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이하 하라리)가 올해에는 <호모 데우스 - 미래의 역사>로 화려한 귀환을 알렸다. 하라리는 현생인류 사피엔스의 긴 역사를 일필휘지로 그려낸 뒤, 앞으로 인공지능 및 생명공학의 도움으로 인간은 ‘데우스’(신)가 된다고, ‘인간은 기계와 결혼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결혼비용이 너무 비싸다. 그래서 극소수 부자 사피엔스만 신과 같은 존재가 되는 반면 나머지 절대다수는 쓸모없는 존재로 전락하는 사피엔스의 종언 가능성을 진단한다. 끔찍한 미래다. 제우스 같은 데우스가 될 쪽과 하우스도 없이 마우스만 움켜쥔 쪽 사이의 괴리가 지금 수준을 넘어 ‘신과 인간’ 만큼이나 커질 것이라는 경고에 모골이 송연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물론, 눈부신 과학기술의 발전과 그 엄청난 여파를 말해주는 하라리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 것은 모래사장에 혼자 머리를 파묻고 아무것도 안 보인다는 주문을 외는 바보짓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여전한 오늘 여기의 문제와 모순을 직시하고 현실을 (그래서 미래를!) 바꿀 필요성을 깨닫는 것도 사피엔스다운 일이다. 이런 점에서 사피엔스를 오래전 지구의 지배자로 만든 이유에 더더욱 눈길이 간다. 즉, 호모 에렉투스나 네안데르탈인 같은 사촌들과 생존경쟁을 했을뿐더러 사자나 상어 같은 포식자들 사이에서 죽지 않고 제 몸 건사하기에 바빴던, 유별날 것도 없는 사피엔스를 만물의 영장으로 만들었다는 ‘인지혁명’이 눈에 쏙 들어온다. 이 혁명의 결과로 얻은, 실체가 없거나 실재하지 않는 것을 꿈꾸는 ‘허구의 상상력’을 통해 사피엔스가 집단적인 협력이 가능해지며 단숨에 먹이사슬의 꼭대기로 올라섰다고 한다. 그리고 7만 년이 지난 지금 인간은 AI·생명공학 엔진을 탑재한 급행열차로 올림포스 신전을 향해 돌진하고 있다. 물론 그 설국열차가 종착역에 닿으면 맨 앞 1등석 사람들만 제우스로 내릴 것이다.
사실 사피엔스의 현재도 모순과 어둠으로 점철되어 있다. 가난은 가난으로만, 풍요는 풍요로만 향하는 세상이다. 이렇게 1%와 99%로 갈라져서 맞는 미래는 가공할 지옥도가 되기 십상이다. 물론 ‘호모 데우스’는 정해진 결과가 아니라 가능성이라고 하라리도 말했다. 그래서 사피엔스를 지금의 사피엔스로 만든 그 ‘상상력’을 다시금 우리 유전자에서 끄집어내는 일이 필요하다. 지금도 엄연히 존재하는 심각한 모순과 불평등을 넘어선 세상, 더 나은 세상을 ‘상상’하고 꿈꾸는 일이 필요하다. 이미 50년 전, 세계를 뒤흔든 68혁명의 주축인 청년 학생 사피엔스가 조상의 유전자가 느껴지는 슬로건을 꺼내 들었다. ‘상상력에 권력을!’

현재의 가능성이 미래의 가능성을 규정한다. 현재가 바뀌지 않으면 99%의 사피엔스는 ‘호모 데우스 시대’의 잉여가, 미래의 역사는 ‘디스토피아의 역사’가 될지 모른다. 하지만 다행히 미래는 열려 있고, 그래서 미래다. 게다가 우리는 배울 과거도 있다. 세상은 고귀한 자와 미천한 자로 나뉜다고 99%가 믿을 때, 그렇지 않다고 온몸으로 반란한 1%도 바로 사피엔스였다. 상상력이 열려있으면 미래도 열려있다. 조상 사피엔스의 이름으로, 청년 학생 선배 사피엔스의 이름으로 다시금 외쳐보자. ‘상상력에 권력을!’

정대성(사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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