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인가 또는 외설인가. ‘에로티시즘’에 관한 논쟁은 현재도 진행 중이다. 20세기 이를 과감하게 예술로 승화한 화가가 있다. 바로 오스트리아 표현주의 작가 ‘에곤 실레(Egon Schiele)’다. 그는 성에 대해 보수적이었던 20세기의 비엔나에서 성(性)을 소재로 작품을 그렸다. 편견 없이 자유롭게 자신의 감각을 표현한 것이다.      

에곤 실레(이하 실레)의 작품은 *표현주의 사조 속에서 탄생한다. 실레는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고, 이를 드러내기에 가장 효과적인 것이 ‘인체’라고 생각했다. 그는 인체를 그려내는 방식에 있어서도 역동성과 과감함을 보였다. 때문에 그의 작품 속 인간의 몸은 뒤틀리고 왜곡된 형태로 드러난다. 실레는 이러한 뒤틀린 인체를 통해 인간의 삶과 죽음을 나타냈다. 나르시시즘(Narcissism)이 있던 실레는 주로 자화상으로 이를 표현했다. 그의 작품 <자기 관찰자>는 두 명의 왜곡된 인체가 등장한다. 각각의 인간은 유한한 육체인 ‘의식적 자아(Ego)’와 무한한 정신인 ‘영적 자아(Alter Ego)’를 상징한다. 인간이 의식적 자아의 모습을 갖추면서 영적 자아를 내재하고 있다고 본 것이다. 따라서 사후에 육체는 소멸해도 영적 자아로서 삶을 지속한다고 보았다. 삶과 죽음은 불가분이라는 실레의 인간관이 작품에 표현된 것이다.

실레의 개성은 성(性)에 대한 묘사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그는 나체, 성기, 심지어 성행위까지 소재로 삼는다. 인간 본질을 가장 잘 드러낼 매개체로 성이 적합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는 실레의 인간관과 함께 사회관을 부각한다. 실레는 에로티시즘으로 사회에 대한 저항을 표했다. 불행했던 유년시절에서 기인한 소외감과 자신의 작품을 배척하는 사회를 향한 불신을 성적 묘사로 드러낸 것이다. 여성의 성욕이 금기시돼온 사회에서 그는 여체(女體)를 주로 그려내며 사회에 대한 저항을 표했다. <검은 스타킹을 신고 앉아있는 소녀>가 대표적인 예다. 작품을 보면 소녀의 마른 체형과 신경질적인 인상이 두드러진다. 이는 소녀가 받은 사회적 억압을 뜻한다. 당시 비엔나는 사회 부조리가 심각해 빈곤층 소녀들이 매춘부가 되는 일이 허다했다. 실레는 이에 문제의식을 가졌고 소녀를 통해 이를 비판했다. 그런데 표정을 달리 보면 소녀가 자유분방한 생각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를 통해 사춘기 소녀가 느끼는 성적 호기심을 표현함으로써, 불우한 환경에서도 유효한 인간의 강한 본성을 그려내고자 한 것이다. 즉 작품 속 소녀의 이중적인 표정은 실레의 인간관과 사회관이 투영돼 있다.

원광대학교 서양화과의 한 논문은 실레를 ‘사회적 병폐 속에 뒤틀린 욕망을 인간 본능의 원초적 단면으로 적나라하게 조명한 작가’라고 평한다. 인간과 사회를 보는 자신의 시각을 표현하고자 편견을 불사했던 실레, 그의 에로티시즘은 외설이 아닌 예술로 바라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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