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살아가면서 ‘영점’(零點) 을 잡는 일은 중요하다. 군대에서 총기를 받고 가장 먼저 하는 것도 영점을 잡는 일이다. 총 뒤편에 있는 가늠자에 눈을 대고 바라보면 총구 맨 앞쪽의 가늠쇠가 보인다. 가늠쇠와 가늠자가 일치하는 지점이 표적지의 한 가운데를 가리키도록 총구를 향하고 방아쇠를 당긴다.

만약 영점이 잘못 맞춰져 있으면 탄착점이 표적지의 한쪽으로 치우친다. 그러므로 총을 쏘려면 내가 쏘는 총알이 목표지점에 정확히 꽂히도록 영점을 잡은 뒤 사격해야 한다. 현재 당신은 꿈을 향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가? 열심히 노력한다 해도 인생의 영점을 잘못 잡았다면 당신의 노력은 허사가 될 수 있다. 

많은 학생들은 대기업에 입사하는 것이 꿈이다. 하지만 꿈이라 부르기 민망하다. 필자는 서울의 한 사립대를 나왔다. 올해로 대학에 입학한 지 21년째다. 지난해 입학 20주년을 기념해 97학번 동기회를 결성하고 홍보위원장도 맡았다. 

덕분에 수많은 대학 동기들을 만났다. 대기업에 입사했던 몇몇 친구들은 그들의 업무능력과 관계없이 30대 중반에 희망퇴직을 했다. 그 뒤 대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 중견기업에서 중소기업으로 기대치를 낮춰 자리를 잡았다. 대기업에 다니던 친구가 중견·중소기업에 가면 단번에 적응하기 힘들다. 평균 3번 정도는 이직해야 적응했다.

반면 나는 이공계로 입학해 학보사 기자를 거쳐 일간지 기자가 되려 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일간지의 정치부, 경제부, 사회부 기자가 됐을 때 내가 경쟁력이 있는가? 대학에서 정치외교학이나 경제학, 사회복지학 전공자들과 경쟁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전공을 살려 과학 기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과학언론계의 메카인 <과학동아>에는 삼수 끝에 들어갔다. 나는 학부를 졸업할 때, 대학원에 다닐 때, 대학원을 졸업한 뒤에 모두 3차례 지원했다. 2번째 낙방할 때 나는 왜 낙방한 것인지 이해되지 않았다. 늘 최종면접까지 갔으며 면접에서도 곧잘 답변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 경쟁자들은 주로 SKY대학과 KAIST, POSTECH, 지방 국립대 출신 이공계 사람들이었다. 더불어 학내 언론기관 경력자가 흔했다. 나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각자 자기 전공 분야와 관련해 글을 쓰고 싶다는 사람이 많았다. 그래서 나는 과학 분야에 꼭 필요한데 아무도 관심이 없을 분야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과학기술 분야이지만 과학기술이 아닌 것은 무엇일까? 바로 ‘과학정책’이었다. 나는 이공계 출신이지만 사회현상에 관심이 많았다. 당연히 과학정책에도 이해도가 높았다. 과학언론계의 제너럴리스트이면서 스페셜리스트가 되기 위해 나는 먼저 국회에 들어갔다. 

300명의 국회의원들은 저마다 활동하는 분야, 즉 상임위가 있다. 나는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상임위의 어느 의원실에서 과학정책을 담당하는 인턴이 됐다. 그곳에서 수많은 과학기술부 공무원을 만났다. 또 수시로 관계부처 공무원이 의원회관을 찾아와 업무보고를 했다. 나는 자연스레 과학정책을 익히고 앞으로 취재원이 될 공무원을 두루 만났다. 

결국 <과학동아>에 3번째 지원했을 때 회사는 그 이유 때문에 나를 뽑아주었다. 현재는 과학 기자를 그만두고 벤처기업의 R&D 사업본부 이사로 근무하고 있다. 하지만 과학을 소재로 글을 써달라는 곳이 많다. 내 소속이 대기업이든 아니든 사람들은 ‘과학글쟁이’란 나의 브랜드를 보고 찾아온다.

나는 학생들의 꿈이 취업 잘되는 이공계 분야를 전공해 대기업 사원이 되는 것으로 끝나지 않길 바란다. 또 막연히 잘 나가는 분야라고 해서 그 분야의 대학원에 진학하지 않길 바란다. 사회에서 반드시 필요하지만 남들이 관심 없는 분야에 집중할 때 당신은 성공할 확률이 높아진다.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에 들어가려고 하지 마라. 의사나 변호사가 꿈이라고 해서 그 직업인이 되면 행복만 있을까? 행복한 사람이 되려면 삼성맨이 아니라 당신만의 브랜드를 디자인해라. 지금 당장 선택되진 않겠지만 그 분야의 스페셜리스트가 필요할 때 세상은 당신만 찾게 될 것이다!

저작권자 © 채널PNU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