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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곽령은 기자
  • 승인 2018.11.18 10:07
  • 호수 15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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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의 부족을 절실히 느꼈던 적이 있다. 미술 시간에 명화를 오마주하는 과제가 주어진 것이다. 워낙 미술에 소질이 없었던 터라 막막하게 느껴졌다. 어떤 명화를 오마주해야 좋을지 고르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겨우 피카소의 <우는 여인>으로 결정하고 이제 스케치할 차례. 백지에서 시작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고통스러운 건 매한가지였다. 명화에 생각을 어떻게 녹여내야 할지, 어떤 식으로 변형을 하는 게 좋을지 잘 떠오르지 않았다. 며칠간 머리를 쥐어 싸맨 끝에야 겨우 스케치에 성공했고, 시간이 날 때마다 미술실로 가서 채색을 했다. 그렇게 몇 날 며칠을 작품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는데, 그 과정은 한마디로 ‘고통’이었다.

이번 취재를 하면서 그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사실 그동안 예술작품의 제작과정을 볼 수 있는 기회는 딱히 없었다. 그저 예술인들이 완성한 그림을 보고, 공연을 관람하고, 음악을 들을 뿐.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일 거다. 우리는 대개 창작물의 가치를 오로지 완성된 것으로만 판단한다. 영화 평점을 매길 때 제작 현장을 고려할 이가 어디 있으랴. 그러나 막상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들으니, 무심했구나 싶었다. 정신적인 고통과 슬럼프는 이들에게 너무나 익숙한 것이었다. 창작을 위해 쏟아 붓는 돈과 시간, 노력은 내 기억의 편린을 내세우며 공감한다고 하기엔, 너무 큰 고통이었다. 더욱 끔찍한 건 그 인고의 대가였다. 창작자의 수익 배분이 적은 경우는 비일비재하고, 원고를 늦게 제출 시 과도한 벌금을 매기는 계약을 체결하도록 강요받기도 한다. 꽤나 성공을 거둔 예술인들도 예외가 아니다. 창작물이 큰 인기를 끌어도 이들이 손에 쥘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예술인들이 예술 활동을 하는 것은 회사원이 일하고, 농부가 밭을 갈 듯 이들의 생계수단이다. 떠오르지 않는 아이디어에 긴 시간 창작의 고통을 감내하며, 예술품을 만드는 데 필요한 재료를 하나하나 선정하고 구입해야 한다. 완벽한 공연을 위해 대부분의 시간과 힘을 연습에 쏟는다. 갖은 노력을 동원해 ‘상상력’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렇게 예술인들이 소위 ‘뼈를 깎아내며’ 만들어낸 완성품으로 우리는 조그만 상상력을 퍼뜨릴 수 있다. 덕분에 삶에 활력을 얻기도, 행복을 느끼기도 한다. 이렇듯 예술인의 예술 활동은 소비자와 생산자가 있는 엄연한 노동이다.

“예술가들의 노력을 인정해주지 않아요”. 취재원의 담담한 말처럼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가 예술인에게는 당연하지 못한 것이다. 예술 행위를 노동으로 바라보지 않는 시선은 예술인이 노동에 대한 합당한 대가를 받을 수 없게 만든다. 그렇게 예술인은 계속 열악한 환경 속에 놓일 수밖에. 변하지 않는 시선들로 인해 예술인들은 이러한 악순환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 굴레에 좋다고 뛰어들 이가 어디 있으랴. 점점 예술인들은 예술 활동을 이어갈 수 없게 될 것이다. 결국 이들이 ‘0’이 되었을 때 우리는 마주할 수밖에 없다. 우리를 밝혀주는 상상력의 부재를.

 

곽령은 기자  emily3812@pu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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