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국가잖아요”.
  김 영(사회학)교수님을 인터뷰하며 들은 말이다. 우리가 입을 다물고 어떤 문제도 제기하지 않으면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생각을 하고,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그에 관한 해결책을 모색할 때 세상은 변한다. 그러니까 우리가 국가를 바꾸는 것이다. 내가 있기에 국가가 존재하는 것이다.
  여성인권과 성평등에 대한 기획이었고, 두 명의 전문가를 인터뷰하게 됐다. 교수님의 답변 중 한 이야기가 기억에 남았다. 약 두 달 전 보건복지부 사무관이 과로로 숨졌다는 짤막한 사실. 가사 노동과 직장 생황을 병행한 참혹한 결과였다. 사전취재를 통해 한국의 여성 독박육아가 심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한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할 만큼이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 했다.
  부산여성가족개발원 성평등연구부 홍미영 부장님과의 인터뷰 주제는 성평등이었다. 어김없이 독박육아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맞벌이 부부 중 여성이 귀가할 때 사람들이 이같이 말한다고 한다. ‘제2의 직장으로 간다’, ‘2라운드 뛰러 간다’. 여성이 쉴 공간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인터뷰를 끝내고 부장님이 구내식당 내 여성들을 둘러보며 이리 말했다. 이분들도 거의 다 일도 하면서 육아도 한다고. 현실감이 필자를 때리는 순간이었다. 뉴스나 통계를 통해서나 접했던 여성 독박육아는 현실이었던 거다. 그것도 필자 주위에 만연한, 누군가를 죽음으로까지 몰 수 있을 정도로 참혹한 현실.
  교수님과의 두 번째 인터뷰는 페미니즘과 여권신장에 초점을 맞췄다. 페미니즘 배경과 운동, 여성을 둘러싼 문제들 등을 들을 수 있었다. 필자는 최근에서야 우리나라에서 페미니즘 운동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페미니즘 운동은 1920년대, 식민지 시대 때에도 있었다고 한다. 또 전 세계 여성들이 여권을 위해 목숨을 걸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 결과, 여성이 참정권을 얻었고 좀 더 한 사람으로서 대우받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여전히 문제는 많았다. 인터뷰를 진행하면 할수록, 구체적으로 다가오는 여성을 둘러싼 현실에 막막함을 느꼈다.
인터뷰가 막바지에 다다르면서, 생각과 감정이 복잡하게 뒤엉켰다. 그동안 성평등을 외쳤으면서도, 정작 필자는 여성 현실에 관해 제대로 몰랐던 것을 인터뷰를 통해 깨달은 것이다. 필자는 여성에 대한 성적폭력이 발생할 가능성이, 여성의 기회를 박탈하는 것을 문제 삼지 않았다. 그저 ‘그래, 밤은 위험해. 조심해야지’하고 생각하는 것에 그쳤었다. 아무렇지 않게 여성의 권리가 제한되는 현실을 받아들였다. 독박육아도 그런 맥락이었다. 그것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알지만, 어쩔 수 없지 않냐며 넘어갔기에 심각성을 제대로 깨닫지 못했다.
  정말 다행히도 인터뷰 끝에 필자가 할 수 있고, 또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교수님은 정책에서부터 변화를 시작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의 목소리가 정책과 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를 듣고 필자는 잊고 있던 사실을 깨달았다. 국가 아래 사람이 있는 게 아니라, 사람이 있어 국가가 존재할 수 있는 거였다. 그렇기에 현실의 부당함을 어쩔 수 없는 문제라 여기고 넘어가선 안 됐다. 국가가 우리의 목소리를, 다른 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변해야 하는 게 당연했다. 인터뷰를 끝마치고 필자는 말했다. “앞으로 저도 목소리를 열심히 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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