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스, 고달픈 감정을 호소하는 동시에 이상에 취해 무아지경으로 연주하는 음악 장르. 블루스적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행복하다. 눈 감아버리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눈을 감고 블루스에 취해 머릿속에 그려지는 이상에 주목한다. 당장 바라봐야 할 현상은 윤곽을 잃고 다른 차원의 세계로 흘러간다.
우리 학교에도 블루스에 심취한 형제가 있다. 바로 ‘헤이 브라더’ 총학생회다. 현실에는 그들이 직시해야 할 몇 가지 사실들이 존재한다. 며칠 전 마이피누에서 총학생회의 소통창구 단일화 문제가 논란이 됐다. 총학생회는 마이피누 등 여러 곳에 분산된 학생 간의 소통장을 자체 홈페이지로 일원화해 학생과의 ‘소통을 강화’할 계획을 밝혔다.
소통을 강화하겠다는 기치를 내건 총학생회는 이전에도 있었다. 약속으로 내걸 만큼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현실이 반영된 것이다. 페이스북이나 자체 홈페이지에선 총학생회의 정책만을 홍보하고, 마이피누에서는 학생들의 밀려드는 대화요청에 우물쭈물 거리고 있다. 그런데 그 와중에 학생들과의 소통 창구를 일원화겠다는 총학생회의 의견이 나왔다. 마이피누는 총학생회와 소통하는 곳인 동시에 커뮤니티의 기능도 하는 곳이다. 페이스북이나 자체 홈페이지를 마이피누로 단일화하면 모를까, 자체 홈페이지로는 이전과 같은 접근성을 가지기 어렵다.
이상만을 바라보고 그린 역대급 걸작은 ‘평화의 소녀상 건립 기금 모금’이었다. 이야기에 앞서 ‘위안부’ 피해자들의 억울함과 한일 공동합의의 부당성에 충분히 공감하고, 모금의 의도는 십분 이해한다는 점을 밝힌다. 그러나 기금은 누구의 주머니에서 나온 돈인가? 2만 명의 학생을 대표하는 총학생회가 적어도 소녀상 건립을 할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모금보다는 부지 마련을 우선했어야 했다.
이에 대해 총학생회는 ‘학생과 시민들 사이에서 소녀상 건립에 대한 여론이 형성된다면 부지를 얻을 수 있다’라는 대답을 내놨다. 여론만 형성하면 모든 일이 잘될 것이라는 그들. 만약 부지를 얻을 수 없다면 모아 두고 제3의 단체에 기부할 것이라는 대안도 빼놓지 않았다. 그러나 건립하지 못할 것이라면 굳이 왜 총학생회가 힘쓰고 나서나 궁금해진다.
브라더가 등판한 지 4개월째,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앞서 지적한 이러한 문제들은 한마디로 난리 블루스. 그 광경을 비추는 <부대신문>에게 간혹 ‘왜 총학생회를 비판만 하냐’는 질문이 들린다. 이유는 단순하다. 권력이 집중된 곳을 더 삐딱하게 바라보고 지적하는 것은 언론의 본질이다. 혹시 그것을 ‘편향’이라고 지적한다면 당장 서점에 가서 언론 관련 서적이라도 뒤적거려 봐야 한다.
블루스를 즐기기는 쉬워도, 멈추고 현실로 돌아오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지금은 멈춰야 할 때다. 총학생회를 바라보는 학생들은 블루스에 빠져버린 그들이 지겹다. 학생들은 소통하지 않는 총학생회에게 묻는다. 왜 현실로 돌아오지 않는가?

신지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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