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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회 부대문학상 소설 부문 당선작] 우리는 남이다
  • 김규민(교육대학원 석사 16)
  • 승인 2017.11.18 18:52
  • 호수 1553
  • 댓글 0

하나.
   

  미래는 머나먼 이국의 것이었다.

  외인의 매도세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벽안의 사내는 필연적 파국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는 필연이라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저 배가 고팠을 따름이다. 지난 며칠간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하염없이 흘러나오는 부도, 도산과 같은 낯선 단어들보다, 뱃속의 주림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가 더 큰 문제였다. 어째서 그들은 관심이 없는 것일까.
  전화가 울린다. 한 번, 두 번, 세 번…. 숫자를 세어본다. 얼마나 헤아린 것일까. 숫자를 잊었을 때 전화가 끊어졌다. 어디로부터의 연락인지는 알 수 없었다. 집세를 독촉하는 집 주인의 전화였을까. 내게는 집세를 낼 돈이 없었다. 문득 나를 해고했던 사장이 머릿속에 스친다. 며칠 전부터 나는 조금 혼란스러웠다.
  회사가 어려웠을 따름이다. 그러니 나가달라고 했다. 집세를 내지 못한 건, 나도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가달라고, 어쨌든 나는 나가야 했다. 나는 그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인간이다. 나가야만 했던 난, 그들이 필요했다. 정확히 말해 그들이 가진 것이 필요했다. 나는 돈이 필요했고, 집이 필요했다.
 몇 번이고 사정해 보았다. 집주인도, 사장도 시선을 피했을 뿐, 나는 다시금 사정해야만 했다. 오늘은 사장에게 찾아가 다시 사정해 볼 생각이었다. 아무것도 먹지 못했노라고, 이제 내 한 몸 뉠 곳마저 사라질 것 같다고, 그렇게 애원해 볼 작정이었다. 그리고 말할 것이다. 더는 그의 모든 것을 바라지 않는다고, 그가 침실에서 속삭였던 아파트도, 차도, 직책도 필요 없었다. 말은 진실보다 거짓을 담기 쉬운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 그저 내가 받아야만 했던 임금, 그 일부라도 줄 수 없겠느냐고, 그렇게 빌어볼 생각이었다. 만약 그가 거부한다면, 그의 아내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겠노라고, 그렇게 위협해볼 생각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나는 살아갈 수 없다.
  ‘살자’
  나는 그렇게 마음먹었다. 살기를 결정했다. 살기 위해서 나가야만 한다. 나는 주방으로 갔다. 식칼을 꺼내 든다. 차가운 날붙이의 감촉이 낯설었다. 그것을 사람들에게 자랑스레 내보일 순 없는 법이다. 식탁 위에 던져져 있던 신문이 눈에 들어왔다. 신문으로 감싼다면 숨겨질 수 있을까. 신문 표지의 큰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위기 아니다.’
  ‘괜찮아’
  나는 날붙이인 구겨진 글자를 손가방 안에 넣었다.

 

둘.
  초겨울의 거리는 지나치게 밝았다. 단지, 거리에 늘어선 사람들의 모습이 우중충했을 따름이다. 모퉁이마다 정장을 차려입고 선 사내들, 허공을 노려보고 있는 그들 사이로 걸어간다. 문득 시선을 느끼고 돌아보면, 그들이 부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목적지가 있는 사람의 발걸음은, 목적지가 없는 사람의 발걸음과 사뭇 다른 느낌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나의 걸음은 어떤 잔상을 남기고 있는 것일까. 그때 내가 느끼고 있었던 감정은 공포였다. 한순간이라도 멈추어 서버린다면, 갈 곳 잃은 그들에게 집어 삼켜지게 될 것만 같았다. 나는 잠시 손가방 안을 확인해 본다.
  ‘□기아□다.’
  구겨진 신문 뭉치는 안녕했다. 나는 다시 걷기 시작한다. 사장이 사는 아파트 단지는 보도로 사십 분 거리에 있었다. 나는 마냥 걸었다. 도로로 스쳐 지나가는 버스 한 대, 단돈 500원의 차비조차 내게는 사치였다.

 

셋.
  도로에 붉은 신호가 들어오고, 버스가 천천히 멈추어 섰다.
  나는 잠시 정차한 버스 안에서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까만 아스팔트 도로 위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그 사이로 사람들이 걸어 다닌다. 그 무질서한 움직임 속에서 어깨에 커다란 광고판을 짊어진 채, 한 줄로 나란히 걸어가는 청년들의 모습은 꽤 흥미로운 광경이었다.
‘분양 중, 투자 최적의 기회, 단군 이래 최고의 역세권(도시·광역철도역 2020년 완공 예정)’
  그들은 자신들이 입주하지도 못할 거대한 단지를 이고서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것일까. 단지들은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었다. 횡단보도의 양극단에 선 신호등, 그 사이에서 고단함과 굵은 땀방울이 묻어난다. 나는 눈으로만 쫓고 있었다. 이내 푸른 신호가 깜빡거리기 시작했고, 이제 겨우 횡단보도를 건너기 시작한 또 한 무리의 청년들이 뛰기 시작했다. 맞추어 섰던 줄이 흐트러지고, 모두 신호등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뒤처진 한 청년이 내 눈에 들어왔다. 숨이 가쁜 모양인지 입을 벌리고서, 비틀비틀, 뛰는 것도, 걷는 것도 아닌 움직임이다. 그는 횡단보도 한가운데 멈추어 서서 잠시 한숨을 돌리려는지, 입을 크게 벌리고 숨을 내쉬었다. 그러다 조금씩 상체가 뒤로 기울었고, 그대로 쓰러졌다.
  차라리 음 소거 된 TV에서 흘러나온 머나먼 곳의 한 장면이었다면…. 나는 쓰러진 그의 얼굴을 목격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낯선 얼굴이었다. 입가에 거품을 물고, 새파랗게 질린 그는 움찔거리고 있었다. 모두가 그 낯선 얼굴을 바라보았고, 아무도 말이 없었다. 말이란 것을 모두 잊은 마냥 가만히 앉아만 있었다.
  까만 아스팔트 바닥, 사다리처럼 그어진 횡단보도는 붉은 신호와 함께 차도가 된다. 저편의 보도에 선 청년들은 멀찍이 쓰러진 이를 바라만 보고, 도로의 차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전진하고 있었다. 쓰러진 청년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살려달라고, 그렇게 소리 없이 외치고 있었다. 어느새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말하고 있었다.
  “기사님, 문 좀 열어주세요”
  버스 기사가 놀란 눈으로 나를 보며 대답했다.
  “정류장도 아닌데 못 열어드려요”
  “사람이 쓰러졌잖아요. 바로 앞에!”
  “저쪽 일행도 있고, 다른 사람들도 많으니 아가씨가 나설 필요는 없잖아요”
  버스 기사의 말과는 달리, 그를 도와주려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스마트폰을 들고서 그를 촬영하는 사람, 어디론가 전화를 거는 사람, 그리고 바로 앞에 쓰러진 사람 때문에 출발하지 못하고 있는 버스 기사가 있었을 뿐이었다.
  “저는 내려야겠어요. 아무도 그를 도와주지 않고 있잖아요”
  내 말에 버스 기사는 자신이 왜 문을 열어줄 수 없는지 조곤조곤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아가씨, 이 기계 보이시죠? 여기에 GPS가 달렸는데, 이게 버스 운행기록을 해요. 지금 위치가 어디고, 버스 문이 열렸는지 닫혔는지, 그런데 여기는 정류장이 아니죠? 그런데 버스 문이 열리면 운행 중에 문을 열고 다닌 게 돼서, 제가 사유서를 써야 합니다. 그것만 문제겠어요? 아가씨가 책임질 거 아니잖습니까”
  “아니, 아저씨 너무하시네”
  나와 버스 기사의 대화를 듣고 있던 한 승객이 소리쳤다. 승객들이 하나둘 웅성거리며 말하기 시작한다.
  “사람이 쓰러졌는데 지금 그게 대수요?”
  “버스도 출발 못 하고 있는데, 그 아가씨 좀 내려 보내면 될 거 아닙니까!”
  “맞아요. 안 그래도 지금 늦었는데 이렇게 도로에서 시간만 날리면 버스 기사님은 책임 없답니까?”
  승객들의 질타에 버스 기사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가씨 원래는 안 되는데, 지금은 어쩔 수 없이 그런 거니까. 다음엔 또 그러지 마세요”
버스의 문이 열리고 나는 청년을 향해 달려갔다.
  “괜찮으세요?”
  청년은 대답이 없었다. 나는 그와 함께 도로를 횡단해야만 했다. 다른 차선의 차들은 빠르게 속도를 내며 지나다니고 있었다.
  “도와주세요!”
  나는 도로 저편에 서서 바라만 보고 있던 또 다른 청년들을 향해 외쳤다. 그들은 서로의 눈치만 보고 있었다.
  “차 좀 멈춰 세워 주세요!”
  그제야 몇 명이 차도로 내려와 차들을 막아 세웠고, 몇 명은 나를 도와 쓰러진 청년을 보도 쪽으로 들어 옮기기 시작했다. 내가 타고 있던 버스는 앞을 가로막던 장애물이 사라지자마자 속도를 내며 출발해버렸다.
  쓰러진 청년을 보도 한쪽 그늘진 곳에 누이고서, 나는 사람들에게 물었다.
  “구급차, 구급차는 불렀나요?”
  청년 중의 하나가 나와서 대답했다.
  “아까, 쓰러지자마자 연락해 두었습니다”
  그는 내심 뿌듯한 듯 웃으며 대답했다. 그리고 잠시 뜸을 들이더니, “그런데 우리가 알바중이라, 빨리 가봐야 하거든요. 구급차가 언제 올지도 모르고, 좀 부탁 좀 드려도 될까요?” 하고 묻는 것이었다.
  나는 잠시 그를 쳐다보다, 천천히 대답했다.
  “네”
  구급차는 늦지도, 빠르지도 않게 도착했다. 쓰러진 청년이 가지고 있던 팸플릿으로 부채질을 몇 번 해주고 있던 와중이었다. 구급대원은 내게 병원까지 동행해 줄 수 있는지 물었다. 보호자가 필요하다는 모양이었다. 나는 병원까지 동행해 내 연락처를 남기고, 그가 단순히 더위를 먹은 것이라는 의사의 설명을 들은 뒤에야, 다시 목적지로 향할 수 있었다.

 

넷.
  네 개 동으로 이루어진 고급 아파트 단지는 소란스러웠다. 부산스럽게 왔다 갔다 소리치는 사람들, 꽤 오래 걸은 나는 잠시 멈추어 서서 숨을 내뱉었다. 입에서 하얗게 김이 나왔다. 밍크코트로 한껏 차려입은 아주머니가 나를 힐끗 쳐다본다. 아래위로 쓱 한 번 훑어보고서, 자신이 찾고 있는 사람이 아닌 모양인지 이내 사라져버린다. 나는 그 혼란스러운 분위기가, 이 고급스러운 단지에 어울리지 않는 낯선 풍경이라 생각하고서, 이내 발걸음을 옮겼다.
  사장의 집은 104동 404호였다. 나는 두꺼운 철제 현관문 앞에서 망설이고 있었다. 새파랗게 질린 입술 위로 붉은 립스틱을 덧칠해본다. 닳고 닳은 립스틱이 애꿎었다. 마음을 다잡고, 초인종을 가볍게 눌러본다. 한 번, 두 번, 문이 열린다. 한 여자아이가 얼굴을 내밀었다. 아이는 사장의 얼굴과 사장이 지갑에 넣고 다니는 사진 속 아내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건 좀 이상한 소리로 들리겠지만, 그 순간 내가 본 것은 나의 얼굴이었다.

 

다섯.
  “그래서, 늦었습니다”
  내 말에 인자한 표정을 한 면접관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이미 말씀드렸지만, 면접에 늦은 것에 대해서는 저도 아무것도 해 드릴 수 없네요. 늦지 않은 다른 지원자들과의 형평성이란 게 있으니까요”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대신, 모처럼 지원해 주셨고, 선행으로 인해 늦은 거니, 저도 몇 마디 도움이라도 드리고 싶군요. 아마 여느 회사의 인사 담당이나, 면접관들도 다들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을 내용이니 도움이 될 겁니다”
  그는 어깨에 힘이 들어간 모양새였다.
  “회사에 필요한 인재란 무엇일까요? 바른 인성을 가지고 그걸 실천하는 사람? 그럴 수도 있죠.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이미지가 중요한 회사 같은 경우라면 말이죠. 그런데 말입니다. 우리 회사같이 일반 소비자가 아니라 기업들을 상대로 비즈니스를 하는 회사라면 그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고객사와의 미팅이 있는데, 눈앞에 사고를 당한 사람이 있어서 그 사람을 돕다가 늦었다? 그건 난센스입니다. 누군가 그를 도울 사람은 있었겠죠. 또 그런 사람들을 돕기 위해 119가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오히려 그들을 믿지 못하고, 다른 사람을 돕다가 미팅에 늦어진다는 건 프로 의식이 없는 거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회사에서 뽑고자 하는 건, 그런 아마추어적인 감성에 물든 사람이 아니라 프로 의식이 있는 사람이란 말이죠. 그런데 프로 의식이란 게 뭐냐 하니, 그건 열정의 차이거든요. 적당히 흥미, 재미로 하는 걸 아마추어라 한다면, 정말 자신의 있는 열정, 없는 열정 다 짜내서 해야만 프로가 되는 겁니다. 가령 예를 들어 정말 우리 회사에 입사하고 싶다. 그런 열정이 있었다고 하면, 면접 시간에 맞추어 오는 것이 아니라, 새벽부터 회사 앞에 서서 기다리고, 출근하는 사원들에게 인사를 하면서 눈도장이라도 찍어 둘 수 있었던 게 아닐까요? 면접관도 사람인데 그런 사람이 있다. 면접에서 다시 만났다. 하면 마음이 더 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그리고 애초에 새벽부터 회사 앞에 와있었다면, 눈앞에서 사람이 쓰러진다거나, 사고가 난다거나, 늦을 일도 없지 않겠습니까? 뭐 그런 이야기는 그렇다 치고, 이력서를 봅시다. 사실 이력서를 이렇게 쓰면 뽑아줄 회사 어디에도 없어요. 기본적인 맞춤법, 특히 띄어쓰기, 이런 건 기본입니다. 여기에는 띄어쓰기가 다섯 개나 잘못됐어요. 그만큼 정성이 없다는 겁니다. 면접관이 면접 전에 보는 건 이 이력서뿐인데, 그런 서류에 너무 대충 한 건 아닙니까? 또 말이죠. 성장배경에 이런 거, 어린 시절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친척이 맡아 키워줬다든가 하는 내용 말입니다. 뭐 사실이건 뭐건 간에, 진부하거든요. 결국, 불우한 환경에서 용기와 희망을 잃지 않고 잘 성장했다. 그런 거 아닙니까? 이력서가 소설이나 영화도 아닌데, 감동적으로만 쓰려는 지원자들이 많습니다만, 우리가 원하는 건 회사에서 일할 수 있는 인재이지, 아침 드라마의 주인공은 아닙니다. 아시겠어요?”
  면접관의 장광설은 한 시간 동안 계속되었다. 나는 그의 말에 그저 "네"라고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반복했을 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니라고, 그건 아니라고, 목 언저리까지 올라온 말들은 마음속에 담아 둘 수밖에 없었다. 그는 면접관이었고, 나는 지원자니까.
  “요즘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면, 꼰대다. 갑질이다. 말이 많은데, 그렇게 생각하지 말아 주셨으면 좋겠네요. 다 생각해서 나온 말이고, 도움이 되라고, 저도 바쁜 시간을 내서 이야기해드린 건데, 그걸 몰라주는 게 안타깝기도 하고, 그래서 결론적으로는 제가 드린 말을 잘 새겨들으시고, 다음 기회에 다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군요. 제가 말 한대로만 하면, 스펙에 큰 결격이 있는 것은 아니니 좋은 결과가 있을 겁니다”
  “네, 감사합니다”
  나는 다소곳하게 자리에 앉아 인사를 하고, 면접실을 나왔다. 돌아가는 발걸음은 무거웠다.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이름 모를 감정 때문이었다. 이것은 화가 난 것일까. 분한 것일까. 나는 거대한 성 같은 빌딩, 그 입구를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는 유리창에 비친 얼굴을 마주하고서야 그것이 슬픔이란 것을 알았다. 휴대전화가 울렸다.

 

여섯.
  여자아이는 처음 보는 사람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말을 건넸다.
  “혹시, 아빠는 집에 계시니?”
  “없어요”
  “그럼 엄마는?”
  “없어요”
  “언제 나가셨니?”
  아이는 손가락을 꼽아 들고 몇 개를 세어보다, 이내 울상이 되어서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괜찮아, 이모가 왔으니까, 뚝”
  아이는 내게 안겨서 울음을 터뜨렸고, 나는 괜찮다는 말만을 반복했다. 정말로 괜찮은 것일까. 나는 아이를 안고서 집 안에 들어섰다. 집 안은 어수선했다. 제 자리를 모른 채 어질러진 물건들과 이리저리 쓸려 다니는 먼지 뭉텅이들, 이곳에 아이는 홀로 있었을 것이다. 아이는 몇 번의 토닥임으로 곧 울음을 그쳤지만, 이내 딸꾹질을 시작했다. 나는 아이에게 잠시 소파에 앉아 있으라고 말해 둔 뒤, 거실과 연결된 주방으로 들어갔다. 싱크대는 한 며칠 사용되지 않은 모양인지, 바짝 말라 있었다. 나는 찬장을 열어 컵 하나를 꺼내 물을 찾았다. 냉장고의 물통은 비어있었다. 하는 수 없이 수돗물을 튼다. 투명한 액체가 관을 타고 나와 싱크대를 적신다. 컵에 물이 담긴다. 나는 거실로 돌아와 아이에게 물컵을 건넸다.
  “천천히 마시면 괜찮아질 거야”
  아이는 양손으로 컵을 받아 들이켰다. 잠시 후, 진정이 된 모양인지 딸꾹질이 멈췄다. 아이는 멍하게 앉아 있다 내게 물어왔다.
  “이모가 고모예요?”
  이상한 물음이다. 나는 아이의 고모도 아니고, 이모도 아니었다. 동시에 나는 왜 아이에게 스스로 이모라 자신을 소개했을까. 나는 아이의 물음에 또 다른 물음으로 답했다.
  “왜, 그런 걸 물어보니?”
  “엄마가, 고모가 데리러 올 거라고 했어요. 엄마, 아빠는 언제 돌아와요?”
  나는 무어라 대답을 해야 할지 몰랐다. 사장과 사장의 아내는 이 아이가 필요하지 않았던 것일까. 아니다. 필요 없어진 것들은 내보내지게 마련이다. 집을 나간 건 사장과 그의 아내였다. 그들은 더는 필요 없어진 것이다. 누구에게? 적어도 이 아이가 그들을 필요 없다 한 건 아닐 것이다. 동시에 나는 배가 고팠다.
  “배고프지?”
  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다시 주방에 들어갔다. 전기밥솥은 꺼진 상태로, 마르고, 딱딱한 밥 덩어리를 품고 있었다. 쌀을 찾는다. 쌀독에 쌀이 어느 정도 남아있었다. 반찬거리가 있는지도 찾아본다. 냉장고에는 김치와 두부 한 모, 그 외의 반찬은 보이지 않았다. 김칫국이라도 끓이자. 밥솥의 마른 밥을 비우고, 씻어낸 뒤, 새롭게 쌀을 담는다. 다시 물을 붓는다. 하얀 쌀뜨물을 버리고 몇 번을 씻는다. 밥을 안치고 나면 남은 건 국을 끓이는 일이다. 냄비에 물을 끓이고, 국물을 낸다. 별다른 국물 재료를 찾을 수 없었기에, 찬장에 있던 조미료를 사용했다. 주재료로 냉장고에서 찾아낸 김치 한 포기를 꺼낸다. 잠시 주방을 둘러보며 칼을 찾아보았다. 식칼은 보이지 않았다. 문득 가지고 온 쇠붙이를 떠올리고, 손가방에서 그것을 꺼내 들었다. 필요 없어진 신문지는 쓰레기통에 넣는다. 김치를 먹기 좋게 썬다. 쉰내가 살짝 올라왔다. 끓는 국물에 김치를 넣는다. 한 번 더 국물이 끓어오를 때까지 기다렸다가 두부를 썰어 넣기만 하면 끝이다. 어느새 주방에 온기가 차오르고, 밥 냄새, 국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냄새를 맡고 온 아이가 주방을 기웃거리며 눈치를 보고 있었다.
  “이제 밥만 되면 되니까, 잠시 TV라도 보고 있을래?”
  나는 두부를 꺼내, 네모난 모양으로 먹기 좋게 썰기 시작했다. 그때 초인종이 울렸다.

 

일곱.
  “여보세요?”
  “…”
  “여보세요?”
  “저기”
  낯선 목소리였다.
  “누구시죠?”
  “오늘, 그, 도와주셨던, 병원에 연락처가 남아 있어서”
  나는 그제야 그 낯선 목소리가 주인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가 누구인지는 모른다. 표현하자면 남 아닌가.
  “아, 이제 괜찮으신가요?”
  “네, 덕분에, 감사해서, 이렇게 전화 드렸습니다”
  그의 말은 어딘가 어색한 구석이 있었다.
  “당연한 일을 한 걸요”
  “아니, 아닙니다. 이렇게 도와주셔서,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고맙습니다”
  “누구라도 그런 상황이라면…”
  나는 순간 말을 멈추었다. 나는 왜 그를 외면하지 못했던 걸까. 모두가 그를 외면했던 바로 그 순간에 말이다. 면접관의 눈에, 버스 운전기사의 눈에, 나는 대체 무엇이었을까.
  “아닙니다. 혹시, 괜찮으시면, 답례로, 변변치는 않지만, 식사라도, 저녁 괜찮으신가요?”
  내가 그의 식사 권유에 응한 것은 궁금했기 때문이다. 내가 왜 그를 도왔는지, 그의 얼굴을 봤던 순간에 들었던, 도와달라는 말의 정체가 무엇인지, 나는 알고 싶었다.

 

여덟.
  나는 우당탕 뛰어가는 아이의 발소리에 놀라, 그리고 약간의 기대감과 함께 현관으로 나갔다.
  현관문이 열린다. 그곳에 서 있는 것은 한 남자아이였다. 남자아이는 나와 사장의 딸을 한 번씩 바라보다가, 하얀 이빨을 내보이며 씩 웃었다. 나는 문득 손에 칼이 들려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것을 등 뒤로 감추었다. 붉은 김칫국물이 칼을 타고 바닥에 떨어지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사내아이는 머리가 바닥에 닿을 듯 허리를 숙여, 큰 소리로 인사했다. 나는 조금 당황했지만, “그래”하고 인사를 받아주었다.
  “엄마가 오늘은 늦게 들어온다고, 옆집에서 밥 먹고 있으라고 했어요”
  나는 잠시 사장의 딸을 보다가, 결정권은 나에게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러렴”
  확신 없이 힘 빠진 목소리였지만 옆집 아이는 신나게 신발을 벗고 집 안으로 들어왔다.
  “지금 밥하고 있으니까, 둘이서 같이 놀고 있을래?”
  그렇게 말하고서 나는 주방으로 도망쳐 들어왔다. 가스레인지 위의 국이 끓어 넘치고 있었다. 급하게 불을 꺼버린다. 이래서는 국이라기보다는 찌개다. 만약 문 앞에 서 있었던 사람이 사장이었다면….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불현듯 스쳤다. 나는 무서운 생각을 지우기 위해 고개를 저어버렸다. 대신 작은 숟갈을 들어 찌개가 된 김칫국을 맛보았다. 입 안 가득 스미는 맛, 그 맛은 무어라 불러야 하는 걸까.

 

아홉.
  약속한 시각, 약속했던 장소, 그는 무례와 예의의 경계에 있는 애매한 차림을 하고 나타났다.
  “근처에서 공부하고 있어서…” 
  헐렁한 티셔츠 차림의 그는 멋쩍은 듯 말했다.
  “그러시군요”
  잠시 어색한 정적이 감돌았다.
  “오늘은 고마웠습니다! 뭐 드시고 싶은 거라도 있으신가요?”
  침묵이 불편했는지 그는 과장된 목소리로 내게 물어왔다. 입맛이 없었던 나는 선뜻 대답할 수 없었다.
  “평소에 자주 드시는 거면 괜찮아요”
  그는 내 대답에 조금 놀란 눈치였다. 대단한 출혈이라도 생각했던 것일까. 그는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정말, 그걸로 괜찮으시겠어요?”
  “네”
  나는 짧게 대답했다.
  “조금 그렇긴 한데, 이 근처에 찌갯집이 있거든요. 맛은 정말 좋아요. 가격도 저렴해서 자주 가는데, 나쁘지 않다면”
  “그럼 부탁드릴게요”
  그가 앞장을 서고, 나는 뒤따라갔다.

 

열.
  테이블 위로 김치찌개와 공깃밥이 놓였다.
  우리는 서로 눈치만 보고 있었다. “잘 먹겠습니다” 옆집 아이가 말했다. 마침내 식사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아줌마는 누구세요? 처음 보는데…”, “우리 이모야” 여자아이가 대답했다. “썩 괜찮죠?” 공부한다는 남자가 물었다. “맛있어요!” 여자아이가 말했다. “응, 맛있어!” 옆집 아이가 따라 말했다. “너는 몇 살이니?” 이모가 물었다. “3학년! 초등학교 3학년이에요” 옆집 아이가 신나서 대답했다. “직장인이신가요?”, “취업 준비 중이에요” 취업을 준비 중인 여자가 대답했다. “난 일곱 살” 여자아이가 손가락을 세 개 접어서 보이며 말했다. “근처에 대학 다니시나 봐요”, “아뇨, 대학에 가려고 공부 중입니다” 대학을 가고 싶은 남자가 멋쩍게 웃으며 답했다. “한 그릇 더 주세요” 어느새 밥공기를 비운 옆집 아이가 말했다. “나도!” 여자아이는 아직 다 먹지도 않은 공기를 내밀며 따라 말했다. “거기다 알바까지 하시는 건가요?” 취업을 준비 중인 여자는 감탄했다. “다 먹으면 더 줄게” 여자는 옆집 아이의 빈 공기에 밥을 담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군대도 다녀왔는데, 집에 손 벌리기가 그래서…” 대학을 가고 싶은 남자는 쑥스러운 듯 말했다. “고맙습니다” 옆집 아이는 밥공기를 받아들었고, 사장의 딸은 입을 삐쭉 내밀었다. “오늘은 정말…” 뭐라 표현해야 할지 생각하던 사내는 뜬금없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거 먹어 볼래?” 칼을 품었던 여자가 김치 한 조각을 사장의 딸이 든 수저 위에 올려놓았다. “이육사 아세요?” 눈치가 빠른 초등학교 삼학년 남자아이가 “좋겠다”하고 말꼬리를 흐렸다. 사장의 딸은 의기양양해져서 김치를 입 안에 넣었다. “청포도의?”, “이거 시어요” 딸아이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네! 그분이요” 이모는 딸아이의 밥공기에 남아 있는 밥을 숟갈로 긁어모아 딸의 입 앞으로 가져갔다. “그 백마 탄 초인을 만난 느낌? 오늘은 그런 느낌이었어요” 하얀 쌀밥이 숟가락 위에 탔다. 여자는 어떻게 반응해 주어야 할지 머뭇거리다 짧게, “시적이네요” 하고 대답했다. “그럼, 밥을 더 먹어볼래?”, 딸아이는 덥석 한입에 숟갈을 물었다. “안 시지?”, “응” 딸아이는 우물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시잖아요” 시적인 남자의 대답에 테이블 위로 웃음이 살짝 감돌았다. “제가 초인이란 거죠?” 초인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밥 한 공기 더 줄까?” 이모의 물음에 딸은 잠시 망설였다. “그런데, 저는 그렇게 대단한 사람은 아니에요. 오늘도 그저 우연히…”, “배불러서 이제 못 먹겠어요”, “나는 아직 더 먹을 수 있는데~” 놀리듯이 말하는 옆집 아이를 째려보는 딸아이의 모습에 이모는 웃음을 터뜨렸다. “안 도와주셨으면 오늘 저녁은 먹지 못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시적인 남자의 목소리는 밝았지만, 초인의 귀에는 무겁게만 들렸다. “고맙습니다” 시인인 남자가 초인에게 말했다. “잘 먹었습니다!” 옆집 아이는 딸아이의 눈빛이 무서웠던 모양인지 수저를 내려놓고 말했다. 초인은 그 말이 낯간지럽게 느껴졌다. 만약 그것이 선택의 문제였다면, 이렇게까지 부끄럽지는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잘 먹었습니다” 딸아이가 말했다. “이제 일어날까요?” 초인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리고 다시 하나.
  “어떻게 가시나요?”
  식당을 나서자 하늘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시인은 초인의 귀가가 걱정스러운 모양이었다.
  “이 앞에서 버스 타면 금방이에요”
  “아, 그럼 정류장까지 모셔다드릴게요”
  두 사람은 함께 걸어가기 시작했다. 화려한 도시의 네온사인에 불이 들어오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수많은 사람이 둘을 스쳐 지나간다. 한껏 멋을 부린 사람, 전단을 나누어주는 사람, 정체되고, 다시 걸어가는 무관심한 인파에 떠밀려 그들은 함께 걸었다. 버스 정류장에는 또 한 무리의 사람들이 서 있었다. 다가오는 버스를 바라보며, 자신이 타고 가야 하는 차인지, 타고 갈 수 없는 차인지 분류한다. 사람들이 사라지고, 다시 생기고, 그 반복은 언제까지고 계속될 것만 같았다.
  “버스, 오네요”
  멀리서 다가오는 숫자를 보고서 초인이 시인에게 말했다.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시인이 인사했다.
  “다음에 한 번 연락드릴게요”
  초인이 버스에 오르며 말했고, 시인은 ‘다음’을 되뇌어 보았다. 초인은 버스에 올라, 창밖에서 손을 흔들고 있는 시인을 바라보았다. 음 소거 된 TV 속의 풍경처럼 천천히 사라져 간다. 버스는 달리기 시작했다.
  달리기 시작한 버스 안은 흔들리고 있었다. 의지할 곳 없이 들어찬 사람들이 서로의 몸에 기대어 흔들림을 버티고 있었다. 누군가의 몸에 기대어, 또 다른 누군가에게 기대게 해 주는, 말도 없이 이어진 사람들 속에 초인이 있었다. 
  버스는 계속해서 달렸다. 그리고 멈추는 것을 반복했다. 버스가 멈출 때마다, 사람들도 하나, 둘 사라지기 시작했다. 한산해져 가는 버스, 초인도 손잡이를 가지게 되었을 때, 돌아가야 할 집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제는 내려야 했다. 네 개 동으로 이루어진 낡고, 작은 아파트 단지, 초인의 집은 많은 불빛 가운데 하나인 104동 404호였다.
초인은 버스에서 내려 노란 가로등이 빛나고 있는 길을 걸어갔다. 가로등이 단지 입구에서 멈추었을 때, 초인은 붉게 깜빡거리고 있던 점 하나와 만났다.
  “오빠?”
  오빠는 104동 403호에 사는 연상의 사내였다. 오빠는 급하게 담뱃불을 꺼버렸다.
  “너냐?”
  “집에 안 들어가고 여기서 뭐 하고 있어?”
  “너야말로, 무슨 여자애가 이렇게 늦게까지 돌아다녀?”
  “꼰대 같긴”
  “너 머리 좀 컸다고, 못하는 말이 없네, 어휴, 쪼그마했을 땐 귀엽기라도 했지”
  투덜대는 오빠에게 동생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오빠 오늘도 또 과장한테 혼난 거지?”
  신입 사원이었던 시절부터 오빠는 회사에서 크게 혼나고 나면, 단지 앞에 서서 홀로 연기와 함께 한숨을 내쉬곤 했다.
  “신경 꺼. 그런데 너 오늘 면접 간다고 하지 않았어?”
  “그랬지”
  동생의 짧은 대답에 오빠는 무언가 짐작이라도 간다는 듯, 대뜸 “우리 회사에 지원하면 내가 손이라도 써 줄 텐데”하고, 위로 아닌 위로를 했다.
  “자기도 언제 잘릴지 모르는 주제에”
  동생은 딴청을 부리듯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너 말이야, 내가 얼마나 잘나가는데!”
  “아~ 그러세요? 몸에 좋지도 않은 담배나 태우지 말고 집에나 어서 들어가셔요~”
  동생은 그렇게 말하면서,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등 뒤에서 오빠라 무어라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힘들면 말해! 밥이라도 한 끼 사줄 테니까!”
  동생은 목소리를 뒤로하고 104동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승강기는 1층에 서 있었다. 다가가 화살표 버튼을 누르자 아무도 없는 승강기 문이 열린다. 누렇게 변색한 버튼에 4라고 인쇄된 숫자를 눌러 본다. 낡은 승강기가 찌뿌둥하게 기지개를 켜는듯한 소리를 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숫자가 하나씩 바뀌며, 승강기는 위로, 위로, 위로 올라간다. 그리고 4라는 숫자가 떠올랐을 때, 승강기가 멈추고, 문이 열렸다. 동생은 승강기에서 내렸다. 오른쪽은 403호였고, 왼쪽은 404호였다.
  404호, 현관 앞에 선 동생은 도어락에 다시 네 자리의 비밀번호를 입력했다. 문이 열린다. TV가 켜져 있는 모양인지 뉴스 앵커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9.4퍼센트를 기록했습니다. 1년 전과 비교해 0.1퍼센트포인트 상승하면서 8월 수치로는 외환위기 시절인 1999년 이후 최고로 올라섰습니다’
  “다녀왔어요”
  자신이 돌아왔음을 알리는 소리에도 돌아오는 목소리는 없었다. 신발을 벗고 거실로 들어선다. 꾸벅꾸벅 졸고 있는 이모가 소파에 앉아 있었다.
  “방에서 주무시지, 이모도 참”
  가볍게 이모의 팔에 손을 가져가면서 말하는 딸의 목소리에, 이모가 부스스 눈을 떴다.
  “왔니? 밥은?”
  이모의 목소리에는 잠기운이 묻어났다.
  “먹고 왔어요”
  딸이 소파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가려 하는 이모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거칠어진 손바닥의 감촉에, 딸의 손에는 자기도 모르게 힘이 들어가 버리고 만다. 이모는 거친 손이 부끄러워서인지 슬그머니 딸의 손을 놓으려고 했지만, 딸은 그 손을 놓지 않았다.
  “오늘 어땠니?”
  이모는 딸의 손을 잡은 채 물었다. 딸은 활짝 웃으며 쾌활하게 대답했다.
  “괜찮았어요. 정말로요”
  이모는 딸을 따라 웃었다.
  “잘 됐으면 좋겠네”
  둘은 얼굴을 마주 보고 미소 지었다. 그러다 딸은 문득 떠올랐는지, 호들갑스럽게 말했다.
  “내일도 새벽에 일찍 나가셔야 하죠? 어서 주무세요”
  딸은 이모를 침실로 이끌었다.
  “얘도 참”
  “저도 바로 씻고 잘게요”
  “잘 자렴”
  딸은 이모가 잠자리에 드는 것을 보고서 다시 거실로 나왔다. 아무도 없는 거실, TV에서 머나먼 이국의 풍경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딸은 TV를 바라보며 잠시 망설이다, 이제껏 누구에게도 전하지 못했던 마음을 따라 입술을 움직여 보았다.

  그때 어두운 도시의 밤은 차라리 밝았다. 그리고 아파트 단지의 불빛 하나가 꺼진 사실에 대해선 아무도 관심이 없었을 것이다.

김규민(교육대학원 석사 16)  press@pu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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