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예전에 학창시절 미술 시간에 ‘색의 삼원색은 빨강, 노랑, 파랑, 그리고 빛의 삼원색은 빨강, 초록, 파랑’이라고 배웠다. 빨강(R, Red), 초록(G, Green), 파랑(B, Blue), 즉 RGB로 표시되는 색깔은 빛의 삼원색으로 컬러텔레비전이나 휴대전화 스크린의 화려한 색을 표현하는 기본 단위이다. 미세한 RGB 형광물질 픽셀이 배열된 스크린에 빨간빛과 초록빛이 섞이면 노란빛이 되고 초록빛에 파란빛이 들어가면 하늘색이 되어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색도 만들어진다. 또 빛은 섞을수록 밝아져서 빛의 삼원색을 혼합하면 흰색이 된다. 그런데 그림을 그릴 때 쓰는 물감이나 프린터 잉크의 색은 빛과 다르다. 물감이나 잉크는 많이 섞을수록 더 어두워지고 탁해진다. 그래서 색의 삼원색을 섞으면 검은색이 된다. 

그러나 사실 색의 삼원색은 빨강, 노랑, 파랑이 아니고 시안(C, Cyan), 마젠타(M, Magenta), 옐로(Y, Yellow)이다. 컬러프린터의 잉크 카트리지가 바로 색의 삼원색 CMY를 사용한다. 하지만 실제 컬러 프린터에서는 검정(K, Black)을 추가해 CMYK를 쓴다. CMY 색을 섞어서 검은색을 정확히 만들어내기가 쉽기 않기 때문이다. 예전에 색의 삼원색을 ‘빨노파’로 썼던 것은 시안과 마젠타 색이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았던 이유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빛과 색의 삼원색을 배우면서 미술 교과서에 빛의 ‘빨초파’와 색의 ‘빨노파’로 그려진 빨간색과 파란색이 각각 서로 다르다는 것을 간과한 점이 더 크게 작용했을 것 같다. 단순히 초록색과 노란색의 차이로 인해 빛의 삼원색에서 색의 삼원색이 된다는 것을 이상하게 볼 수도 있었을 텐데, 우리는 왜 의문을 제기하지 못했을까?

삼원색의 원리를 기초로 인간의 시각적 감각을 고려해 만든 먼셀의 색상환(Color Circle)을 보면 비슷한 의문이 든다. 색상환은 무지개색을 원형으로 묶어 놓은 모양이다. 무지개색은 공기 중에 떠 있는 물방울이 햇빛을 받아 반원형으로 나타나는 일곱 색깔의 띠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무지개색은 일곱색깔이 아니고 우리 눈이 감지할 수 있는 390~700nm의 파장을 가진 빛, 즉, 가시광선의 스펙트럼이다(1nm=10억분의 1 미터). 빛이 품은 무지개색 700nm 파장의 빨강에서 390nm 파장의 보라까지 연속적인 색조의 변화를 보인다. 무지개 띠의 양 끝에 있는 빨간색과 보라색이 먼셀의 색상환에서는 바로 이웃에 놓여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어째서 가장 짧은 파장의 보라색이 가장 긴 파장의 빨간색 옆에 놓일 것일까? 단순히 ‘극과 극은 통한다’는 역설로 꿰맞추기에는 뭔가 이상하다. 

우리는 눈을 통해 색을 인식한다. 망막에서 빛에 직접 반응 하는 곳은 원추세포와 간상세포이다. 원추세포는 세 종류이고 각 세포가 반응하는 빛의 파장영역이 정해져 있다. 예를 들어 파랑(B) 원추세포는 390 ~450nm 파장의 파란색 빛에 반응하고, 마찬가지로 초록(G), 빨강(R) 원추세포는 초록색, 빨간색 영역의 빛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과학적으로 색은 빛의 파장으로 구분되지만, 우리가 인식하는 색은 각 시각세포 ‘센서’에서 측정된 신호가 뇌에서 재구성된 것이다. 뇌가 인지하는 색은 파장이 아니라 RGB 신호라는 말이다. 따라서 RGB 신호를 처리하는 뇌의 입장에서는 빨간색과 파란색의 거리는 빨간색과 초록색 사이의 거리와 차이가 없다. 뇌에서 인식하는 빨강-초록, 초록-파랑, 파랑-빨강 간의 거리가 같아져 빨강-초록-파랑이 정삼각형을 이룬다. 이 때문에 줄자처럼 펼쳐진 무지개색의 파장이 우리 뇌에서는 원 모양의 색상환으로 재구성되는 것이다.결국 우리가 보는 색은 뇌에 전달되는 RGB 신호의 논리적 구성에 불과하다. 어쩌면 세종류의 시각 세포에서 전달된 신호가 감성으로 재구성되는 과정에서 풍부한 미술적 상상력과 표현이 나오는 것일 수도 있다. 빛과 색에 대한 실험이 예술 분야에서 보다 더 활발한 것은 우리 뇌 속에 과학적 분석을 넘어서 존재하는 생각의 공간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유재준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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