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전태일 열사는 열악한 노동여건을 개선코자 홀로 노동법을 공부하며, ‘이 말을 쉽게 설명해줄 수 있는 똑똑한 대학생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현재 계속해서 발생하는 노동문제의 기저에는 ‘노동’을 천시하는 사회적 인식과 더불어, 노동인권교육이 부재한 교육 현실이 있다. 2018년인 지금, 전태일 열사가 노동법을 공부해온 현실에서, 흘러온 시간만큼 노동 교육이 진전됐다고 볼 수 있을까.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노동자’란, 사용자에게 고용돼 자신의 노동력을 대가로 수입을 얻는 사람을 뜻한다. 이들은 임금을 빌미로 갑의 위치에 서는 고용주들에 의해 부당함을 겪기도 한다. 자신의 정당한 처우를 보장받을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왜 노동자들은 현장에 들어서기 전에, 이러한 방법을 알지 못하고 있을까? 

한 업종의 노동자에게서도, 매우 다양한 종류의 부당함이 발생한다. 음식 배달부들은 음식 주문이 많은 주말에 업무가 과중된다. 이들은 이러한 배달 요청을 소화하기 위해 과속, 신호위반 등을 할 수밖에 없고, 이에 따라 사고의 위험에 노출돼있다. 작년 서울노동권익센터에서 발표한 ‘설문을 통해 본 음식배달 노동자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500명의 노동자 중 77%가 구두계약을 맺은 것으로 밝혀졌다. 안전에 취약한 배달노동자에게는 4대 보험 가입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작은 규모의 업소에서는 보험 가입과 계약서 작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임금의 형태도 전체의 39%가 고정급 없이 호출 건당 수당을 받는 것으로 나타나, 고정으로 월급을 받는 노동자 비율보다 높았다.

하지만 노동 교육의 부재로, 위와 같은 부당한 처우를 겪었을 때 정확한 문제의 상황 파악과 권리 주장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이윤경 교육선정국장은 “근로조건의 열악함과 자신의 권리 범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노동자가 많다”며 “제도는 마련돼 있지만, 이를 알지 못해 노동인권이 침해된다”라고 전했다.

이러한 문제를 ‘노동인권교육’이 해결할 수 있다. 노동인권교육이란, 노동인권과 관련된 지식을 가르치고, 노동인권을 존중하는 태도와 감수성을 배양하는 것을 말한다. 정규교육과정의 노동인권교육은 어릴 적부터 노동 조건과 권리가 삶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게 하는 효과를 지닌다. 이를 통해 노동현장에 들어섰을 때, 노동자 자신이 주장하는 권리를 뒷받침하는 근거가 단단해질 수 있다. 

노동자들에게 <근로기준법> 등의 제도에 대한 교육이 필수적이다. 이와 함께, 노동의 가치와 권리를 인식하게 하는 교육 방식도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노동자 스스로가 권리를 주장할 수 있도록 자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기술교육대학 고용노동연수원 송태수 교수는 “노동자들이 현장에서 개인의 권리 주장에 소극적인 경우가 많다”며 “노동인권을 모든 국민에게 보장하도록 헌법에 명시돼있는 만큼, 스스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전했다.

노동인권 소외된 정규교육과정

노동인권교육은 정규교육과정에서 의무화되지 않고, 대부분 학교에서 자율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범교과 학습 주제의 하부 열 가지 주제 중 하나가 노동인권교육에 해당하고, 이를 학교마다 자율적으로 시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초·중·고등학교 정규교육과정 속 노동인권교육의 양은 부족하기만 하다. 초등학교의 사회 교과서에서는 노동문제가 다뤄지지 않는다. 중학교부터 사회 과목에 관련 내용이 나오는데, ‘일상생활과 법’ 단원에서 모든 교과서가 노동법과 노동자의 권리보호에 대한 내용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교육과정에는 이것이 구체적으로 명시돼있지 않고, 교과서별 분량이 평균 반쪽에서 1쪽 분량에 그친다. 고등학교 2, 3학년의 경우 노동문제가 다뤄지는 과목으로는 ‘사회문화’와 ‘법과정치’가 있다. 각각 ‘산업화에 따른 노동의 변화’와 ‘노동법과 근로자의 권리보호’가 다뤄지지만 분량은 모두 2~3쪽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선택과목으로, 모든 학생에게 해당하지는 않는다. 근화여자고등학교 김후장 사회교사는 “올해는 고등학교 1학년 통합사회 교과서에서 짧게나마 다루던 노동문제 내용마저 줄어들었다”라며 “사실상 고등학교에서 다루는 노동교육의 내용은 거의 없다”라고 전했다. 

그리고 노동자보다 기업가 입장의 서술이 강조되기도 한다. 2020년부터 사회과 공통과목과 선택과목에 초등학교 5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기업가 정신 교육’이 실시된다. 이에 비해 피고용인으로서 노동의 문제를 다루는 과정은 소외되고 있다. 

<2015년개정 교육과정>에는 중학교와 고등학교의 필수과목인 사회에 노동교육 관련 내용이 추가됐다. 중학교 사회에 ‘헌법에 보장된 근로자의 권리를 이해하고 노동권 침해 사례와 구제 방법을 조사한다’는 성취 기준과, 고등학교 통합사회에는 ‘청소년의 노동권 등 국내 인권문제’가 다뤄졌다. 하지만 여전히 분량은 아직 턱없이 부족하기만 하다. 전국사회교사모임 신성호 연구위원은 ‘공통 과정인 초등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실업 문제를 포함해 노동 관련 교육은 중학교에서 약 2시간에 불과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대부분 학교마다 자율적으로 시행하는 진로 과목에서 직업윤리 관련 내용을 교육한다. 하지만 진로 과목은 부실한 노동 인권교육을 보충해 주지 못한다. 진로 과목은 적성과 사회 변화를 고려해 직업을 고르도록 유도하고, 그에 맞는 직업윤리를 가르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한 분야의 직종에서 성공한 인물들을 다루며 노동보다는 진로 선택에 초점을 두고 있다. 

직업 위주의 특성화고등학교에서도 노동인권교육은 미흡하다. 현장실습으로 노동 현장에 투입되는 학생들에게 노동인권교육은 더 시급하다. ‘성공적인 직업생활’ 교과를 통해, 근로관계법과 노사 관계에 대해 내용을 다룬다. 하지만 교사들 스스로가 노동현장의 경험이 없는 경우가 많고 노동3권과 노동법, 근로기준법에 대한 교육이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다. 노동관련 교육이나 연수도 학교가 자율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송태수 교수는 “교사들은 노동기본권의 의미나 내용에 대해 자신의 전문 분야가 아니기에 잘 알지 못한다”며 “교사가 되기 위한 훈련과정에서도 교육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방해되는 편견

노동에 대한 편협한 사고가 노동인권교육의 활성화를 막는 이유로 거론되기도 한다. 예로 일본이나 중국 등 대부분의 한자를 사용하는 국가는 달력에 ‘노동절’이라고 표기하는데, 한국만 유일하게 ‘근로자의 날’로 명시한다. 대부분의 국민이 노동자와 그들의 가족으로 구성된 현실이지만, 노동에 대한 개념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노동은 정신 및 육체적 노동을 모두 포괄하는 개념이다. 하지만 노동자를 육체적으로 고되고 힘든 일을 하는 사람들로 한정하는 것이다. 과거보다 노동에 대한 인식은 많이 개선됐지만, 아직도 노동자에 대한 편견은 존재한다. <경향신문>에서 실시한 노동인권 감수성 설문조사 결과, 노동자라는 단어를 들으면 떠오르는 말에 대해 ‘힘든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대답하는 경우가 대다수였고, 노동자라고 생각하는 직업으로는 △경비원 △마트 계산원 △농부 등의 대답을 했다. 노동이라는 개념을 육체적 노동이 주를 이루는 특정 직업에 국한해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대부분의 미성년자들이 나중에 노동자가 됨에도, 노동을 올바른 개념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와 반대로, 노동교육의 부재가 부정적인 인식을 초래했다는 시선도 있다. 부산청년유니온 안지영 사무국장은 “노동이 무엇이고 어떤 가치를 갖는지 배우지 못해 편견이 생겨난 것이다”라며 “노동에 대한 이념적 굴레와 편견도 노동인권교육이 미흡하게 실시되는 원인으로 작용했다”라고 전했다.

노동의 개념에 정치적 프레임이 씌기도 한다. 노동인권은 모든 국민의 인권을 보장하는 헌법에 명시돼 있는 권리인데, 특정 집단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으로 비춰지는 경우가 많다. 노동 교육은 시대저항 의식을 교육하는 것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노동조합활동은 노사 간의 단체 협약을 체결하기 위함인데, 시위와 파업을 위한 조직으로 이해하는 경우도 있다. 이윤경 교육선정국장은 “언론이나 일부 국민들이 노동조합 활동을 정치적 활동으로 치부하는 경우가 있다”라며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가 노동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권리를 관철하기 어렵게 한다”라고 말했다.

입시 위주의 정규교육과정도 부족한 노동인권 인식에 영향을 준다. 학생들은 입시 경쟁으로 내몰려 노동인권교육에 대한 필요성을 생각하기 어렵다. 사회 교과에 노동관련 내용이 포함되지만 학생들은 시험에 나오는 내용에 집중한다. 송태수 교수는 “노동인권 같은 경우 실생활에 직결되는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시험에 잘 나오지 않기 때문에 소외 된다”라며 “대부분의 학생들이 노동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고 말한다”라고 밝혔다. 

시민으로서 노동에 대해 배우다

대다수의 선진국들은 노동권을 시민권의 핵심으로 두고, 교육과정에서 노동인권교육을 중시한다. 유럽 국가들에서 노동조합이 한국 사회에 비해 강한 사회적 발언권을 가지는 것도 체계적인 노동 교육의 결과이다. 이들은 판사나 변호사도 스스로 노동자라고 느끼고 노동조합 활동을 하고 있다. 

독일은 정규교육과정 속에 ‘노동학’이라는 분과 학문이 체계화돼 있을 정도로 노동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다. 이들은 크게 실업과목과 사회과목 두 방면으로 노동에 대한 교육을 다룬다. 실업과목은 주로 노동의 기술적인 측면, 인간과 기술·환경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도록 돕고 미래 직업 선택과 노동생활에 대비한다. 사회과목을 통해서는 노동문화, 노동인권, 노사관계 등 노동의 사회정치적인 측면을 다룬다. 모든 교과서들이 노사관계를 ‘민주주의와 노사 공동결정’이라는 관점에서 다루고 있다는 점도 공통적이다. 교과서의 내용에는 실업, 노동 3권 등을 다루며, 교육 방법론으로는 모의 노사관계를 도입한다. 관련 법률, 행위자들, 사업장의 경영상태, 사회경제 및 노동환경의 변화에 대한 객관적인 자료를 제공하고 학생들이 자료를 토대로 협상에 필요한 논의를 이어나간다. 또한 노동 현장에서의 현장체험학습도 매우 활발하다. 이는 향후 노동 현장에 진출할 학생들이 자신의 권리 주장을 수월하게 할 수 있도록 교육 효과를 높이기 위한 것이다. 안지영 사무국장은 “독일의 경우, 노사협상이나 월급명세서를 계산하는 등 노동 문제를 자연스레 받아들일 수 있는 교육 방식이 다양하다”라고 전했다.

우리나라도 2011년 한 고등학생이 현장실습 도중 뇌사에 빠진 사건을 계기로, 노동인권교육에 대한 정부의 관심이 촉발됐다. 현 정부는 국정과제에 노동인권교육에 대한 개선방안을 담았다. ‘내 삶을 책임지는 국가’ 산하 정책으로서, 학교 노동인권교육을 활성화한다는 목표를 밝혔다. 이에 어떤 노동인권교육이 실시될지 그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이윤경 교육선정국장은 “우리나라도 정규교육과정에 노동 과목을 편성해 노동 문화가 사회에 안착하도록 해야 한다”라며 “노동자뿐 아니라 고용주들도 노동자의 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사회도 대부분의 시민들이 노동자로서, 시민권 교육과 함께 노동의 개념을 받아들일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 사회에서 흔히 발생할 수 있는 노동 문제를 다루면서 관심을 유도하고, 성인이 된 후 자신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이 실시돼야 한다. 송태수 교수는 “노동인권교육을 근로기준법 명시 등 이론적 교육으로 다루는 것이 아니라 민주시민성을 함양하는 과정 속에 녹여내야 한다”고 말했다. 안지영 사무국장은 “노동에 대한 교육은 부당함에 대해 체념이나 포기가 아닌 의구심을 들게 하는 것이다”라며 “청소년 아르바이트생이 보장받아야 하는 권리 등 눈높이에 맞게 권리 주장의 필요성을 생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고 전했다.

인간에 대한 존중은 두려움에서 나온다는 말이 있다. 대부분 부당한 대우에도 침묵하는 사람에겐, 그에 맞게 행동해도 된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당연하게 존중받아야 하는 사람들이 사실상 스스로  권리를 쟁취해야 하는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사람들은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도록 교육받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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