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종잇장을 발견했다. 10년 전 내가 그렸던 인생 계획표였다. 10년, 그리고 20년 뒤의 내 모습이 종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12살이었던 나는 취업 준비에 매진하고 있는 22살 군필 복학생을 상상했다. 결혼에 성공한 32살의 직장인의 모습도 있었다. 모두가 그렇게 살고 있었기에, 이러한 삶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저 평범한 삶을 살고 있을 거란 확신을 갖고 인생을 계획하던 어릴 적 내가 귀엽게 느껴지면서도 한편으론 씁쓸하다. 원대한 꿈이 아닌 보다 현실적인 꿈을 가졌던 어릴 적 모습에서 안타까운 걸 수도 있겠지만, 그마저도 이루지 못하고 있는 지금의 나이기에 그랬을 지도 모른다.

12살의 인생 계획을 따르기에는, 첫 단추부터 잘못 꿰었다. 지금 나는 3학년 미필자다. 곧 2년을 견딘 후 빠듯한 취업 준비에 혼이 빠질 미래를 상상하니, 그저 막막하기만 하다. 2년의 공백 탓에 남들보다 뒤쳐졌기 때문이다. 또한 내가 원하는 직종이 서울에 몰려 있어 취직을 하려면 서울로 떠나야 할 수밖에 없는 현실 탓도 있다. 서울에 비싼 집값을 감당할 여윳돈이 없는데 말이다. 나에게 놓인 환경에서 시간과 돈의 한계에 부딪히는 것이다. 12살의 내가 계획했던 군필은 고사하고 취업 준비마저 쉽지가 않다. 이룰 수 없는 계획표보단 치솟는 청년 실업률에 더 눈길이 간다. 10명 중 한 명이 실업자란다. 이러다가 나도 그 한 명이 되진 않을까 두렵다.

그 옆에는 상반되게 수치가 떨어지고 있는 지표가 있었다. 합계출산율이다. 우리나라에서 청년실업률과 함께 크게 대두되고 있는 사회문제란다. 정부가 이전부터 무수한 정책을 쏟아냈지만 그간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진 못했다. 안타까운 사실이지만, 이는 나와 거리가 멀다. 당장 돈을 어디서 벌어야 할지 막막할 노릇인데 출산 계획에 신경을 쓸 수는 없다. 비단 나뿐만이 아닐 거다. 출산율과 동시에 혼인율도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한 푼 한 푼 모아대도 집 한 채 마련하는 데 수 십년이 걸린다. 한데 결혼에 출산까지 생각할 겨를이 어디 있겠나. 우리 중에 집도 있고 행복한 가정을 꾸릴 수 있는 이들이 얼마나 있을까.

한 정치인이 출산율이 낮은 이유를‘청년들이 자기 편하게 살려는 가치관 탓’이라고 지껄였다. 사회 시스템이나 정치 문제가 아니라, 그저 청년 개인의 탓으로 치부해버린 것이다. 어처구니가 없어 웃음이 나올 정도다. 편하게 살려 한다고? 아니다. 우리는 그저 평범하게 살고 싶을 뿐이다. 남들처럼. 12살의 내가 바랐던 것처럼. 하지만 우리는 어린 아이가 평범하다고 적은 것조차 포기해야 하는 세대가 돼버렸다. 때문에 우리는 살려고 계속 발버둥 칠 수밖에 없다.  

취업과 결혼, 출산까지 가득 적힌 종잇장, 12살이었던 나의 작은 바람이 담긴 계획표는, 지금의 우리에게 그저 꿈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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