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홍대주변과 신촌, 부산의 광복로와 경성대 부경대 근처. 언뜻 보면 비슷한 점이 없어보이는 이 장소들은 한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바로 대규모 상업자본이 들어서면서 해당 지역의 특성을 잃었다는 것이다. 지역을 발전시킨 예술가들과 중소상인의 이탈로 생겨난 정체성 상실. 이러한 현상은 젠트리피케이션이라 불린다.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단어는 구도심이 번성하기 시작하면서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이 해당 장소에 몰리게 되면서 임대료가 올라 원주민이 내몰리는 현상을 말한다. 이는 1964년 당시 영국 사회학자 루스 글래스에 의해 명명됐다. 당시 런던 서부에 위치한 첼시 등 저소득층 주거지역이 중산층 이상의 계층이 유입되면서 고급 주거지역으로 탈바꿈했다. 이에 따라 기존 주민은 급속도로 치솟은 주거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여 살던 곳에서 쫓겨나게 됐다. 이를 지켜본 루스 글래스는 지역 전체의 구성과 성격이 변한 이러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하여 이 용어를 처음 사용하였다.
이는 몇 단계의 과정을 통해 발생한다. 먼저 임대료가 저렴한 구도심지역에 문화·예술가와 자영업자가 유입된다. 이들이 구도심으로 들어오면서 해당 지역의 고유한 특성이 형성되고 그 지역의 유동인구가 증가하게 된다. 이후 해당 지역에는 프랜차이즈 등의 대규모 상업자본이 침투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해당 지역의 임대료나 월세 등은 이전에 비해 급상승하게 되고, 결국 이를 감당하지 못하는 문화·예술가와 자영업자는 다시 저렴한 곳으로 이주하게 된다. 그 결과 해당 지역이 가지고 있던 정체성을 상실하고 대규모 상업자본만이 남은 지역이 만들어진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 김규원 연구원 <2014 문화정책논총>을 통해 ‘예술이 도시개발에 있어서도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지속적으로 고려되는 것이 현실’이라며 ‘젠트리피케이션에서 예술가의 퇴출은 현 사회구조와 지향점에서는 필연적이다’고 밝혔다.

한국판 젠트리피케이션의 등장

이러한 젠트리피케이션은 2000년대를 거치며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 되어버렸다. 대표적인 장소로는 홍대거리를 가장 먼저 예시로 들 수 있다. 홍대 앞은 과거 상징적 문화지구로서의 역할을 해왔다. 이러한 역할은 홍익대학교의 입지와 큰 관련이 있다. 홍익대학교의 미술대학에 재학 또는 졸업한 예술가들이 저렴한 임대료 등의 장점을 지닌 홍대 인근 지역에 작업실을 두게 됐다. 이로 인해 1980년대 이전 홍대 앞에는 주로 미술작가들의 작업실과 미술학원들이 밀집되어 있었다. 이후 먹자골목이 만들어지거나 피카소거리와 카페골목이 형성되는 등 여러 변화과정을 거쳤다. 특히 1994년 라이브클럽 ‘드럭’이 문을 열고 ‘댄스클럽’이라 불리는 것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홍대 앞은 예술가들의 집성촌이라 불리게 됐다. 한국민족문화연구소 최정한 연구원은 <욕망의 플랫폼 홍대앞 클럽>을 통해 ‘90년대 후반으로 갈수록 홍대지역은 △미술 △음악 △영화 △패션과 관련 있는 중소규모 전문직종들이 집적됐다’며 ‘이들에 의해 홍대 앞은 젊음의 문화가 새롭게 실험, 창출, 소비, 변화되면서 서울의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내는 문화다양성의 보고로 자리 잡게 됐다’고 전했다. 하지만 최근 홍대에서는 이전의 명성을 찾아볼 수 없었다.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으로 기존에 있던 문화·예술가들이 그 지역을 벗어나고 대규모 상업자본만이 홍대 앞을 가득 채우게 된 것이다. 자연스럽게 홍대 앞에 형성되어있던 홍대만의 ‘장소성’ 역시 퇴색됐다. 홍대 앞에서 길거리 공연을 하는 박준오(서울시, 25) 씨는 “예전과는 다르게 홍대 앞에서 길거리 공연을 하는 등의 문화예술을 즐길 수 있는 데에 제약이 늘어났다”며 “이제는 문화거리라기 보다는 그냥 상업시설만 존재하는 평범한 거리가 되어버렸다”고 전했다.
부산광역시(이하 부산시) 역시 젠트리피케이션의 벗어날 수 없었다. 남포동 먹자골목과 용두산 공원 등으로 유명한 광복로는 원래 1990년대 인근에 자리 잡고 있는 부산시청의 이전과 부도심의 성장으로 쇠퇴를 겪어왔다. 그러나 2005년 시범 가로 조성사업을 계기로 다시 거리의 활력을 찾게 됐다. 이후 크리스마스 트리문화축제 등이 개최되기도 하면서 부산의 대표적인 장소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겉으로 보이는 광복로의 부활 속 실상은 전혀 밝지 않다. 광복로는 부산의 대표 관광지임과 동시에 젠트리피케이션이 발생하는 대표적인 공간으로도 유명하다. 10여년 전 광복로의 건물이 , 보증금 1억~2억에 임대료가 300만~400만 원 이었던 반면 최근에는 그에 10배 이상 증가했다. 특히 그중에서도 유동인구가 많은 곳 근처에 있는 건물의 경우 월세가 5천만 원을 넘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에 기존 토박이 상인들은 해당 임대료를 버티지 못하고 결국 해당 지역을 떠나게 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광복로문화포럼의 자료에 따르면 광복로내 프랜차이즈·직영점 비중이 2005년 당시 20%였던 것에 비해 2014년에는 80%를 넘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러한 이유로 광복로 내에 위치한 상인들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광복로에서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는 상인 A(중구, 54) 씨는 “최근 몇 년만에 임대료가 급상승한 탓에 이제는 적자만 나고 있는 상황”이라며 현재의 상황에 한탄했다.


빛으로 가리기에는
너무 어두운 그림자

젠트리피케이션을 무조건적으로 나쁜 현상으로만 바라봐서는 안된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낙후 지역의 경제 활성화가 유도된다는 역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이 도시 개발 과정에서 뒤쳐져있던 지역에 인구유입을 증가시켜 지역 주민의 평균 소득을 향상시키거나 타지역과의 소득불균형을 해소할 수 있다. 하지만 젠트리피케이션의 단점은 너무나도 극명하다. 무엇보다도 기존 저소득층 및 소규모 매장들을 몰아내면서 해당 지역이 가지고 있는 문화적인 특성을 잃게 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이는 ‘문화백화현상’이라는 단어로 집약된다. 이 현상은 2014년 상수동에서 ‘맘 편히 장사하고 싶은 상인들의 모임(이하 맘상모)’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김남균 대표가 처음 사용했다. 그는 독립언론 <고함20>과의 인터뷰를 통해 ‘젠트리피케이션이 발생하면서 예술가나 자영업자가 임대료 등의 상승을 버티지 못하고 이주를 하게되면, 그 자리를 대기업 프랜차이즈 업체가 채운다’라며 ‘이와 동시에 기존 지역의 특성에 매력을 느꼈던 유동인구들의 지속적인 감소가 이어지면서 프랜차이즈가 이탈하고 결국 거리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된다’고 해당 현상을 설명했다.
또한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책임을 예술가들 또는 토박이 상인들이 지게 되는 사회적인 구조도 하나의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그들이 이러한 상황에 대한 책임을 져야할 능력과 이유가 없음에도, 그들에게 주어지는 책임이 많다는 것이다. 조명래(단국대 도시계획.부동산학) 교수는 2013년 <월간 문화사회>를 통해 ‘젠트리피케이션의 지배적인 현상을 저소득 약자가 고소득 강자에 의해 공간이 대체되는 것으로 나타난다’며 ‘시민으로서 이들도 건강한 주거적 삶을 살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지만, 자본주의 시장경제 하에서 정치적 권력들이 약자들의 권리를 젠트리피케이션 과정에서 지켜주지 못하게 한다’고 밝혔다.

젠트리피케이션의 진정한 해결책은?

서울특별시 성동구는 작년 전국 최초로 젠트리피케이션 방지를 위한 조례를 제정했다. 이를 통해 ‘지속가능도시추진단’을 신설하고, 올해‘상호협력 주민협의체’와‘지역공동체 상호협력위원회’를 구성해 젠트리피케이션을 대응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고 있다. 성동구를 이어 각 지자체에서는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대책으로 조례를 만들고 있다. 이들의 가장 큰 공통점은 임대료 규제라는 것이다. 부산시 중구청은 광복로의 급격한 임대료 상승을 해결하기 위해 ‘건물주-상인간의 상생협약 유도’, ‘임대료 상승 억제를 위한 방안’ 등을 담은 조례를 만들어 올해 하반기 공포할 예정이다. 하지만 임대료를 규제하는 것만이 정답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재산권을 규제하는 것이 모두에게 공평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대안문화행동 재미난 복수 김건우 대표는 “젠트리피케이션을 지금 극복해내지 못하면 문화예술이 살아남지 못하는 것은 확실하다”며 “하지만 개인의 재산을 무조건적으로 억제하는 것이 좋은 답은 되지 못하기 때문에 더 나은 해결책을 고민해나가야 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관계자들은 결국 조례제정 등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책의 마련은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2013년 결성된 ‘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의 경우 관련법의 개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는 그동안 문제가 되어온 임차인의 권리를 법률로서 보호하기 위해 작년 개정을 통해 처음 시행됐다. 하지만 법률에 따르면, 임차인이 임대인에게 계약갱신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인 계약갱신청구권은 최초 계약 후 5년까지 보장된다. 5년이 지나면 건물주는 마음대로 임차 상인을 내쫓을 수 있다는 말이다. 또한 제10조에는 ‘임대인은 임차인이 임대차기간이 만료되기 6개월 전부터 1개월 전까지 사이에 계약갱신을 요구할 경우 정당한 사유 없이 거절하지 못한다’고 명시되어있다. 하지만 예외사항으로 재건축에 한해서는 임차인의 권리를 보호해주지 못해, 임대인은 재건축을 빌미로 얼마든지 임차인을 내쫓을 수 있는 명분을 가질 수 있다. 김남균 대표는 “해외와 달리 우리나라의 법은 마치 절름발이와 같다”며 “젠트리피케이션의 해결을 위해 여러 차원에서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일단 법을 바꾸는 것이 우선”이라고 밝혔다.
김규원 연구원은 젠트리피케이션을 불러일으키는 행위를 도시의 바이러스에 빗대어 표현했다. 다소 과장된 표현처럼 보이지만 이는 결코 단순한 의미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그들의 행동으로 자신들과 그 주변에서 있던 토박이 상인들이 내쫓기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는 것은 이미 현실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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