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기간이다. 캠퍼스 곳곳에서 선거 유세가 이뤄지고 있다. 3년 동안 3번의 선거를 지켜보았으니 익숙할 만도 하다. 그러나 해마다 받아드는 공약 리플렛의 내용은 낯설기만 하다. 1학년 때의 총학생회는 사회연대를 중시하면서 활동했는데, 해가 지나면서 학생 편의와 복지를 중시해 이와 관련된 공약들이 리플렛의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올해에도 이런 경향이 나타났다. 학교에 내걸린 현수막 내용만 보아도 짐작할 수 있었다. 다른 공약들보다도 스터디룸 증설, 토익 응시료 지원 등의 ‘복지’ 공약 내용을 주로 홍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연스러운 현상일지도 모른다. 시대가 흐르면서 학생들의 요구 사항은 많이 달라졌다. 사회 현안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보다는 학생 개개인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학생회를 바란다. 요구에 따라 학생회도 변했으려니 넘길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간의 기자 경험은 이를 가만히 두지 않고, 의심하게 했다. 단순히 시대에 따른 변화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필자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학생사회에는 긴 세월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지켜지지 않는 것이 존재한다. 바로 ‘권리’다. 수십 년 전의 학생들은 대학 구성원으로서 스스로 권리를 되찾으려 투쟁했다. 대학의 운영에 학생이 참여하고,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제도, 명분들을 확립했다. 덕분에 등록금심의위원회나 재정위원회 등의 의결기구에는 학생 위원이 포함돼있다. 그러나 아직 미흡한 부분이 많다. 특히 제도적으로 마련된 부분은 최소 수준만 규정하고 있다. 학내 주요 사항에 대한 최고의결기구인 교무회의에는 학생의 참관마저 불가능하다. 교육과정을 논의하는 장에도 학생위원은 없다. 그러니 약학대학 양산 이전, 경영관 시설 개편, 도서관 건물 명칭 등이 공지 후에야 학생과의 갈등을 겪고 철회되거나 개정되는 절차를 밟는다. 한편으로는 이를 학생의 권리를 중시하지 않는 대학본부나 학생회 탓만으로 돌릴 수도 없다. 학생사회의 무관심도 한몫했을 테다. 권리 위에 잠자고 있었으니 보호받을 여지는 없었다. 권리의 가치는 그대로건만, 당사자들의 의지는 빛이 바랬다.

한 타대학 학보사 편집국장이 대학언론의 위기를 두고 이런 글을 남겼다. ‘언론은 ‘해야 할 말’을 하는 곳임에도 우리는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있다. 무엇이 ‘해야 할 말’인지 고민하지 않고, 그냥 자기 만족적인 콘텐츠만 만들어낸다’. 같은 학보사 종사자로서 공감을 많이 했는데, 이는 학생회가 처한 현실과 다르지 않은 듯하다. 한 학생회 선본은 학생들의 요구에만 맞는 공약을 중요히 여겼다. 지켜져야 할 권리에 대해서는 형식적인 치레도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학생회라면 ‘해야 할’ 일로서 학생들의 권리를 지켜나가야 한다. 그런 노력조차 없다면 언젠가는 학생의 권리가 없는 게 당연시될지도 모른다. 요구하는 것에만 응하는 게 다가 아니다. 무관심하다고 같이 무관심하게 여길 것도 아니다. 학생들의 ‘대리자’가 아닌 ‘대표자’이지 않나. 눈앞의 하고 싶은 것들만 ‘해야 할 것’이라 믿는다면, 다시 학생회가 어떤 조직인지 생각해보길 바란다.

저작권자 © 채널PNU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