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규진 서울교육대 윤리교육과 교수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간다’고 한다. 어떤 정보, 소식이란 자연적, 인공적 장벽이 있어도 결국 유통되고 만다는 의미가 된다. 그러나 예부터 그것을 불편하게 여기고, 한사코 막아 보려는 권력자들이 있었다. 말하자면 ‘언론 탄압’인데, 9세기에 자신의 ‘당나귀 귀’에 대해 함구령을 내렸다는 신라의 경문왕이나, 보다 앞서 기원전 4세기에 그리스의 헤로스트라토스가 유명해지고 싶다는 생각에서 세계 제7대 불가사의의 하나로 꼽혔던 에페수스의 아르테미스 신전을 불태운 사건에 대해 그 뜻이 이뤄지지 못하도록 헤로스트라토스라는 이름을 입 밖에 내면 사형에 처했다는 에페수스인들이 그런 예다. 하지만 결국 우리는 경문왕의 귀 길이와, 헤로스트라토스라는 사람과 그가 한 일을 알고 있다!

언론 자유를  억압하는 권력의 만행은 현대에도 숱하다. 1920년, 홍범도 장군의 봉오동 전투와 김좌진 장군의 청산리 대첩이 있자 일본군은 그 보복으로 만주의 한국인들을 잔인하게 학살했다. 그때 <동아일보> 창간 멤버였던 장덕준이 만주로 가서 그 상황을 취재하려다 행방불명되었는데, 일제의 손으로 살해되었다는 게 유력하다. 대한민국에서는 이승만 정권 때 <경향신문>이, 박정희 정권 때 <동아일보>가 탄압을 받았으며 1980년대에 정권을 잡은 신군부는 ‘언론통폐합’으로 언론사를 마구 없애버리는 한편 언론인 1500명을 강제 해직시키고, 그 가운데 30여 명은 ‘삼청교육대’로 보내 가혹한 대접을 했다.

그런데 <동아일보>는 오랜 언론자유 투쟁의 역사와 함께 ‘부끄러운 역사’ 또한 갖고 있다. 1945년 12월 모스크바 3상회의에서 한국 신탁통치가 결정되었을 때다. 당시 미국은 ‘신탁통치는 최소한 5년 이상이어야 한다’고 하고 소련은 ‘되도록 짧게 해야 한다’고 했는데 <동아일보>에서 ‘미국은 신탁 반대, 소련이 신탁 고집’이라 보도해 반탁-찬탁 시위와 좌우대립 격화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이 초대형 오보가 없었다면 좌우합작으로 통일 한국 정부가 일찌감치 수립되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요즘은 이런 ‘오보’라는 표현보다 ‘가짜뉴스’가 즐겨 쓰인다. 언론사도 실수하는 일이 있지만, 가짜뉴스는 실수라기보다 고의적으로 엉터리 보도를 해서 일정한 정치적, 경제적 효과를 노리는 걸 가리킨다. 1898년, 쿠바 아바나 항에서 미군함 메인 호가 폭파되어 260명 승무원이 사망했다. 이는 군함 내부의 문제에 따른 사고였으나 미국 언론은 ‘스페인의 테러’로 보도해 미국-스페인 전쟁이 불붙도록 몰고 갔다. 1950년대 일본의 <아사히신문> 등은 북한을 ‘사회주의 낙원’ ‘누구나 차별받지 않고 잘 살 수 있는 곳’으로 소개했다. 이에 당시 일본에서 차별받던 재일조선인들이 솔깃해서 10만 명이 북한으로 귀화했다. 이는 사실 재일조선인들을 불온세력으로 본 일본 정부의 뒷공작으로 언론이 가짜뉴스를 내어 빚은 사기극이었다. 귀화 재일교포들은 북한에서 재산을 뺏기고, 내내 차별받고, 일부는 감옥살이를 겪어야 했다.

가짜뉴스가 ‘일상어’로 자리 잡게 만든 장본인은 도널드 트럼프다. 그는 “모 관계자에 따르면, 어쩌고 하는 기사는 모두 가짜뉴스라 보면 된다”는 명언을 남겼다. 대통령 취임 첫 기자회견에서는 CNN을 가짜 뉴스라고 매도했으며, BBC 기자에게는 “이거 대단한 분 납셨구먼”이라고 비아냥대고, 전체 언론을 놓고 “부정직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스스로가 대선 승리 과정에서 3류 언론사와 그를 추종하는 SNS 키보드워리어들이 쏟아낸 가짜뉴스 덕을 톡톡히 보았다.

언론은 자유를 누려야 한다. 그래야만 이 복잡한 사회 속에서 바보가 되지 않고 살 수 있다. 그러나 언론이 장난을 치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바보가 될 수 있다. 요즘소수 대기업만이 아닌 개인도 뉴스를 제공함으로써 한때 가짜뉴스가 극복되리라 여겨졌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 때문에 가짜뉴스가 통제 불능이 되었다고도 한다. 문명과 사회의 발전에 발맞추어 생각하는 백성으로 사는 길은 그래서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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