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여 년 전 아직은 어리고 순수한 얼굴을 한 여성들은 부푼 기대를 안고 사회에 첫발을 내딛었다. 하지만 이상과 현실은 너무나도 달랐다. 그들은 어두침침하고 탁한 공기의 공장에서 먼지와 뒤섞여 생 원두커피와 박카스로 열 시간 이상의 철야를 이겨내었다. 이렇게 열악한 환경 속에서 열심히 일한 노동자들에게 돌아온 것은 ‘공순이’라는 딱지였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성실하고 꿋꿋하게 일한 결과가 여성 노동자에 대한 편견으로 돌아온 것이다. 영화 <위로공단>은 부당함에 목소리를 내며 꿋꿋이 일해 나가던 모든 여성 노동자들을 향한 따뜻한 위로의 시선을 담고 있다.
  1978년 2월 21일 새벽, ‘동일방직 똥물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전국 섬유노조 동일방직 지부는 조합원 중 대부분이 여성 노동자였는데 반해 조합 간부는 대부분 남자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노조 대의원 선거가 있던 날 새벽 회사 측에서 매수된 남자조합원들이 여성조합원들에게 똥물을 퍼부었다. 이를 담아낸 사진 속 여공들의 모습은 금방이라도 울분을 터뜨릴 것 같았다. 이 모든 일은 단지 노동조합에 여성 지부장이 선출될까봐 벌어진 일이었다.
  영화는 현재 발생하는 여성 노동자의 인권 문제도 담고 있다. 여성노동자가 대부분인 콜센터 직원에게는 항상 친절한 태도로 임하는 감정 노동이 강요되고 있다. 그리고 승무원에게는 성희롱을 감내해야하는 것과 항상 완벽한 외모를 유지하는 미적 노동까지 강요하고 있다. 회사와 손님들은 여성 직원들을 사람으로 대하지 않고 노예로서 소모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40년 전과 지금, 여성 노동자들에 대한 대우는 달라지지 않았다. 회사는 임금을 준다는 이유로, 손님들은 대가를 지불하고 서비스를 이용한다는 이유로 여성 노동자들에게 부당함을 자행하고 있었다.
  “성실하게 일하는 노동자에게 기회를 주겠다”. 영화에 나온 정부가 한 말이다. 하지만 과연 성실하지 않은 노동자가 있을까. 가장 먼저 아침을 준비하고 새벽 버스를 타는 사람들은 모두 노동자들이다. 하지만 과연 그들이 정당한 대가와 대우를 받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40여 년이 흘렀지만 여성 노동자들은 불안정한 고용, 위험한 노동 현장, 편견과 차별로 고통 받고 있었다. 눈과 귀가 가려진 채로 불안하게 걸어 나가고, 갈 곳을 잃고 외롭게 서있는 여성을 연출한 영화 속 이미지들은 그러한 위태로운 노동자들의 감정을 전달하기에 충분했다.
  또한 <위로공단>은 과거에 누군가의 가족이었던 여성 노동자들의 지난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 그들을 위로하고 있다. 그리고 과거의 역사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노동’이 각각의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고 있다. 영화는 이러한 노동의 역사를 미화하고 있지는 않다. 열심히 일하는 노동자들의 삶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살아가는 것을 정당화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위로공단>은 그저 현재 또는 미래의 노동자들을 위로하고 서로에 대한 이해를 바라고 있다.

<위로공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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