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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품격과 민주주의
  • 김대경(동아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 교수
  • 승인 2018.09.09 01:30
  • 호수 15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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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경(동아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 교수

 

“문재인은 공산주의자다.” 그렇다. 독자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우리나라 현직 문재인 대통령이다. 놀라지 마시라. 필자의 견해가 아니다. 정치적 커밍아웃을 하자면, 필자는 서면의 촛불 집회에도 몇 번 참가했고, 다소 문제점을 야기하고 있지만 현 정부의 정책을 지지하고 있다. 명예훼손적인 표현으로 법적인 처벌 대상일까?아니다. 대한민국은 헌법 제 21조에 명시되어 있는 것처럼 언론출판 및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는 나라다. 최근 이러한 사실을 법원이 확인해 주었다. 2013년 1월 보수성향 시민단체 신년하례회에서 당시 방송문화진흥위원회 고영주 이사장은 “문재인은 공산주의자이고, 이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우리나라가 적화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발언했다. 검찰은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했지만,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8월 23일 1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언론보도에 의하면, 무죄가 선고되자 방청석의 보수 성향 인사들은 박수와 함께 “언론의 자유와 사법부가 살아 있다”고 환호성을 질렀다고 한다. 법원의 판결을 환영한다. 결단코 조롱하거나 비꼬는 것이 아니다. 강단에서 언론의 자유를 가르치는 미디어 학자로서 이 땅에 아직 주권자의 정치적 의사표현의 자유가 살아있음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다만 그러한 정치적 주장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까 걱정할 뿐이다. 이러한 논리에 따르면, 현직 대통령을 배출한 집권 여당은 공산당이란 말인가?더불어민주당은 유럽의 정당 이념 스펙트럼으로 따지면 오히려 중도보수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우리의 현대사 과정에서 북한은 상수였고, 모든 정치· 사회적 이슈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었다. 북한과의 이념적 대결에서 승리하는 것이 지상과제였던 이념의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우리의 의식 역시 기울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선거 캠페인 공간에서 상대 진영 후보에 대한 이념적 공격은 비단 우리만의 상황은 아니다. 2008년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였던 존 매케인의 품격있는 언행이 최근 그가 사망하면서 다시 회자되고 있다. 당시 민주당 바락 오바마 후보는 출생지, 인종과 이념적 성향 때문에 반대자들에게 끊임없이 시달렸다. 하와이 출생을 증명하는 국가 기록도 소용없었고, 중간이름이 후세인이었기에 아랍인이라는 공격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매케인은 오히려 오바마는 ‘온화한 가장이자 훌륭한 미국 시민’이라고 옹호했다. 비록 대선에 패배하여 그의 오랜 꿈이었던 대통령이 되지는 못했지만, 매케인은 미국 보수의 상징으로 품격있는 정치 지도자로 칭송받고 있다. 그가 사망하기 전에 남긴 회고록에서 이념에 전도된 미국 정치의 양극화를 지적했는데, 우리의 정치적 상황에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베스트셀러 <말의 품격>의 이기주 작가는 우리는 현재 ‘말의 힘’이 세상을 지배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자신의 말과 세계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과 성찰을 통해 품격을 키울 것을 주문한다. 공교롭게도 한자 입 구(口)가 세 개 모여 수준이나 등급을 의미하는 품(品)이 된다고 새삼 일깨워 주고 있다. 언어학의 석학 노엄 촘스키 역시 ‘언어가 의식과 사고를 지배한다’고 주장했다. 말과 글은 당연히 의식의 반영이며, 따라서 그 사회의 민주주의 수준은 정치적 담론의 공간에서 오고가는 말과 글의 품격에 달려있음은 자명하다. 

상기의 판결문에서 재판부는 무죄 선고 이유에 대하여 '공적인 존재의 국가 사회적인 영향력이 클수록 정치적 이념에 대한 의문은 광범위한 문제 제기가 허용돼야 하고, 이는 공론의 장에서 평가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시민의 자유로운 정치 의견 제시가 형사 법정에 의해 제재되어서는 안된다고 덧붙였다. 공론의 장에서 논쟁과 토론은 사실에 입각하여 합리적이고 품격있는 방식으로 진행되어야 함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우리 사회가 보다 높은 수준의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기나긴 여정에 품격있는 말을 듣고 싶은 이유이기도 하다.

 

김대경(동아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 교수  press@pu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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