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대학에 입학한 필자는 입학식에서 총장님께 ‘충성’구호를 외치며 거수경례를 했다. 고등학교에서 교련 수업을 받았기 때문에 심리적인 거부감 따위는 없었다. 왜 이렇게 해야 하는지 살짝 의문이 들기는 했지만, 마음속은 앞으로 펼쳐질 대학 생활의 설렘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연일 최루탄 연기가 난무하는 캠퍼스에서 대학 생활의 낭만을 추구하는 것은 사치였다. 민중, 조국, 역사 등 낯선 단어들이 신입생의 어깨를 짓눌렀다. 당시 대학은 부당한 현실에 대한 비판과 저항의 전진기지였다. 그 중심에 학생회가 있었다. 1980년 광주 민중들을 총칼로 짓밟고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 군사정권에 학생회는 눈엣가시였다. 교정은 사복경찰의 감시하에 있었고 구호를 외치고 유인물을 뿌리는 것은 투옥을 감내해야만 가능했다. 그러나 군사정부도 민주주의의 도도한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1985년 학원 유화 조치가 발표되었고, 학도호국단 체제에서 학생회로 전환되었다. 오늘날 자치기구로서 학생회는 그렇게 부활했다.

학생회 선거 기간이 다가오고 있다. 입후보자가 없다거나 학생들의 무관심으로 총학생회 선거가 무산되는 일은 어김없이 되풀이될 것이다. 벌써 언론에서는 취업 준비에 매몰된 대학생들의 무관심한 태도를 질타하는 보도를 하고 있다. 물론 그들의 책임이 아니다. 청년 실업률이 연일 최고치를 기록하고 고등교육의 주체로 대접을 받고 있지 못한 상황이 빚어낸 결과다. 한때 지성의 전당이었던 대학은 취업양성소로 전락한 지 오래다. 성과라도 좋으면 모를까, 대학 진학률 80%는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취업률은 OECD 국가 중 꼴찌다. 교육부는 돈을 틀어쥐고 구조조정이라는 핑계로 각종 대학평가를 시행하면서 대 학의 서열화를 부추기고 있다. 대학 당국은 취업에 도움이 되는 실무 과목을 앞다투어 개설하면서 기초학문을 담당하는 학과들을 통폐합시키고 있다. 시대 변화를 읽지 못하고 미래를 주도하지 못하는 교육 정책 탓이다.

지난 30여년 동안 우리 사회는 급변했다. 이른바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도래했다.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모바일 기술 등에 기반을 둔 초연결사회에서 인공지능 기술과 딥러닝(Deep Learning) 방식으로 스스로 학습하는 로봇은 인간의 노동을 대체할 것이라는 디스토피아적 전망도 쏟아지고 있다. 교육 분야도 예외는 아니지만, 인공지능과 자동화 기술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맥킨지 앤드 컴퍼니(McKinsey& Co)의 보고서에 따르면, 800개 이상의 직업군 중에 교육 분야가 자동화할 수 있는 기술적 타당성은 가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보와 지식의 전달이라는 1차적 과제를 넘어 교육의 본원적 목적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달성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그래서 교육과혁신연구소 이혜정 소장의 연구 결과는 충격적이다. 대학생들은 자신의 생각이 교수와 다를 경우 90%가 본인의 생각을 포기한다는 것이다. 기존의 지식에 순응하면서 이의제기를 하지 않는 순한 양 같은 학생들만 양산하는 교육시스템의 고발 보고서다. 

신입생이 총장에게 거수경례하는 코미디는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투쟁해야 할 시대도 지나갔다. 학생회에 대한 무관심은 피 말리는 경쟁 사회에서 각자도생의 의식적 활동이다. 자신들의 결사체를 만들고 의견을 표방해도 현재 교육 시스템에서 전혀 반영되지 않을 것이라는 낙담과 비관의 절규에 다름 없다. 그럼에도 인간과 인간, 심지어 인간이 사물과 연결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연대와 공동체에 대한 관심은 우리가 인공지능과 자동화 기술로 무장한 로봇에 비교우위를 지닌 유일한 영역일 것이다. 다가오는 학생회 선거에서 당차고 창의적인 생각과 의견이 캠퍼스 곳곳에서 들려지기를 기대해 본다 .

김대경

동아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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