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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기술은 어디에 쓰일 것인가?
  • 서금영 과학칼럼니스트
  • 승인 2018.12.02 08:15
  • 호수 15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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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기술은 우리 사회에 어떤 기여를 하고 있는가? 자연과학과 공학을 공부하면서 이런 질문을 스스로 해 본 적이 있는가? 이런 고민을 하며 대학 생활을 보내는 사람은 매우 드물 것이다. 어려운 수학공식과 복잡한 프로그램을 돌려야 석·박사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따금 신문지면에 <사이언스>나 <네이처> 같은 저명학술지에 논문을 싣는다고 해서 당신의 연구가 세상을 뒤바꾸는 것은 아니다. 

 ‘양인 김감불과 장례원 소속 노비 김검동이 아뢰기를 ‘납(鉛鐵) 한 근으로 은 두 돈을 불릴 수 있습니다. 무쇠 화로나 냄비 안에 매운 재를 둘러놓고 납을 조각조각 끊어서 그 안에 채운 다음 깨어진 질그릇으로 사방을 덮고 숯을 위아래로 피워 녹입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시험해 보라’ 하였다.’ - <연산군일기> 연산 9년 5월 18일

이전까지는 은광석을 며칠이고 가열해 녹아져 나오는 순수한 은을 걸러내는 방식이었다. 이 기술은 노동력이나 시간을 많이 투자해야 했지만 은의 생산량은 많지 않았다. 반면 김감불과 김검동이 개발한 단천연은법은 납이 은보다 녹는점이 낮은 점을 이용해 은광석의 납이 녹을 때 불순물과 함께 붙어 가라앉기 때문에 순수한 은만 얻는 방식이었다. 

당시 사치를 좋아하던 군주인 연산군은 두 기술자를 궁궐에 불러 시연해보게 한 뒤 몹시 흡족했다. 닷새 뒤에는 은광이 있는 함경도 단천에서 이 방법으로 은을 캐도록 지시했다. 이 때문에 오늘날 이러한 은의 제련 기술을 ‘단천연은법’이라 부른다. 이에 지금의 경제부총리에 해당하는 호조판서가 ‘채은납세제(採銀納稅制)’의 시행을 건의하자, 연산군은 ‘즉각 시행하라’고 명했다. 민간에 은 채굴을 허용하고 세금을 걷자는 것이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1인당 하루 1냥을 은 현물 납세로 걷었다. 제대로만 시행됐다면 국가의 수입을 늘리고, 일자리와 은화폐 경제를 활성화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실제로 연산군이 총애하던 후궁 장숙용 집안이 채굴권을 받고 면세혜택을 받았다. 하지만 1506년 중종반정으로 연산군이 폐위되자 새 정부는 연산군 시대의 적폐청산을 단행했다. 바로 단천연은법을 금지하는 왕의 지시가 내려진 것이다.

중종 37년, 조선 조정은 놀라운 소식을 전해 듣는다. 일본에서 사신이 은 8만여 냥(3200kg)을 가져와 조선에 교역을 요구한 것이다. 참고로 은 채굴지인 단천에서 1년 생산량이 1,000냥을 넘기지 못했다. 불과 50년 전만 해도 일본 사신들은 후추 같은 특산품을 들고와 조선의 은과 바꾸길 청했다. 또 은광석을 배에 싣고 조선에 와 제련해 갔다. 일본은 어떻게 8만 냥이 넘는 은을 만들어낸 것일까?

이보다 5년 전인 1539년 종4품 판관인 유서종이 일본인들을 끌어들여 단천연은법 기술을 유출해 형벌을 받은 적이 있다. 그는 2년 전 의주판관을 지낸 적이 있는 만큼 단천연은법을 알았을 가능성이 크다. 또한 유서종은 의주판관을 지내고 일본과 가까운 경남 김해로 내려갔는데, 거기서 일본에 기술을 넘겼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조선의 기술은 일본으로 유출돼 일본의 은 산업은 비약적인 발전을 거두었다. 1600년대에 이르면 세계 은 생산량의 3분의 1을 일본에서 캐냈다. 때마침 일본은 포르투갈과 교역을 시작하던 때였고, 은은 국제 화폐로 통용되던 시기였다. 일본이 서양에서 조총을 수입하게 된 것도 은 제련을 통해 모은 자산 덕분이었다. 

그 뒤 전국시대를 평정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은 광산에서 챙긴 군자금을 바탕으로 임진왜란을 일으켜 조선을 침공했다. 단천연은법을 조선이 개발하고도 외면해 임진왜란을 가능케 한 요인이 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세계 최초의 기술,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확보한다고 해서 산업이 발전하고 나라가 부강해지는 것은 아니다. 

기존에 개발된 기술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어떻게 제품화하고, 마케팅과 영업을 통해 판로를 개척할 수 있을 것인가를 알아야 한다. 만약 지금 하고 있는 공부가 단순히 어려운 수학 공식과 복잡한 프로그래밍에 불과하다면 우리나라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부디 당신은 오늘 배우는 지식이 사회에 어떻게 쓰일 수 있고, 기여하는가를 잊지 말기를 바란다. 

서금영 과학칼럼니스트

 

 

서금영 과학칼럼니스트  press@pu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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