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때와 다름없이 뉴스를 시청했다. 그러다 ‘검찰 내 성추행 폭로’라는 보도가 나왔는데 눈길을 끌기엔 충분했다. 보수적인 조직인 검찰에서 폭로가 나온다는 데에 신기했으며 심지어 실명을 밝힌다기에 더욱 관심이 갔다. 서지현 검사의 인터뷰를 보면서 공감은 했지만 과연 이게 사회적인 이슈가 될지는 의문이었다. 항상 이런 문제가 불거지면 한때만 난리고 금방 식어버리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내 예상과는 달랐다. 해당 폭로는 수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았으며 하루가 멀다 하고 ‘나도 당했다’는 사람이 나왔다. 언론은 계속해서 나쁜 사람을 지목했고 그가 사과할지 해명할지에 주목했다. 처음에는 분노가 치밀었다. 그러나 계속 기사를 보고 있으면 왠지 모를 찝찝함이 생겼다. 자극적인 단어로 제목이 달린 기사가 많았기 때문이다. 마치 피해사례를 전시하는 듯한 보도였다. 단지 조회수나 늘려 이익을 보겠다는 언론의 의도가 노골적이었다. 

  ‘용기 내서 폭로한 당사자가 당신의 기사 한 줄에, 전화 한 통화에 다시 상처받고 있습니다’ 연희단거리패 이윤택 전 예술감독의 성추행을 폭로한 극단 미인 김수희 대표가 지난달 20일 자신의 sns에 올린 글이다. 대중들은 ‘미투’ 운동을 언론으로 접하게 된다. 때문에 언론의 역할은 중요하다. 운동의 원래 의도를 훼손하지 않기 위해서다. 그러나 현재 언론은 자극적인 보도로 피해자들에게 2차 피해를 주고 있었다. 피해 사례에 대한 선정적인 묘사는 범죄 피해자가 아닌 성적 행위의 대상으로 인식하게 한다. 그렇게 되면 그들의 사례는 단순히 소모되고 만다. 그럼에도 언론은 돈을 벌기 위해 ‘너도’ ‘나도’ 조회수를 높이려고 한다. 이 같은 문제를 방지하고자 4년 전 한국기자협회는 <성폭력 사건 보도 가이드라인>을 마련했지만 의무가 아닌 권고 사항이기에 지킬 리가 만무했다. 

언론의 행태로 미투 운동은 무색할 지경이었다. 그동안 피해자들은 침묵해야했다. 가해자가  권력자라서, 또는 사실을 밝혔을 때 자신에게 불이익이 있을 것 같아서 말하지 못했다. 이 사실을 잘 아는 가해자들은 떳떳하게 살아가며 제2차, 제3차 피해자를 발생시켰다. 그들도 말하지 못할 거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러다 서지현 검사의 폭로로 그 침묵이 깨졌다. 이제는 나도 말할 수 있으며 그래야지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오지 않을 수 있다는 거다. 그러나 언론의 선정적인 보도로 이는 방해받았다. 다른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게 하려고 말했지만 또 피해를 입게 됐다. 이를 보고 아직 밝히지 못한 피해자들은 다시 침묵하게 된다. 폭로하더라도 자신에게 또 불이익이 돌아올 수도 있다는 마음에서다. 

‘제가 어떤 일을 당했는지에 관심을 갖기보다는, 제가 왜 목소리를 낼 수 없었는지, 또 앞으로 어떻게 바꿔 갈지에 관심을 가져달라’. 지난 1월 31일 서지현 검사가 발표한 입장문이다. 그동안 언론은 피해자가 어떤 일을 당했는지에 관심을 가질 뿐이었다. 이제는 피해자들이 말하는 것을 방해하지 말고 피해자 모두가 말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침묵하게 했던 사회적 구조를 해결하는 데 관심을 쏟아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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