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퍼스에 고운 가을색이 바래고 있다. 언제나 병풍처럼 솟아있는 금정산 능선부터 학교안의 나무들과 계곡에까지 계절의 변화가 아름답다. 주위의 자연은 한결 같이 우리에게 위안을 주는데도, 언젠가 대학생활에 낭만이라는 말은 현실을 모르는 철없는 소리가 되어버렸다. 졸업과 동시에 캠퍼스 밖에서 맞닥뜨릴 미래가 험난하다 못해 비관적이기까지 하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에서 대학생들이 안고 있는 불안한 앞날의 무게는 일상이 되어버렸다. 그들에게 사회가 경쟁밖에 없는 이전투구의 각축장으로 인식되면서, 대학 밖으로 향하는 그들의 발길은 무겁고도 느리다. 현실의 중압감에서 오는 끊임없는 긴장은 재독철학자 한병철이 지적하듯이 자신을 착취하지 않고는 못 견디는 불안을 키우는 독소가 된다. 그래서 이 나라의 젊은이들이 우울증에 취약한 현대인의 군상을 키우는 잠재적 일원이 되고 만다. 사회적 여건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지 않는 한, 그들의 눈높이를 맞춰줄 세상은 요원할 것이다.
대다수 선진국이 청년들이 바라는 일자리 창출에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해서, 이 나라 기성세대의 책임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최근 취업포털 잡코리아의 여론조사에서도 드러났듯이, 청년들이 고민하는 문제에 대해 당사자들과 기성세대의 인식이 많이 다른 것으로 나타난다. 이런 세대차이는 세대갈등으로 이어질 뿐 아니라, 청년들의 기대에 부응해야 할 정치권의 문제인식과 진단에 괴리를 낳고, 자칫 그들의 고민을 배부른 투정으로 여길 공산이 크기 때문에, 우리 사회가 청년들이 당면한 고민을 해결하는데 많은 어려움과 긴 시간이 요구된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럼 경쟁에 지쳐 헤매거나, 그 여파로 모진 선택을 생각하는 젊은이들의 취약한 정신은 누가, 어떻게 치유해야 하는가? 또 요행히 원하는 직장을 가진다한들, 그것은 할당된 성과를 위한 새로운 격무의 시작에 불과할 뿐, 과도한 경쟁과 자기착취의 압박감에서 벗어나기 어려우므로, 이들의 정신적 공황상태는 어떻게 극복되어야 하는가.
근본적인 해결책을 기대하기에는 사회변화가 느리고도 막연할 따름이다. 그러므로 현재 청년들이 안고 있는 고민의 주체가 청년들 본인이라는 사실에서 출발해야할 것이다. 별로 구체적이지 못하고 막연한 해결방안 같지만, 자신의 내면적 풍요로움과 정신적 역량을 키우는 것 외에 당장 무슨 근본적인 대책이 있겠는가. 욕망의 통제와 충족의 대체만이 끝없는 탐욕을 길들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을 감안한다면 최근 몇 년 사이 교양필수로 개설한 고전읽기는 우리 효원인을 위해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우선 지정된 동서양 고전 100선에 이어, 누락되거나 최근 고전의 반열에 오른 양서 50선이 곧 추가될 것이다. 이 고전들은 어느 하나 젊은이들의 정신을 풍요롭게 하지 않는 것이 없다. 피폐한 삶을 견뎌내게 하는 자가 치유능력은 정신적 소양을 키우지 않고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정작 현대인들은 힐링이라는 말을 남발하며 그것을 찾아 나서지만, 진정한 힐링은 자신의 외부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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