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수강하고 있는 국제개발협력 수업에서는 얼마 전에 종영한 드라마 <태양의 후예>가 화두였다. 드라마가 재밌고, 배우들이 멋있어서가 아니라 드라마를 통해 국제개발협력에 대해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로맨스만 걷어내면 국제개발협력의 상황이 보인다는 것이다.
국제개발협력에는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개입되고, 신속하게 판단해야 하며, 사람들의 생명이 연계되어 있다. 현장 경험이 많은 부산외국어대학교 정미경 교수는 이 드라마가 더 와 닿았다고 한다. 그가 뽑은 가장 극적인 순간은 아랍 지도자의 수술 여부를 두고 대치 상황이 벌어지는 장면이었다. “이슬람교도도 아닌 데다 여자는 수술할 수 없다”는 아랍 군인과 “외교 문제에 더는 개입하지 말라”는 한국 정부와 “수술로 환자를 살리려는” 의사의 대치 상황이었다. 생명을 두고도 많은 이해관계가 얽힐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생명을 우선시하는 것이 아니라 책임을 회피하려는 이들로 인해 엉뚱하거나 잘못된 결과가 나올 수 있다.
현실의 국제개발협력 현장에서도 어두운 면은 여실히 드러난다. 정부와 수원국의 공무원, 다국적 기업의 합작과 유착으로 만들어진 ‘작품’은 인재(人災)를 만든다. 라오스의 댐 건설에도 정경유착이 일어났다. 부패 관료들은 자신의 주머니로 예산을 착복했고, 무리하게 적은 예산으로 진행된 공사로 댐이 붕괴할 지경에 처했다. 이번에는 관련자에 대한 징계가 이뤄지기는 했지만 이보다 수면 위에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여전히 정경유착과 책임 회피의 뿌리는 깊다. 지난해 OECD가 조사한 부패인식지수에서 우리나라는 34개국 중 27위를 기록해 최하위권에 속했다.
멀리 외국에서 찾을 것 없이 세월호 참사는 정경유착이 만들어낸 ‘합작품’이고 비극이었다. 자본의 논리와 부패 관료가 만나자 인재가 발생했다. 이 참사 역시 책임을 회피하려는 이해관계자들이 손을 놓고 있는 사이 아무도 구할 수 없었다. 세월호를 두고 우리 사회의 구조에 대해 반성하는 말들이 많았다. 세월호 이후에는 무엇이라도 달라야 한다고. 하지만 반성의 목소리도 양심 있는 개인에만 와 닿았나 보다.
책임이라는 단어의 무게가 무색하게, 선거가 끝나자 박근혜 대통령은 선거 결과를 두고 여당의 잘못된 당 운용으로 여당이 선거에서 패했다고 말했다. 여당은 박 대통령 탈당론까지 거론하면서 선거 패배의 책임이 박 대통령과 당 지도부에 있다고 얘기한다. 선거에 내세웠던 공약이 무엇인지, 유권자들의 표심은 그곳으로 왜 향했는지에 대한 건설적인 논의는 선거 전과 마찬가지로 사라졌다. 대신 책임을 회피하려는 ‘정치인 족속’들이 몸만 사렸다.
그래도 늘 그랬던 것처럼 책임을 회피하도록 우리는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드라마 속 주인공은 목숨이 위협받고, 외부의 압력이 있는 순간이라도 환자를 살리는 편을 택했다. 세월호의 양심 있는 몇몇 승무원들도 구조를 위해 애썼다. 이처럼 우리도 국가라는 틀, 사회라는 틀 속에서 무심결에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 개인의 양심과 건강한 사회라는 조합이 가장 좋지만, 불가능하다면 작은 변화라도 시작해야 할 것이다. 이번 선거로 책임을 지라는 목소리를 냈고, 이제는 책임져야 할 이들이 그 무게를 질 차례다. 

저작권자 © 채널PNU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