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시선 열린결말
<암수살인> 기이한 역설의 심리 스릴러
  • 정민아 영화평론가, 성결대학교 연극영화학부 교수
  • 승인 2018.10.07 11:56
  • 호수 1569
  • 댓글 0

영화는 개봉하기 전부터 이미 많은 화제를 낳았다. 실화를 모티프로 한 영화로, 일명 ‘부산 고시생 살인사건’이라는 10여 년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묻지마 살인사건’을 담고 있어 피해자 유족이 상영금지가처분 소송을 낸 것이다. 영화화에 대한 사전 양해가 없었다는 점과 유족에 대한 추가 피해가 이유다. 이후 영화관계자는 피해자 유족들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하면서 소송이 취하되었고, 그리고 또 다른 피해자 유족이 다른 시각의 글을 올려 이 문제는 더 확산되었다. 그것은 이 영화로 인해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수많은 살인사건에 시민이 관심을 가져주길 기대한다는 것이다. 

부산에서 일어난 실화를 토대로 하고, 부산 올 로케이션으로 촬영 되었으며, 부산 시네마의 대표 영화인인 곽경택 감독이 제작총지휘를 맡은 작품이라 우리로서는 보다 더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제목부터가 떨린다. ‘살인’이라는 낱말이 들어간 순간, 에잇 또 피칠갑하는 범죄 액션 스릴러구만, 하면서 이 영화를 지나쳐 버린다면, 우리는 많은 것을 놓치게 될 것이다. 인간이 왜 폭력적이 되는지, 진실과 거짓 사이의 심리 게임에 임하는 자세는 어떠해야 할지, 이미 죽어 없어졌지만 남겨진 가족이 죽음의 진실만은 알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등에 대한 고차원적인 철학적 질문들이 이 영화 안에 담겨있기 때문이다. 

‘암수범죄’(暗數犯罪)란 범죄가 발생하였으나 수사기관에 인지되지 않거나, 용의자 신원파악 등이 해결되지 않아 공식적 범죄통계에 집계되지 않은 범죄를 뜻한다. 그리고 ‘암수살인’은 피해자는 있지만 신고도, 시체도, 수사도 없어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살인사건을 말한다. 미스터리한 제목처럼 시작도 사건 전개도 미스터리 투성이다. 

영화는 떠들썩한 자갈치시장의 한 식당에서 시작한다. 형사 김형민(김윤석 분)은 돈을 받고 시체를 처리했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강태오(주지훈 분)로부터 더 많은 것을 캐내기 위해 애쓰는 장면 이후 일대 전환을 맞이한다. 곧 진짜 피의자가 되어 감옥에 수감되고 법정에 서야 하는 강태오가 김형민에게 7개의 살인을 더 저질렀고 완전범죄로 아직 발각되지 않았음을 자백하면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이제 플롯은 피의자와 형사가 만나는 교도소 면회실의 대화와, 강태오의 자백만 믿고 산속을 헤집고 다니는 김형민의 행동 등 두 축으로 진행된다. 

범죄 스릴러 영화가 취하는 장르 컨벤션을 이 영화는 과감하게 삭제하고 있다. 잔혹한 범죄수법을 보여주는 현장, 쫓고 쫓기는 추격전과 실감나는 액션, 여성 시체의 전시와 성적 긴장감으로 채워진 폭력 장면 등 장르적 시각화를 배제한다. 그리고 그 자리에 두 인물 간의 심리 게임을 통해 긴장감을 잔뜩 집어넣는다. 

범죄자는 왜 이미 지나간 사건을 자백했나. 아마도 자신의 형량을 줄이기 위한 교란 술수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만일 그의 자백이 진실이라면, 시체도 수사의뢰도 없이 사라진 사람의 남겨진 가족은 어찌할 것인가. 그리고 남은 형량을 채운 후 그는 또 살인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김형민 형사의 양심이 이에 응답한다. 그리고 그는 돈과 물건을 강태오에게 제공하며 끊임없이 단서를 얻으려고 한다. 

영화는 기존의 형사-범인 관계를 뒤바꿔 놓는다. 증거도 없고, 아무도 모르는 사건을 누군가는 자백하고, 누군가는 뒤쫓는다. 성실성과 경험을 앞세우는 형사와 비범한 머리를 가진 범죄자 사이의 게임에서 누가 승리자가 될 것인가. 역수사로 전개되는 플롯은 서스펜스로 넘쳐나며, 잔혹한 시각화 없이도 영화가 충분히 긴장감을 끌어올릴 수 있음을 증명한다. 

그리고 남은 질문 하나. 이미 지나버린 사건을 다시 수면 위로 떠올릴 경우, 2차 피해가 일어날 것은 자명하다. 그러나 이 영화에는 어떤 무거운 책무가 담겨 있다. 가족의 생사도 모른 채 평생을 한이나 오해를 지고 살아가야 할 가족이 있다. 게다가 이런 어이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널리 알려서 우리나라 경찰력에 대중이 관심을 가지고 지지를 끌어내는 일도 있다. 영화가 폭력을 쾌락적으로 소비하지 않고, 폭력에 고통의 감정을 진실하게 담아내어 사회가 폭력적으로 가는 길을 막는 각성의 순간을 이끌어낸다면, 그 영화는 공익적 역할을 하는 것이므로 필자는 지지할 것이다.

정민아 영화평론가, 성결대학교 연극영화학부 교수  press@pusan.ac.kr

<저작권자 © 부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정민아 영화평론가, 성결대학교 연극영화학부 교수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