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자 파인만은 인류가 밝혀낸 지식 가운데 가장 위대한 것은 ‘세상은 원자로 되어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오늘날에는 원자의 존재를 당연하게 받아들이지만 이러한 사실을 확인하게 된 것은 인류의 역사에서 극히 최근의 일이다. 크기가 너무 작아 아무리 성능 좋은 현미경으로도 직접 볼 수 없는 원자를 상상하는 일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작은 원자가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우주를 구성하고 있다는 것은 모순처럼 느껴진다.

과학 시간에는 데모크리토스가 원자의 존재를 처음 주장했다고 배운다. 하지만 데모크리토스의 주장은 관념적이고 사변적인 것일 뿐 그는 원자가 존재한다는 어떤 증거도 제시하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원자설을 주장한 돌턴도 원자의 존재를 유추할 수 있는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원자의 구조는 전자가 발견되고 원자핵의 존재가 드러나면서 비로소 밝혀진다. 원자의 구조가 밝혀지면서 세상에 대한 과학자들의 인식은 급격하게 넓어졌다. 원자가 어떻게 결합하는지에 따라 세상을 비추는 거대한 태양이 되기도 하고, 발길에 차이는 한낱 보잘것없어 보이는 돌멩이가 되기도 한다. 셀 수 없이 다양한 물체로 이뤄진 우주를 구상하는 데 사용된 재료는 기껏 백 수십여 가지의 원소뿐이다. 또한 재료를 구성하고 형태를 만드는 방법은 4가지 즉 전자기력, 중력, 강력, 약력밖에 없다. 우주 삼라만상(森羅萬象)이 이렇게 단순한 방식으로 형성되어 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지만 과학자들은 이것도 복잡한 것인지 ‘모든 것의 이론(Theory of Everything, ToE)’이라는 하나의 원리로 합치려고 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우주의 구성 방식과 <마인크래프트>라는 게임이 많은 유사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원자가 하나씩 모여 세상이 탄생하듯 마치 디지털 레고처럼 보이는 이 게임은 정육면체의 큐브를 하나씩 쌓아서 여러 가지 물건을 만든다. 큐브를 하나씩 쌓아서 자신이 상상 물건이나 건물을 만들다 보면 세상의 창조주가 되는 느낌, 그것이 이 게임의 묘미다. 일부 게이머들이 예술의 경지에 오를 정도의 건축물을 만들기도 하지만 실재 세상과 비교하면 <마인크래프트> 속의 세상은 단순하다. 복잡성의 차이가 있지만 아무리 단순한 물건도 게임 속에 등장하기 위해서는 게이머가 만들어야 한다. 그렇다면 훨씬 복잡한 실재 세상에서 당연히 창조주인 신이 존재해야 한다고 여길 것이다. 물론 종교에서는 신의 존재를 상정하지만, 과학자들은 신의 개입 없이 지금과 같은 세상이 저절로 생겨날 수 있다고 믿는다. 마치 거인들의 조각 작품처럼 보이는 아이슬란드의 거대한 육각기둥 현무암이나 어떤 디자이너의 작품보다 화려한 눈꽃을 보면 누군가 설계하지 않고 저절로 만들어지기는 어렵다고 느껴진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자연에서 볼 수 있는 아무리 복잡하고 아름다운 구조라도 자기 조직화에 의해 탄생할 수 있다고 믿는다. 원자와 분자들이 스스로 결합해 다양한 구조를 생성해 낸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 글에서 무신론을 주장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신의 존재를 믿는다면 이러한 우주 창조의 원리가 바로 신의 뜻이라고 하면 될 터이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단지 자기 조직화라는 것이 얼마나 창조적이고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는지를 말하고 싶었을 뿐이다.
 

2017년 3월 10일.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고 하는 헌법 정신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한동안 혼돈을 경험했지만, 그 속에서 새로운 질서를 창조해 냈다. 시민 한 사람은 한 사람은 하나의 원자처럼 보잘것없고 미약하지만, 자발적으로 모인 수십 수백만의 사회적 원자들은 새로운 질서를 창발해낼 정도로 강했다. 세상의 거대한 물체도 눈에 보이지 않는 원자에서 시작되듯 민주주의도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뜻이 모여 만들어진다. 민주주의가 위대한 이유는 세상 창조 원리처럼 한 사람 한 사람의 뜻이 모여 커다란 질서를 탄생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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