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는 국민의 뜻을 모으는 일이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후보자들 가운데 한 사람을 고르는 일’이 되다 보니, 후보자의 행동이 선거 결과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게 되는 일이 많다. 그리고 이처럼 개인이 선거에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개인의 행동을 좌우할 수 있는 우연과 오판이 선거에 미치는 영향도 커질 수밖에 없다.

가령 ‘민주주의가 얼마나 잘못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가’의 대표적 사례로 꼽히는 1932년 히틀러의 집권을 가져온 선거는 여러 우연의 작용이 없었다면 전혀 딴판이 될 수도 있었다. 히틀러는 본래 미술학도가 되기를 염원했지만, 아버지의 강압으로 실업학교에 들어갔다. 그래도 다시 꿈을 불태웠으나, 미술대학 입학에 떨어졌다. 그가 본래의 꿈을 꿀 수 있었다면? 그는 세계대전에 참전한 뒤 군인으로 먹고살기로 작정하는데, 감시 임무를 띠고 독일노동자당(훗날의 나치당) 모임에 참여했다가 고민 끝에 그 당(당시에는 당이라기보다 동호회 수준이던)에 가입한다. 그가 어느 정도 보장되어 있던 군인의 길을 계속 가기로 했다면? 히틀러는 나치당의 중심인물이 되어, 1923년에 ‘맥주홀 쿠데타’를 일으키지만 실탄을 쏘며 진압에 나선 경찰에게 진압된다. 그때 히틀러가 총격으로 사망했다면? 히틀러가 총선에서 파란을 일으킬 즈음에 독일 정국은 슐라이허가 이끄는 군부가 좌우하고 있었는데, 그는 히틀러는 위험하니 제거해야 한다는 충고를 무시한다. 그러나 나중에는 히틀러를 멀리하고 자신이 앞장세웠던 파펜도 숙청하는데, 분노한 파펜이 히틀러와 손을 잡음으로써 슐라이허를 밀어내고 히틀러가 정국을 장악하게 된다. 슐라이허가 다르게 판단했더라면?

1960년 미국 35대 대통령에 당선된 케네디도 하마터면 선거에서 질 뿐 아니라 정계에서 퇴출될 뻔했다. 그는 오랫동안 에디슨병을 비롯한 각종 질환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대외적으로는 이를 절대 비밀로 하면서 건강하고 활기찬 이미지를 만들어 보였다. 그런데 그의 의료가방이 선거운동 중에 분실된 것이다. 그게 상대 후보 진영이든 어디든 들어가는 날이면 선거는 끝장이었고, 국민을 오랫동안 속인 정치인이라는 오명을 쓰고 정치 인생마저 끝날 수 있었다. 그러나 무사히 되찾음으로써 위기는 사라졌다. 반대로 상대 후보 닉슨이 유세 도중 부상을 입고, 회복이 덜 된 채로 TV 토론에 나왔다. 그래서 유권자들은 ‘건강 만점의 케네디와 다 죽어가는 닉슨’의 이미지를 갖고 선거에 참여하게 되었다.

주요 후보자들의 오판 역시 선거 결과를 뒤바꿔 놓는다. 1913년의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의 태프트 대통령은 재선에 도전했다. 그러나 그는 전임자인 시어도어 루스벨트에 비해 인기가 없었고, 루스벨트도 ‘저 덜떨어진 친구보다는 내가 한 번 더 하는 게 나을 텐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태프트는 양보하지 않았는데, 루스벨트는 이미 두 번 대통령을 했으며 관례상 3번째는 불가했기 때문이다. 한때 절친이던 두 사람은 끝내 의견을 좁히지 못했고, 루스벨트는 따로 진보당을 차리고 대선에 나왔다. 그러나 공화당 표가 이로써 나눠짐으로써 승리는 민주당의 우드로 윌슨에게 돌아갔다. 공화당에 비해 정당 지지율이 형편없었던 민주당은 이로써 어부지리로 16년 만에 백악관을 차지했다.

1987년, 대한민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6월 항쟁의 결과 16년 만에 국민의 손으로 대통령을 직접 뽑게 되자, 남은 것은 김영삼, 김대중 ‘두 김 씨’ 가운데 한 사람이 대선에서 당선되어 오랜 군부 통치를 종식시키는 것이 되었다. 그러나 후보 단일화는 끝끝내 실패하고, 두 김 씨는 서로 ‘나 혼자 나가도 당선될 수 있다’는 헛된 망상에 사로잡혀 어제의 동반자에서 오늘의 숙적으로 바뀌었다. 결국 12.12 군사반란의 주역인 노태우가 당선되고, 군부 통치는 연장되었다.

선거란 국민의 뜻에 따라 그 시대에 가장 절실한 과제를 해결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실제는 우연이나 후보자들의 오판에 크게 좌우된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진정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선거가 되려면, 냉철한 판단으로 편견과 선동에 휘둘리지 않는 선택을 해야만 할 것이다. 

함규진 서울교육대 윤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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