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장 없이 새 학기를 맞는다. 지난 9월 이후 7개월째 접어든다. 의사 결정권이 모호한 상황에서 학교는 발전방안도 대내외협력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어렵고, 현상유지에 급급할 따름이다. 그래도 우리 대학은 이 불편한 생활을 오래 겪지 않고 있지만, 긴 시간 총장 없이 연명하는 대학들의 사정은 참담할 지경에 이르렀다. 부산대학의 하소연이 엄살로 보일 수 있는 이유이다. 한국의 국립대학들이 어쩌다 이 지경에까지 내몰리게 되었는가?
우리는 얼마 전 교육부장관의 교체에 잠시 기대를 했었다. 새 교육부장관이 누구보다 국립대학의 사정을 잘 아는 교수출신이라서 그랬다. 그런 기대도 잠시, 새 교육부수장 부임이후에도 국립대학에 대한 교육부의 기존정책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총장 없는 국립대학이 9곳이나 되지만, 이 초유의 사태를 해결할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다. 결과는 학자출신의 교육부수장이나 과거 정치인 출신의 교육부수장이나 국립대학을 대하는 태도에는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최근 아무런 설명 없이 2순위 후보자를 총장으로 임명한 순천대나 교육부에 자진 총장 직무정지라는 희한한 것을 요청한 뒤, 총장 직무대리체제로 들어간 경상대와 한국해양대의 사태를 보더라도 국립대학의 답답한 현실은 좀처럼 나아질 조짐을 보이지 않는다.
말 그대로 우리 대학은 어느 대학하나 공조해주지 않는 고립무원의 상태에 빠져들고 있다. 부산대학의 결의에 고무되어 직선제를 관철하겠다던 대학들이 교육부의 설득내지 압력에 굴복하여 하나둘 간선제로 돌아서고 있기 때문이다. 충남대와 강원대, 경상대가 이미 그랬고, 이제 한국해양대 교수회 정도만 총장직선제를 철회할 명분을 찾고 있을 뿐이다.
교육부는 우리에게 준 지원금을 회수하거나, 받아야할 지원금을 다른 대학에 나누어 줌으로써 늘 해온 대로 자신의 권위를 발휘하고 있다. 혹시나 제 2의 부산대학을 자처하려는 대학들에게 엄포를 놓기 위해서도 우리 대학에 본때를 보여주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기 때문이다.
같이 합심하여 부당한 압력에 항의하기는커녕, 몇 푼의 재정지원 앞에 타 대학의 불이익을 자신의 이익으로 받아들이는 국립대학의 현실에 우리의 참담함은 깊어간다. 불과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국립대학의 맏형’다운 결행이라며 부산대학의 행동에 열렬한 지지를 보내고, 우리의 뜻에 동참하겠다던 여러 대학의 결의가 빈말이 되고 있다.
교육부는 국립대학의 이런 비정상을 바로 잡을 의도가 있는지 모르겠다. 아니 국립대학의 이런 비정상 사태를 즐긴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모든 국립대학에 그들의 구미에 맞는 총장을 임명하지 못할 바에, 차라리 별 권한이 없는 직무대행체제를 만들어 놓으면 다스리기가 얼마나 수월하겠는가. 합법적 대표 없이 상부의 지시만 따르는 식물대학의 양산이 교육부가 내심 바라는 바가 아닌지 모르겠다.
이제 부산대학은 대기 중인 총장후보자가 임명되지 않는 이상, 경북대학이나 방송통신대학처럼 과도체제를 길게 이어갈 것이다. 답답한 현실이지만, 국립대학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교육부장관에게 또 한 번 기대를 걸어보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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