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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예술, 한계는 어디서 오는가
  • 김미주 기자
  • 승인 2017.06.05 07:21
  • 호수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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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년 전, 피란수도 부산에서는 젊은 화가들 사이에 불꽃 튀는 경쟁이 일었다. 타지의 예술가들은 속속 부산으로 모여들었고, 이는 우리 지역의 예술가들을 자극했다. 당시 예술의 성지가 되었던 광복동 일대. 부산의 화가들은 '토벽동인'이라는 집단을 결성해 자신들만의 차별성을 보여줬다. 이들의 활동은 2년 동안 3회의 전시에 그쳤지만 한국 미술사에 남긴 흔적은 짙다. 하지만 지금 이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부산시립미술관은 부산 토박이 작가인 ‘토벽동인’과 한국 대표 모더니즘 작가 모임인 ‘신사실파’의 작품을 대립구도로 전시했다. 필자는 토벽동인 전시회 관람객들의 감상을 들어보려 했지만 신사실파 전시만을 감상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토벽동인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했던 필자는 이내 진이 빠졌다. 잠시 취재를 멈추고 신사실파 화가의 전시회로 발길을 옮겼다. 그곳에는 이중섭, 유영국과 같은 미술계 거장들의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었다. 일순 시민들이 처음 들어보는 지역 작가의 전시회보다 익숙한 작가들의 전시회로 눈길을 돌리는 것이 이해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토벽동인의 작품은 어떨까. 이들은 부산을 단순히 작품소재로 다룰 뿐 아니라, 그 시대의 지역 모습을 담은 향토적 사실주의를 추구했다. 그리고 그 작품에는 그들의 애정 어린 시선이 담겨 있다. 타지 작가에 비해서 절대 뒤지지 않는 토벽동인의 작품이 왜 조명 받지 못했을까. 처음에는 이들이 갖는 ‘지역성’이 양날의 검이 된다고 생각했다. 지역적 색채는 토벽동인의 정체성을 보여준다. 하지만 지역 화가들이 수도권 출신 화가들보다 역량이 부족할 거라는 편견을 불러일으켜, 이들이 저평가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취재를 모두 마친 후 다시 한 번 찬찬히 토벽동인의 그림을 살펴보았다. 그들의 작품은 ‘토벽동인’이라는 명칭답게 부산 ‘토박이’만이 낼 수 있는 화풍으로 그려져 있었다. 분명 타지 작가들과 구분되는 점은 토벽동인만의 향토성이었다. 지역성이 그들의 가능성을 한계 짓는다고 할지라도 그는 분명 ‘토벽동인’의 작품 그 자체였다. 이내 필자가 여태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걸 알아챘다. 신사실파 전시를 보고 유명한 화가들의 전시가 이목을 끄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해왔다. 또한 줄곧 ‘수도권이 아닌 부산이기에 대중으로부터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을 것’이라는 편견이 박혀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편견이 토벽동인이 현재까지도 제대로 조명 받지 못하는 이유가 아닐까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전시 주최 측은 유명한 신사실파 작품들로 이목을 끈 후, 토벽동인에 대한 관심을 유도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동시대 활동한 두 집단의 '대결'구도가 관람객의 흥미를 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으리라. 하지만 한편으로 유명한 작가들의 후광효과를 보아야만 지역 작가들이 조명되는 현실이 안타깝다. 왜 우리 지역 작가들은 다른 작가들의 명성에 힘입어야만 이목을 끌 수 있다고 보는가. 더 이상 토벽동인이 가진 지역성이 한계에 불과하다는 편견이 지속돼서는 안 된다. 이제부터라도 이들이 가진 지역적 특색을 하나의 독자성으로 바라봐야할 때가 아닐까.

 

김미주 기자  o3oolo@pu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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