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 295명, 실종 9명이라는 아픈 꼬리표를 남긴 채 세월호가 침몰한지 꼭 2년이 지나고 있다. 총체적인 침몰원인 규명, 남은 실종자, 선체 인양 등 크고 작은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은 채 여전히 숙제로 남아있다. 그래서 4월은 여전히 아픈 계절이다.
지난 2월, 어느 대학의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한 교수는 “개념 있는 학생이라면 기다리라는 방송을 따르지 않고 세월호를 탈출했을 것”이라 했다. 그리고 3월, 다른 대학의 교수도 강의에서 “세월호 사건에서 단원고 학생들이 사고를 당한 이유는 생각하는 습관이 없어 선박 관리자의 지시를 아무런 생각 없이 믿었기 때문”이라고, “생각을 하지 않으면 단원고 학생과 같은 일을 당할 수 있다”고 했다.
부적절한 이런 발언에 대해 언론과 사회는 희생자를 폄훼한다며 분개했고, 해당 대학들은 교수의 강의를 중단시키며 사과했다. 어려운 경제와 북한 관련 국제정치, 다가오는 총선과 공천 문제 등 당장의 수많은 이슈에 가려 이 또한 침묵 속으로 가라앉았다. 이들이 왜 그런 발언을 했는가에 관한 논의는 전혀 없었다.
이들 발언의 핵심은 ‘가만 있어라’는 선내 방송에 대한 학생들의 순응이다. 돌이켜 보면 2003년 2월의 대구 지하철 참사도 다르지 않았다. 열차의 기관사는 화재 사실을 보고하지 않은 채 대피하였고, 뒤늦게 사실을 인지한 종합사령실은 진입하는 다른 열차에게 서행하라는 경고만 내렸다. 화재 현장으로 진입한 열차는 전원 차단으로 그 역을 떠나지 못했다. 당황한 기관사와 사령실은 차량의 문을 닫은 채 승객들에게 ‘대기하라’고 방송하였다. 결국 192명이 사망하고 151명이 다친 대형 참사로 이어졌다. ‘가만있어라’와 ‘대기하라’는 방송, 주어진 현재의 상황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방송을 그대로 믿고 따른 학생과 시민들…. 두 사고 과정의 무엇이 다른가?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개념’, ‘생각’의 부족이 이런 참사와 전혀 관련이 없는가? 그리고 그것이 단지 그 불행한 사태를 겪은 희생자들의 문제인가?입시만을 위한 교육, 주입식 교육, 주어진 현실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수동적으로 거저 받아들이기만 강요하는 현재 우리의 교육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가? 상품이 되어버린 교육, 시장만을 생각하는 교육, 취업만을 위한 교육, 종합적·창의적·비판적 사고가 없는, 그래서 ‘고등한 사고’를 교육하지 못하는 말뿐인 고등교육 기관인 우리 대학의 교육과는 진정 아무런 관련이 없는가?
사고의 원인에서부터 현장 내외의 대응 그리고 사고의 뒷수습까지 ‘왜’라는 의문과 질문이 없다면 사고는 언제든 쉽게 발생할 수 있고, 근원적인 원인 해소와 방지책 또한 마련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교수들의 말처럼 세월호가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라면 우리 사회의 미래 또한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의문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교육, 질문이 사라진 교육, 그래서 스스로의 생각과 비판적인 생각을 키우지 못하는 우리 교육의 총체적인 난맥이 이런 참사의 근원적인 문제의 하나는 아닌가? 세월호가 우리 교육에 던지는, 아프게 새겨보아야 할 준엄한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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