞붙어 후반 43분 극적인 동점 골로 무승부를 이루었다. 만약 북한이 이탈리아에 승리한다면 조별예선을 통과하는 것도 가능했다. 당시에는 본선 진출국이 16개국이었기 때문에 조별예선만 통과하면 바로 8강이었다. 

북한은 승리를 자신하고 여유 부리던 이탈리아 팀을 철저히 분석했다. 그리고 경기가 시작하자마자 다섯 명의 선수가 일렬로 진격하는 돌격전을 펼쳤다. 키가 큰 이탈리아 선수와 헤딩 경합을 할 때는 서너 명이 사다리 형태를 이루어 뛰어오르는 ‘사다리 전법’으로 상대를 괴롭혔다. 이탈리아 수비수가 태클을 하다 부상을 당해 실려 나간 직후 북한의 축구 영웅 박두익이 결승 골을 터뜨렸다. 이탈리아는 승부를 뒤집기 위해 사력을 다했으나 리찬명 골키퍼의 눈부신 선방에 막혔다. 북한의 승리가 확정되는 순간 미들즈브러의 ‘홈 관중’과 북한 선수들은 한마음으로 환호했다. 

한 세대가 지난 2002년 대전에서 벌어진 한국과 이탈리아의 경기는 새삼 복기할 필요도 없다. 네덜란드 출신의 히딩크 감독이 이끄는 한국의 월드컵 전사들은 ‘어게인 1966’에 호응해 36년 전 북한의 승리를 재연해냈다. 그것도 패색이 짙은 후반전에 동점 골을 넣고 연장전에 골든골을 넣어 완성한 역전극이었다. 북한이 이탈리아를 꺾고 8강에 진출한 것처럼 한국도 이탈리아를 꺾고 8강에 진출했다. 남북한 축구팀은 둘 다 열화와 같은 ‘홈 관중’의 응원에 힘입어 이 같은 기적을 일궈냈다. 한국은 8강을 넘어 아시아 ‘최초’의 4강 신화를 이룩했지만, 북한은 여전히 아시아 ‘최초’의 원정 8강 신화라는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다.

평행이론은 여기까지이다. 북한 축구의 8강 신화는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전 세계 약소국의 리더로 발돋움하던 1960년대 북한의 국제적 위상과 맞물려 있었다. 그러나 8강 신화 이후 오랫동안 북한 축구는 철저히 잊혔다. 1967년 김일성 유일 체제를 강화하는 정치적 변동이 일어나는 것과 함께 축구의 발전도 정체되었다. 반면 한국 축구는 우여곡절은 있었으나 끊임없는 국민적 관심 아래 세계무대 도전을 계속하고 있다. 

21세기 들어 북한 축구는 조금씩 기지개를 펴고 있다. 특히 여자 축구는 한국을 넘어 세계 정상권의 실력을 뽐내고 있다. 1966년과 2002년의 평행이론이 말해 주는 것처럼 남북한 축구는 체계적 지원, 열렬한 응원, 적절한 전략 등이 뒷받침되면 폭발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이제 남은 것은 무엇일까?남북한이 힘을 합쳐 세계정상을 정복하는 것 아닐까?그것은 단지 스포츠의 성취가 아니라 모든 분야가 어우러져 빚어내는 민족적 성취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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