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 우리 학교 제2도서관 오디토리움에서는 ‘순간에 대하여, 혹은 없는 것에 대하여’라는 주제로 강의가 펼쳐졌다. 이 날 강연자로는 미술평론가인 강선학(미술학) 강사가 나섰다. ‘세상의 모든 시학’의 모든 강좌에 참여했다는 그는 자신의 시에 대한 체험과 생각을 평이하지만 진지한 어투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강선학 강사는 본인의 미술 작품을 소개하고 이를 시와 연관시키는 식으로 강의를 진행했다. 강의의 시작과 함께 청중에게 “옆 사람의 손을 만져보라”고 주문한 그는 손에서 느껴지는 감촉, 온도 등을 설명하며 이를 리얼리티라고 주장했다. 반면 손에 관한 그림이 있다면 이는 촉감이나 체온이 사라지고 선들만 덩그러니 남은 기호에 해당된다고 설명했다. 즉 실재가 그림이 되려면 그 실재는 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실재를 개념이나 기호로 포착하는 순간 그 실재는 온전함을 잃고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실재의 부재’ 상태는 그림뿐만 아니라 시에서도 적용될 수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실재를 문자와 언어라는 그릇으로 담아내려는 순간 실재는 사라지고, 왜곡된 실재만이 시의 의미로 남게 된다. 강선학 강사는 “실재가 언어라는 기호 속에서 표현되는 순간 진실한 실재는 사라진다”며 “대신 기호로 표현된 의미만이 남게 된다”고 말했다.
한문에 문외한인 강선학 강사는 자주 서예전을 찾는다. 한문으로 표현된 글의 텍스트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더라도, 서체와 한문의 아름다움에 매료될 수 있기 때문다. △글자의 크기 △글자의 굵기 △선의 흐름 △먹의 두께 등의 시각적인 이미지를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것만으로도 한문 서체에 대한 미적 기준을 세울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의 심미안을 따라가다 보면 그만의 독특한 시론이 도출된다. 강선학 강사는 ‘시는 텍스트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문자를 감각화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 속 문자의 의미(기의)를 해독하지 못하거나 시에 구체적인 의미 부여나 사건 전개 장치가 마련되지 않더라도, 문자와 시어의 이미지(기표)만으로 시에서 감동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읽을 수 없기에 의미가 비어있는 기호에는 오히려 글자의 아름다움이 가득 차 있다”며 “기표만으로도 이런 감흥이 가능할 수 있다”고 밝혔다.
지하철에서 마주하는 많은 사람들을 크로키한다는 강선학 강사는 ‘순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언제 나갈지 모르는 승객을 제대로 묘사하기 위해서 극히 짧은 순간 안에 특징을 포착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순간은 재현이나 묘사를 할 틈을 주지 않는다. 순간 속에서 우리는 인간이 개념적으로 구성하는 △의미 △사건 △이야기의 틀에서 벗어나 ‘그저 뭔가가 거기 있는’ 존재의 깊이를 느낄 수 있게 된다.
강선학 강사는 의미가 생성되기 이전의 이미지를 탐구하는 방식으로 시 쓰기를 한다고 언급했다. 이에 그가 주장하는 구체적인 시 쓰기 방법은 기초적인 어휘를 나열해두면, 이에 따라 의식과 감각이 자연스럽게게 이미지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강선학 강사는 “주제를 찾기 위해 의미를 끊임없이 연결하고 환원하는 방식은 시가 아닌 산문에 해당하는 것”이라며 “한편의 시나 그림은 그 자체로 독립적인 것이지 다른 것으로 환원하거나 대체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지난 27일 있었던 ‘세상의 모든 시학’ 강의에서 강선학 강사는 ‘순간에 대하여, 혹은 없는 것에 대하여’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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