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롭던 마을이 단번에 스산해졌다. 수년 전 밀양이 그랬고, 지금 성주가 그렇다. 온 마을이 현수막으로 뒤덮이고 길거리엔 경찰차가 늘어서있다. 주민들은 낯선 이에게 경계의 눈빛을 보내다가도 한편으론 눈물을 훔친다. 전쟁터를 방불케 할 만큼 처참한 광경이다. 이런 곳에 발을 들일 때면 왠지 모르게 불편해지곤 하는데, 당사자들을 마주할 때는 그 정도가 심해진다. 얘기를 듣고 있노라면 ‘취재하기 위해’ 그곳을 찾은 자신이 부끄러워지고, 종일 자책과 합리화를 반복하게 된다. ‘나와는 무관하다’며 침묵할 수 있었던 거리감이, 당사자들을 마주해야만 느낄 수 있는 참담함 덕에 무너져버리는 것이다.

성주 주민들을 향한 시선이 잔인한 이유도 별반 다르지 않을 거다. 사실 1년 전만 해도 그들을 향한 비난은 그리 심하지 않았다. ‘사드 배치’ 찬반 여론 역시 크게 차이나지 않았다. 그런데 북한의 야만적인 행위가 상황을 바꿔 놓았다. 최근 실시된 조사에선 사드 배치를 찬성한다는 입장이 70%를 넘어서기도 했다. 이에 비례해, 반대 시위를 펼치고 있는 성주 주민들을 향한 비난도 늘어갔다. ‘님비(NIMBY)’라며 손가락질하고, 보상금을 노리는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하는 데에 이르렀다. 성주 주민들의 입장은 변한 게 없는데,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1년 새 돌변해버린 것이다. 이는 성주에 배치될 사드의 위협보다, 언제 미사일을 쏘아댈지 모를 북한의 위협이 더욱 가깝다 느낀 탓이다.

안타까운 건 이들의 날선 대립이 서로 다른 지점에서 시작됐다는 점이다. 적어도 성주 주민들이 생각하는 ‘사드 배치’는 ‘찬반’의 문제가 아니다. 성주 사람인들 전쟁이 달가울 리 없다. 그들이 1년 내내 외치고 있는 건 ‘사드 배치 반대’가 아니라 ‘절차적 정당성’이다. 사드 배치 결정이 시작부터 불합리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설득하거나 합의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고, 그저 통보해버렸다. 부지를 번복하는 과정에선 ‘성주여야만 한다’는 당위성마저 상실했다. 국방부는 계속해서 침묵을 유지했고, 대선 직전의 어수선한 틈을 타 급습 배치를 강행했다. 심지어 대통령의 추가 배치 결정은 그의 후보시절 언사를 되새겨봤을 때, 성주 주민들에겐 배신에 가까웠다.

어떤 과정에서도 절차적 정당성은 찾아볼 수 없었다. 주민들이 이에 반발한다는 것은 정부도 분명히 알고 있다. 몰랐다면 경찰 저지선을 뒤로 물리지도, 주민들에게 편지를 보내지도 않았을 것이다. 다만 잔인해진 여론을 묵인한 채 일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은, 그 속내를 의심하게 할 뿐이다. 매조지된 것 없이 시간은 흘렀고, 결국 성주는 고립됐다. 이미 발사대 두 기가 성주 땅을 점령했고, 수백 명의 경찰이 상시 주둔하고 있으며, 정부는 여전히 주민들을 무시하고, 여론은 날이 갈수록 질타를 더하고 있다. 주민들의 일상은 시위로 뒤덮인 지 오래다. 사드 배치 데드라인을 코앞에 둔 이들은 ‘사무여한(死無餘恨)’을 외치며 밤잠조차 이루지 못하고 있다. 고작 “사드 배치는 정상적으로, 합법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얼른 악몽에서 벗어나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당연한 소망 때문에 말이다.

집으로 돌아온 후 거리감을 되찾아 안도하는 자신을 보며 경멸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수년 전 밀양에서의 모습과 달라진 게 없었던 탓에 죄책감은 조금도 덜어지지 않았다. 그들의 불편한 일상을 마주한 이 우스꽝스러운 자화상은, 오늘도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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