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의 기고에서 언급했듯이 필자는 세계에서 소위 가장 행복하다는 나라들을 찾아 돌아다녔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이었던 나라 중의 하나가 덴마크였다. 필자가 이 나라에 살면서 가끔 내가 꿈을 꾸는 것이 아닌가 착각할 때가 있었다. 대표적인 경우가 지도자를 만날 때이다. 이 나라 지도자는 청렴하고 유능하다. 정치인들이 교도소에 가는 경우를 극히 보기 어렵다. 이보다 더 인상적으로 생각한 것은 자신을 낮추는 겸손함이다. 그동안 많은 나라를 돌아다녔지만, 이 나라의 지도자들처럼 겸손하고, 드러내지 않는 경우를 보지 못했다.

2014년 11월 덴마크 여왕이 오래전 그녀의 할머니가 재정을 지원해서 세운 교회의 250주년 기념 예배에 참석한 적이 있다. 여왕이 온다고 해서 요란할 것으로 기대했는데 그림자처럼 왔다가 예배가 끝나자 고요히 사라졌다. 요란한 경호나 구름 같은 수행원들이 전혀 없었다. 또한, 당연히 있을 것으로 기대했던 250주년 기념 축사조차 없었다. 할머니가 세운 교회인데, 이해가 되지 않았다. 우리나라 같으면 구청장이 오더라도 꼭 축사를 시켜줘야 한다. 군주의 위세 드러내기가 전혀 없었다.

겸손함, 드러내지 않기가 이 나라 지도자의 덕목이다. 군주의 행차가 조용하기 때문에 수상이나 장관, 시장이나 도지사의 행차도 조용하다. 대기업의 회장도 정말 소리 없이 다닌다. 덴마크 사람들과 얘기 하다 보면, 현직 총리와 사우나를 같이 했다든가 헬스장에서 러닝을 같이 했다는 소리를 듣곤 한다. 필자는 이 나라 국회를 몇 차례 방문했는데 이때 국회 광장을 거쳐야 한다. 언젠가는 바로 직전 총리가 국회 광장에 나와서 행인들과 같이 담배 피우는 모습을 목격했다. 그런데, 이 사람이 2015년 선거에서 다시 총리로 복귀하였다. 지도자가 일반인과 전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하는 나라가 덴마크이다.

지도자들이 사람들을 매우 배려하고 존중한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이는 단적으로 손님을 맞이하는 데서 나타난다. 필자는 이 나라에 와서 꽤 많은 지도자를 만났는데 어느 누구도 비서에게 커피를 따르도록 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코펜하겐 시청의 아동 및 청소년 담당 시장 같은 경우는 비서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직접 기계에서 커피를 내려 필자에게 권했다. 이 나라의 토머럽이라는 시를 방문했을 때는 시장이 정문에 나와서 기다리고 있다가 필자를 자신의 사무실로 안내한 경우도 있었다. 방문객 입장에서는 매우 배려받는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많은 나라를 돌아다녀 봤지만 이러한 모습은 사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경험하기 쉽지 않은 장면이다.

덴마크 지도자들을 만나보면 또한 매우 따뜻함을 느낀다. 코펜하겐 아동 담당 시장을 찾아간 날은 매우 쌀쌀하고 눈발이 날리는 을씨년스러운 아침이었는데, 시장이 필자에게 이런 날은 따뜻한 커피를 마시는 것이 좋다고 기계에서 직접 커피를 내려 한잔 권하는 것이었다. 어느 나라에서도 경험하기 어려운 진풍경이다. 필자에게만 이러한 친절과 호의를 베풀지 않았을 것으로 확신한다. 코펜하겐 시민이 찾아가면 더 잘해주지 않을까 생각한다. 덴마크 사람들이 행복한 이유가 아닐까?

시선을 우리나라로 돌려보면 아쉬운 부분이 너무 많다. 지도자들의 행차가 너무 요란하다. 우리나라 대통령이나 국무총리의 행차는 북유럽의 군주들보다 훨씬 더 요란하다. 작은 지도자들의 행차도 요란하기는 마찬가지다. 지도자들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서 대단한 노력을 한다. 이에 비해 민초들의 “얼굴”은 없다. 요란하고 군림하는 모습이 우리나라 지도자의 이미지다. 새롭게 취임한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도가 고공행진이다. 그의 높은 지지도는 정책의 콘텐츠보다도 국민을 대하는 그의 모습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는 대통령처럼 느껴지기보다는 그냥 편안한 동네 아저씨 같은 느낌을 준다. 또한, 국민을 아끼고 아픔을 같이한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는 민초들에게 무릎을 꿇게 하기보다는 자신이 무릎을 꿇고 일반 국민을 대하고 있다. 우리 국민의 마음속에 그러한 지도자를 갈망하고 있었던 것이다. 앞으로 지도자들의 모습에 좀 변화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박세정

계명대 행정학과 교수

저작권자 © 채널PNU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