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도 작년과 별로 달라진 것이 없음을 실감한다. 새 달력과 새로운 사람들에 대한 낯섦도 잠시, 곧 이전처럼 익숙해진다. 캠퍼스 밖 세상도 마찬가지다. 해가 바뀌어도 보이는 모습은 그대로다. 작년 한해 정부는 시행령을 앞세워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이하 세월호 특조위)의 권한을 대폭 축소하고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강행했다. 그러더니 새해 초부터 역시 시행령을 근거로 누리과정 예산부담을 지차체에 떠넘겼다. ‘시행령 정치’의 계속이다.
시행령, 즉 대통령령은 법률을 보완하기 위해 존재하는 명령의 일종이다. 법률은 제·개정 절차가 까다롭다. 쟁점이 되는 사안에 대해서는 여야 간의 합의도 필요하다. 합의 없이 단독으로 처리하려면 필리버스터나 ‘국회 공성전’까지 각오해야 한다. 반면 명령은 정부 차원에서 비교적 간단하게 제·개정할 수 있다. 따라서 유연성을 확보하기 위해 법률로 틀을 정하고 명령에서 세부내용을 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현 정부의 시행령 정치는 이 특성을 악용함을 통해 가능해졌다. 구태여 상대를 설득하고 동의를 구할 필요가 없다. 청와대 내부에는 견제세력이 없으므로 모든 것을 시행령으로 해결할 수 있다. 야당이나 시민사회의 반발은 무시하면 그만이다. 어차피 그들은 시행령에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 할 수 없다. 가히 창조경제를 뛰어넘는 ‘창조정치’의 탄생이다. 그렇게 박근혜 정부는 세월호 특조위를 무력화시키고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밀어붙였다. 누리과정 예산 갈등도 결국 비슷한 맥락이다.
시행령 정치에 제동을 걸고자 하는 시도는 실패했다. 작년 5월 국회는 시행령이 모법의 취지나 내용과 불일치 할 경우, 상임위원회가 수정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공무원 연금 개혁을 원한 여당과 세월호 특조위 무력화에 대응하고자 했던 야당이 ‘빅딜’을 성사시킨 것이다. 그러자 청와대가 발칵 뒤집어졌다. 박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하며 ‘배신의 정치를 심판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심판의 칼날은 협상 책임자였던 새누리당 유승민 전 원내대표에게 향했다. 그는 원내대표직을 내려놓았지만 박 대통령의 ‘뒤끝’은 끝을 몰랐다. 그의 주변 인사들이 이번 공천에서 모두 배제된 것은 배신의 정치에 대한 심판이 현재진행형임을 보여준다. 명령이 법률에 위배될 수 없다는 기본원칙을 확인하는 것조차 배신이 된 상황에서, 침묵에 기반한 평화만이 남았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누리과정 예산 갈등을 시작으로 이 새로운 형태의 창조정치는 거침없이 전진하고 있다. 예컨대 교육부는 최근 <교육공무원임용령>과 <사립학교법 시행령> 개정에 나섰다. 총장직선제를 사문화시키고 사학재단들의 편의를 봐주기 위해서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전자는 모든 국립대에서 총장임용추천위원회가 후보자 선정 권한을 가질 수 있도록 했고, 후자는 사립학교가 각종 소송비용을 교비로 집행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반발이 거세지자 교육부는 <교육공무원법>이나 <사립학교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항상 그래왔듯 일단 부정하고 보는 것이다. 설사 해석의 여지를 인정한다 해도, 시행령을 앞세운 의도는 명확하다. 그 어떤 견제도 받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시행령을 무기삼아 폭주하는 창조정치 앞에 대화와 타협이라는 정치의 기본은 설 자리를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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