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위기다. 북한과 미국 사이에는 연일 험악한 언어가 오가고 있다. 북한이 미국령인 괌 근해를 미사일로 타격할 거라고 나오자, 미국은 그러기만 해봐라, 북한을 지도에서 깨끗이 지워주겠다고 을러댄다. 그러자 북한은 또 남한이 불바다가 될 수도 있다고 내뱉는다. 우리는 한마음으로 전쟁만은 어떻게 일어나지 말기를 바라지만, 양쪽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어떻게 잘 풀리기만 바라고 있다.
 
  역사에는 절망적인 것 같은 상황에서 기적적인 협상 타결로 위기가 해소된 경우들이 있다. 유명한 993년의 ‘서희-소손녕 협상’에서 ‘고구려 땅을 내놔라. 안 그러면 멸망시키겠다’며 설치는 요나라의 소손녕에게 서희는 당당하고도 침착하게 대응했다. ‘우리 고려야말로 고구려의 후예이니, 당신네가 먼저 땅을 내놔라’고 받아치고는 요나라의 진짜 의도에 접근했다. 송나라와 대결을 벌이기 전에 고려를 한편으로 만들어 후환이 없도록 하려는 것! 
 
  서희는 ‘우리도 좋다. 그러나 여진족이 길을 막고 있어 사신을 보내지 못한다. 압록강 일대의 땅을 준다면 요에 귀부하겠다’고 했고, 그 결과 전쟁을 끝냈을 뿐 아니라 강동 6주까지 얻었다. 이를 두고 서희를 외교의 천재라 하는 한편 우세한 군대를 갖고 승리는커녕 땅까지 되레 갖다 바친 소손녕은 천하의 바보라고 한다. 그러나 사실 강동 6주는 본래 여진족 땅이었고, 요가 지키기 어려운 땅이었다. 계륵을 쥐고 있느니 고려에 넘겨준다, 그러면 여진과 고려는 그 땅을 둘러싸고 옥신각신하느라 요와 송의 싸움에는 개입하지 못할 게 아닌가? 하는 게 소손녕의 속내였다. 아무튼, 그 모든 걸 꿰뚫어 보고 도랑 치고 가재 잡은 서희의 위대함은 변함이 없다.
 
  1187년, 예루살렘에서도 믿지 못할 협상이 타결되었다. 십자군이 팔레스타인에 세운 나라의 수도였던 예루살렘을 이슬람 세력의 대표, 살라딘은 함락시키기 직전에 있었다. 상대도 안 되는 병력으로 애써 성을 지켰지만 결국 성벽이 부서지는 걸 막지 못했던 십자군 쪽의 발리앙은 홀로 살라딘의 진영을 찾아 평화협상을 요구했다. 이제 다 된 밥에 숟갈만 뜨면 되는 마당에 무슨 협상이냐고 살라딘은 웃었으나, 발리앙은 ‘그러면 당신네 예언자를 기리기 위해 지었다는 알 아크사 모스크를 파괴하겠다’고 외쳤다. 그 모스크 때문에 예루살렘은 이슬람에도 성지가 아니었나? 살라딘은 무시하고 밀어붙일 수도 있었으나, 이슬람의 구원자라는 자신의 평판에 해가 될까 봐 발리앙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그리고 보기 드문 관대한 처분을 한 지도자라는 명성을 얻어, 예루살렘 주민들의 자발적인 충성을 얻어냈다. 
 
  한편 원만히 이루어질 뻔한 화해가 일부의 음모나 아집으로 무산된 사례도 있다. 1870년, 프랑스는 에스파냐의 왕위 계승권을 놓고 프로이센과 대립했다. 프로이센이 자기네 왕실의 레오폴트를 차기 왕으로 세우려 한다는 사실에 프랑스는 엄중히 항의했으며, 전쟁도 불사한다고 선언했다. 그러자 전쟁을 원치 않았던 프로이센의 빌헬름 1세는 엠스 온천에서 프랑스 대사를 만나 레오폴트 건을 포기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이를 못마땅히 여긴 프로이센 수상 비스마르크는 협상 결과를 알리는 전보를 조작해서, 프랑스 대사가 엄청 무례하게 빌헬름을 대한 것처럼 만들어놓았다. 과연 프로이센의 여론은 들끓었고, 양국관계는 돌이킬 수 없이 악화하여 결국 전쟁으로 치닫게 되었다.
 
  또한, 1914년 제1차 세계대전도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다. 세르비아의 사라예보에서 황태자 부처가 암살된 데 격분한 오스트리아는 세르비아에 기가 막힐 정도로 과도한 배상안을 들이밀었다. 세르비아 정부는 고심 끝에 대부분의 요구를 수락하기로 했으며, 양국을 중재하던 국가들이 보기에 그것은 실로 믿지 못할 정도의 양보였다. 그런데도 어떻게든 전쟁을 벌이고 싶어 안달하던 오스트리아 황실은 ‘단 1개 조항이라도 거부한다면 협상은 결렬’이라 지침을 보냈으며, 결국 세르비아에 선전포고했다. 이로써 오스트리아 황실 자신을 스스로 끝장내고 유럽 전체를 폐허로 만들게 될 전쟁이 시작되었다.
 
  지혜와 인내로 파국을 돌이킬 수도 있다. 무지와 아집으로 파멸을 자초할 수도 있다. 한반도에 큰 위기와 기회가 교차하는 지금, 정부와 국민 모두가 정신을 바짝 차릴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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