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뜻 반영하기 힘든
대의 민주주의 제도

총선 앞둔 여야는
개편할 의지 보이지 않아

근대 국가와 함께 생겨난 대의 민주주의. 선거를 통해 선출된 대표는 과연 국민을 온전히 대표할 수 있을까?
이번 4.13 총선에서 당선될 국회의원은 총 300명이다. 지역구 의원 253석, 비례 의원 47명으로 구성된 300명의 대표가 우리나라 국민 5천만 명을 대표하게 된다. 오랫동안 우리나라의 선거제도는 대의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존 스튜어트 밀은 ‘대의 민주주의 국가야말로 근대국가에서 가장 이상적인 형태’라고 말하기도 했다. 대의 민주주의는 곧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이자 현실적인 방법으로 여겨졌고, 누구도 의문을 제기할 수 없었다.
선거를 통한 대의 민주주의 제도는 사실 중세 부르주아들에 의해 ‘발명’된 것이다. 18세기 후반 프랑스 혁명과 미국독립혁명을 통해 부르주아들은 국왕에게 쏠려있던 주권을 나눠가지기 시작했다. 군주제를 거치고 다시 등장한 민주주의는 아테네의 민주주의 핵심 이념인 ‘참여(추첨)’에서 ‘동의(선거)’로 바뀌었다. 권력의 원천을 다수가 동의하는 선거에 두고, 선거만이 권력을 위임하는 유일한 방법이 됐다.

줄어드는 투표율,늘어나는 사표들

그러나 그토록 투표권을 열망했던 초기 민주주의 때와는 달리, 시간이 지나자 유권자들은 점차 투표를 하지 않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경향이 나타난다. 역대 총선 투표율 결과를 살펴보면, 1988년 13대 총선의 투표율은 75.8%였으나 2008년 18대 총선에서는 46%까지 떨어졌다. 시민이 가진 가장 큰 권리인 투표권을 유권자 스스로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대의 민주주의 체제에서 뽑힌 대표자들이 국민을 온전히 대표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계속되고 있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E.E 샤츠 슈나이더는 저작 <절반의 인민주권>에서 ‘전 세계적으로 낮은 투표율로 인해 인민주권이 절반밖에 실현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나마 투표에 참여한 국민들은 후보의 당선에 영향을 크게 미치지 못하고 있다. 정당의 의석 점유율과 실제로 득표한 수가 크게 차이나기 때문이다. 지난 19대 총선에서 정당별 특표율과 의석 점유율을 비교해 보면, 총선 후 새누리당의 의석 점유율은 51%(152석)였으나 실제 득표율은 43%에 불과했다. 민주통합당의 경우도 큰 차이를 보인다. 민주통합당의 의석 점유율은 42%(127석)였지만 득표율은 37%였다. 반면 기타 약소 정당이나 무소속 의원은 나머지 7%(21석)을 점유했지만 득표율은 20%로, 거대 양당과 달리 득표율에 비해 의석 점유율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 약소 정당과 무소속 의원의 13%(39석)을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실제 득표율과 의석 점유율의 차이는 곧 유권자들의 사표를 의미한다. 19대 총선에서 전국의 사표 비율은 총 46.4%였다. 그 중 사표율이 가장 높았던 도시는 53%의 대전광역시로, 절반이 넘는 유명무실한 표가 발생했다.

그들은 국민을 대표할 수 있나

직업과 재산면에서도 국민 평균보다 월등히 많은 사람들이 국회의원으로 선출돼 대표성을 띄기 어려운 상황이다. <뉴스타파>에서 조사한 결과, 19대 총선으로 뽑힌 국회의원의 직업 가운데 절반이 △법조인 △기업인 △의료인 등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유권자 중 45% 가량이 노동자와 농민이지만 해당 직업군을 가진 국회의원은 단 3%에 그쳤다. 일반 국민과 국회의원의 재산격차도 크다. 2014년 기준 우리나라 국민들의 평균 순자산(시가 기준)은 2억 8천만 원인 반면, 국회의원들의 평균 자산(공시가 기준)은 28억여 원으로 10배가량 차이가 났다. 또한 국민 재산 소득 1%에 해당하는 자산을 가진 사람들이 국회에는 1/3 이상 존재했다.
이러한 국회의원들이 발표하는 정책까지도 국민의 의견을 모두 담아내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작년 발의된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상속세의 절감혜택을 받는 기업들이 늘어난다. 가업을 상속받는 기업의 범위를 늘리고, 그 기업들에게 세금 감면 혜택을 주는 것이다. 그런데 이 법안을 발의한 의원들의 재산을 조사한 결과, 이들의 평균 재산은 84억 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겨우 선거구 획정 마무리 했지만

현행 선거제도는 유권자들의 이해관계를 완벽히 대변하지 않거나, 왜곡할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비례대표 제도가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있다. 비례대표의 수가 너무 적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비례대표는 300명 중 47명으로 15%에 불과하다. 비례대표 제도를 도입한 다른 나라들의 경우와 비교해도 큰 차이가 난다. 독일의 경우 전체 의원 중 50%가 비례대표 의원이며, 일본은 37%이다. 최태욱(한림국제대학원대 국제학) 교수는 <경향신문>의 칼럼에서 ‘수십 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안정적 복지국가들은 비례성 높은 선거제도를 택하고 있다’며 ‘선거제도 개혁을 통해 비례의원 수를 늘려야 한다’고 밝혔다.
2014년 10월, 헌법재판소는 이러한 선거제도를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결정을 내렸다. 투표 가치의 평등성을 침해하기 때문에 인구 편차를 1:2 비율 이하로 조정해 선거구를 다시 획정하라는 명령을 내린 것이다. 이에 여야 지도부는 ‘정치개혁 특별위원회’를 열었고, 선거구 획정위원회를 독립기구로 개편해 선거구 획정을 진행했다. 그러나 선거구 획정위원회의 획정안에 대해 여·야 의견대립이 지속되면서, 선거구 획정안은 법정시한을 139일 넘긴 지난 2월 국회에 제출됐다.

여·야 밥그릇 싸움에 밀려난
선거 개편 논의

선거구 획정위원회에 소속된 여·야 의원들은 서로의 이해관계만 주장하며 근본적인 선거제도의 개편 논의는 하지 않았다. 새누리당은 농촌 지역의 지역구가 줄어드는 것을 반대하며 지역구 의원의 의석을 늘리고, 비례의원 의석은 줄이자는 입장이다. 반면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은 비례대표 의석수를 줄여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당초 헌법재판소는 단순 의석수가 아니라 선거구의 인구편차를 조정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선거구 별로 인구편차가 크게 날 경우 표의 등가성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번 총선 공약에서도 선거제도 개편과 관련된 것은 찾아볼 수 없었다. 경향신문과 경제정의실천연합(이하 경실련)에서 조사한 결과, 선거제도와 관련된 공약은 없거나 구체적이지 않았다. 정의당에서는 국민의 뜻대로 의석을 배분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더불어민주당의 경우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 △석패율제 △선거연령 18세로 확대 등을 약속했다. 이에 문명재 연세대 교수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해당공약이 ‘총선보다 대통령 선거 공약으로 보인다’며 ‘대선을 앞두고 당의 정치적 기반을 다지고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시도’라고 말했다.

‘대의’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대의 민주주의 제도를 보다 근본적으로 해당 제도를 개선·보완할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그 방법 중의 하나로 전자민주주의의 확대를 생각해볼 수 있다. 전자 민주주의가 도입되는 방식은 두 가지로 나뉠 수 있다. 전자투표와 같은 방식으로 대의 민주제를 보완하는데 그치거나, 국민 참여의 혁신적 증가로 직접 민주주의를 실현시키는데 도움을 주는 방법이다. 우리나라는 현재 전자의 방식으로 전자민주주의를 도입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방법은 기존 대의 민주주의 제도에서 오직 정부의 편의성만을 위해 도입한 것이지, 국민 참여 확대나 의사 반영 비율이 커졌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국내 전자민주주의 사례분석을 통한 민주적 전자정부 추진방향>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전자정부는 ‘민주성보다는 정부의 효율성에 초점을 맞춰 발전해 왔다’고 지적한다.
또 다른 개선 방안의 하나로 고대 아테네의 ‘추첨 제도’가 제시될 수 있다. 추첨제는 아테네의 민주정과 로마, 르네상스 시기의 이탈리아 공화국들에서 사용됐던 제도다. 근대에 들어와서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와 결합돼 대의제가 지배하게 되면서 추첨 제도는 점점 잊히게 됐다. <경향신문> 안치용 기자는 그의 저작인 <선거파업>에서 ‘사람들은 추첨제도가 민주주의적 선출 제도라고 생각조차 못하고 있다’며 ‘근대 이후 유일한 대표 선출 방식으로 선거제도가 자리 잡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추첨제도에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추첨으로 뽑힌 대표자의 ‘탁월성’에 의심을 제기한다. 선거와는 달리, 무작위로 뽑힌 사람은 전문성을 갖추고 있을 확률이 적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안치용 기자는 선거제도에서도 마찬가지로 이러한 문제가 나타난다고 반박했다. 그는 ‘현실 역사에서는 선거를 통해 선출됐음에도 대중의 이익을 무시하고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독재자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고대 아테네의 추첨제도는 사실상 대표자들의 ‘탁월성’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관점이었다. 통치에 있어서는 전문가가 없다는 가정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버나드 마넹은 그의 저서 <선거는 민주적인가>에서 “추첨은 관직 교체의 원칙을 지키고, 전문가 중심의 정치에 대한 불신을 나타낸다”고 말했다. 추첨제를 현실에서 적용한 사례도 있다. 2013년 녹색당은 ‘추첨제 대의원 제도’를 통해 대의원을 선출했다. 대의원은 선거 관리 규정에 의해 선거권이있는 당원들 중에서 무작위 추첨 방식으로 진행됐다. 특정 광역시·도 대의원이 전체의 20%를 넘을 수 없도록 하기도 했다. 

   
 
저작권자 © 채널PNU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