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문화 문화
[관광지에 아로새겨진 근대 이야기] 사진과 함께 보는 그때의 ‘부산 관광’
  • 추예은 기자, 김대호 수습기자
  • 승인 2017.11.25 04:15
  • 호수 1554
  • 댓글 0

・온천

당시 유명했던 온천탕인 동래 탕천 공중욕탕의 모습이다

개항 이전 우리나라의 온천문화는 지금과 달랐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피부질환을 치료하기 위해 온천을 이용했으며, 이는 왕족이나 귀족인 상류층만의 문화였다. 그러나 일본의 전통적인 온천문화는 여가와 휴식문화로, 개항 이후 일본인에 의해 부산의 온천 관광지 개발이 본격화됐다. 이는 일본이 부산에 거주하는 자국민들의 여가와 휴가를 위한 목적으로 만든 것이었다. 이에 지금의 온천문화가 우리나라에 자리 잡았다. 

 
당시 개발된 부산의 온천 관광지 중에서 ‘동래 온천’은 국내는 물론 일본에서까지 이름났던 명소였다. 동래 온천은 1898년 한국정부와 일본 영사가 동래온천임차계약을 체결하면서 일본인들이 본격적으로 이용했다. 1907년에는 온천장 주변에 봉래관이 생기기도 했다. 이후 일본은 1915년 온천장 주변에 전철과 철도, 도로정비와 같은 근대도시 기반시설을 마련해 관광객 유치를 꾀했다. 1932년에는 온천장 제방공사가 완공돼 부산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가 됐다.
 
‘해운대 온천’은 동래 온천과 함께 부산에서 저명한 온천이다. 해수욕과 온천을 겸한 임해온천인 해운대 온천은 1920년대 중후반부터 관광지로 개발되기 시작했다. 특히 1935년에는 대규모의 온천 욕탕과 함께 온천 호텔, 골프장이 세워졌다. 광복 이후 해운대 부근의 교통이 편리해지면서 해운대는 급속도로 도시화됐다. 그리고 1960·70년대 정부에 의해 해운대 부근이 개발되면서, 해운대 온천은 해수욕장과 함께 부산에서 유명세로 손꼽히는 관광 휴양지가 됐다.
 
・해수욕장
최초의 근대식 해수욕장인 송도 해수욕장에서 관광객들이 피서를 즐기고 있다
원래 과거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바다란 숭배의 대상이었다. 당시 해수욕 개념은 멀리서 풍광을 즐기는 것이었다. 그러나 일본이 더위를 피하기 위해 입수하는 서구의 해수욕 개념을 받아들이면서 우리나라에도 전파됐다. 
 
부산에서는 ‘송도 해수욕장’과 ‘해운대 해수욕장’이 이름난 관광명소다. 특히 송도 해수욕장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해수욕장이다. 바다 기슭의 모래사장을 해수욕장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송도 해수욕장은 부산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의 거주지와 근접해 해운대 해수욕장보다 상대적으로 일본인의 유입이 잦았다. 송도 해수욕장은 1920년대에 본격적으로 개발돼 △여관 △탈의시설 △휴게소 등의 시설을 갖추었다. 이후 1930년대에는 다이빙장과 별장들이 생기고 학교의 수영대회나 운동회 장소로 이용되면서 관광지로 주목 받았다. 그러나 70년대에는 급속한 산업화로 인해 수질이 오염됐다. 이로 인해 한동안 사람들의 발길이 끊겼다가, 2000년 연안정비사업을 통해 수질을 복구하여 다시 부산의 대표적인 해수욕장으로 거듭났다. 
 
‘해운대 해수욕장’도 빼놓을 수 없는 곳 중 하나다. 모래사장과 온천 등 천혜의 자연조건을 갖춰, 일본인들은 일찍이 관광지로서 이곳에 관심을 보였다. 따라서 송도 해수욕장과 더불어 이곳을 관광지로 만드는 데 주력했고, 많은 관광객을 유치해 인기를 얻었다. 이후 해운대 해수욕장은 한국전쟁 때 군사적인 이유로 민간인의 출입이 통제됐다. 그러다 1960년대 개발 및 활성화돼 다시 관광지로서 각광받았으며, 현재 부산을 상징하는 랜드마크로 부상해 많은 이들의 발길을 사로잡고 있다. 
 

・공원

현재 부산타워가 있는 곳에서 과거 용두산 신사가 있었다 현재는 용두산 공원만이 남아있다
일제강점기 형성된 근대 도시공원은 신사와 관련 있다. 개항 이후 우리나라로 이주한 일본인들은 대개 경치가 빼어난 곳에 신사를 세웠다. 이로 인해 신사 주변은 공원으로 활용됐고, 이때부터 우리나라 도시공원 개념이 생겨났다.
 
부산의 도시공원들도 일본의 영향을 받았다. 용두산 공원은 신사가 세워지면서 조성됐다. 근대 개항 이후 개항장 근처로 이주해온 일본인들이 용두산 정상에 신사를 지었다.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부산상업회의소가 용두산 정상을 깎아 근대 도시공원인 용두산 공원을 조성했다. 신사에서 열리는 축제와 주변 경치를 구경하고자 일본인들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들도 공원을 찾았다. 이후 신사가 있던 자리에는 부산타워가 세워졌지만, 용두산 공원은 현재까지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용두산 공원과 함께 ‘부산 3대 공원’으로 불리는 대정 공원과 고관 공원은 일본 천황의 즉위를 축하하기 위해 조성됐다. 각각 대정 천황과 소화 천황의 즉위를 기념했다. 이후 고관 공원은 소화 천황의 이름을 따서 ‘소화(昭和) 공원’이라 개칭되기도 했다. 현재 대정 공원 부지에는 부산광역시 서구청, 소화 공원 부지에는 부산광역시 동구청이 자리하고 있다.

추예은 기자, 김대호 수습기자  press@pusan.ac.kr

<저작권자 © 부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추예은 기자, 김대호 수습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