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선영 소설가

백 년 동안 자고 있던 공주는 왕자의 키스로 잠에서 깨어난다. 공주가 잠에서 깨자 왕과 왕비가 일어나며 모든 사람과 짐승이 잠에서 깬다. ‘세상에서 제일 어여쁘고 착한’ 공주와 ‘세상에서 제일 어여쁘고 쾌활한’ 왕자는 성대하게 결혼식을 올린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잠자는 숲속의 공주>의 내용이다. 지혜로운 요정과 잘생기고 멋진 왕자는 열세 번째 마녀의 저주로부터 공주를 구했다. 이야기는 해피엔딩이다. 하지만 정말 공주와 왕자는 잘 살았을까? 그들이 아기를 낳고, 세월이 흐르는 가운데도 여전히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잠자는 숲속의 공주>는 샤를르 페로가 1695년에 펴낸 <어미거위 이야기들>에 실려 있었다. 페로는 17세기 프랑스에서 구전되던 민담들을 정리하여 ‘어린이들에게 상상력을 키우며 가르치기 위한 교훈이 첨가된’ <어미거위 이야기들>을 출판하고, 그 후 세 편을 추가하여 1697년 <스토리 또는 옛 이야기, 교훈첨가>라는 제목으로 다시 책을 내었다. 이에 대해 많은 학자들은 이 책을 민담과 동화의 두 장르로 접근하여 연구하였으며, 각각의 장르로 페로의 책을 편입시키려 하였다. 특히 동화연구자들은 ‘교훈첨가’를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교육적인 부분이라고 근거를 대었다.

하지만 페로의 책에 실린 <잠자는 숲속의 공주>는 연구자들의 말처럼 그리 교훈적이지 않다. 그의 이야기에서 공주와 왕자는 딸과 아들을 낳는다. 왕자의 어머니는 사람을 잡아먹는 식인귀이며, 이 때문에 왕자는 자신의 결혼 사실과 손주들의 존재를 숨기게 된다. 이후 왕이 된 왕자는 식인귀 어머니의 손에서 공주와 아이들을 지킬 수 있다는 믿음으로 성으로 데려온다. 하지만 전쟁이 발발하고, 왕자가 전쟁터에 간 사이 식인귀 어머니는 손녀와 손자, 며느리를 잡아먹으려 한다. 지혜로운 주방장의 도움으로 세 사람은 목숨을 구하지만, 이내 살아있음을 들키게 된다. 식인귀 어머니는 이후, 주방장과 며느리, 손자, 손녀를 다시 잡아먹으려 한다. 그때 전쟁터에서 왕자가 돌아온다. 제 분을 못 이긴 식인귀는 징그러운 짐승들이 가득한 술통에 자기 머리를 넣어, 죽고 만다. 왕자 가족이 무사히 상봉하여 기뻐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이 난다.  

왕자와 공주가 아이들과 잘 살게 되었다고 해서 이 이야기를 해피엔딩이라 할 수 있을까? 이야기는 시종일관 그로테스크하고 기괴하다. 공주를 구한 왕자는 정의롭지만, 어머니의 죽음에 슬퍼하지 않는 왕자는 비정하다. 왕자는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모순적인 인물이다. 식인귀 어머니는 제 아들인 왕자는 헤치지 않으나, 며느리인 공주와 손자, 손녀는 잡아먹으려는, 일관성이 없는 존재로 그려진다.

페로는 신분이 낮은 가정의 어머니들이 자녀들에게 ‘이성적인 삶을 가르치기 위’한 의도로 책을 썼다. 하지만 책의 내용은 민중이 ‘이성의 규칙에 맞추어 만들지 않고 그들의 삶 속에서 맘껏 자유롭게 상상해서 꾸민’ 것이다. 내용과 의도 간의 불일치, 간격은 페로가 선정, 각색한 내용이지만 계몽주의의 이성논리에 포섭되지 않는 민담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명작동화, 고전동화의 바탕에는 위와 같은 배경들이 깔려있다. 근대로 오면서 이야기들이 변형되고, 논리적인 서사와 이론을 바탕으로 각색되어져, 전형적인 인물과 미끈한 구성을 갖춘 ‘명작동화’로 탈바꿈한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와 같은 동화들을 새로운 시각과 관점에서 읽으려는 시도들이 현대에 이르러 많이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모든 것을 다 잃은 공주가 종이봉지 옷을 입고, 왕자를 구하러 가는 <종이봉지공주>나 얼굴과 머리색이 검은 <흑설공주>, 빨간모자의 또 다른 버전인 <세상에서 가장 용감한 소녀> 등이 그 예이다. 익숙한 서사이나 새로운 인물과 사건으로 구성된 앞의 동화들은 그 자체로서의 재미뿐만 아니라, 기존의 가치체계와 이데올로기에 대한 의문과 비판의식을 동시에 가지게 해 준다는 점에서 또 다른 명작동화가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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