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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대신문 속에서 역사는 되풀이 됐다
  • 김민관 기자
  • 승인 2015.11.23 12:09
  • 호수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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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말하길 역사는 반복된다고 한다. 올해로 창간 61주년을 맞이한 <부대신문>에는 우리 학교를 중심으로 한 61년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부대신문>의 기사를 돌아보면 서로 다른 시대에서도 비슷한 일이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서로 달라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비슷한 흐름을 같이 하는 사건들을 선정해 정리해 봤다.

민주화 이후에도 반복된 학내 공권력 투입

 

   
(좌) <부대신문> 1003호. 경찰이 교문을 넘어 학생들을 쫓고 있다
(우) <부대신문> 1132호. ‘김영삼 화형식’ 저지를 위해 전경이 학내로 진입했다

과거에는 공권력이 우리 학교 안으로 투입되는 일이 잦았다. 특히 1990년 하반기에는 공권력의 학내 침탈이 절정에 달했다. <부대신문> 1003호(1990년 10월 15일자)에 따르면 그해 7월부터 10월까지 경찰이 학내에 진입하는 일이 4차례나 발생했다. 학내에서의 공권력 집행도 무자비했는데 새벽에 문창회관을 기습해 총학생회장 등 20여 명을 연행해 가기도 했다. 이에 학생들도 학내침탈 규탄 집회 개최하고 단식을 벌이는 등 강하게 대응했다.
문민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학내 공권력 투입은 벌어졌다. 1132호(1997년 3월 24일자)에 따르면, 부산·경남지역총학생회연합 민중연대 투쟁선포식에서 학생들이 ‘김영삼 화형식’을 거행하려하자 경찰이 최루탄을 쏘며 학내로 진입해 진압하는 일이 있었다. 1140호(1997년 8월 25일자)에는 ‘단골손님’이라는 제목으로 부산·경남지역총학생회연합 결의대회를 막기 위해 학내에 진입한 경찰병력의 사진이 실렸다. 이 같은 학내 공권력 투입은 김대중 정권이 들어선 이후 잦아들었다. 1289호(2005년 3월 2일자)에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배됐던 총학생회 최승환(재료공학 97, 졸업) 전 회장이 서울에서 체포됐다는 소식이 실렸다. 이 때 최승환 전 회장이 체포 직전까지 5년 간 학교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는 점에서, 경찰이 학내에 쉽게 진입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다.

신념에 따른 구성원의 희생, 올해가 처음이 아니었다

 

   
(좌) <부대신문> 961호. 故 양영진 (국어국문학 86) 씨의 장례는 민주시민장으로 치러졌다
(우) <부대신문> 1506호. 故 고현철 (국어국문학) 교수의 장례가 전국교수장으로 거행됐다

지난 8월 17일, 대학본관에서 故 고현철(국어국문학) 교수가 ‘총장직선제 수호’를 외치며 투신해 모두를 충격에 빠트렸다. <부대신문> 1506호(2015년 8월 31일자)는 故 고현철 교수의 희생 소식과 그 후의 이야기들을 전했다. 김기섭 전 총장은 책임을 지겠다며 사의를 표명했고, 학내에는 분향소가 설치됐으며 그의 장례는 ‘민주화의 불꽃 故 고현철 교수 전국교수장’이라는 이름으로 치러졌다. <부대신문>은 이러한 현장의 모습을 고스란히 지면에 실었다. 얼마 뒤 학칙은 총장선출 방식을 직선제로 명시하는 방향으로 개정됐다. 그는 유서에서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이 필요하다면 감당하겠다’고 적었고 그의 뜻처럼 대학의 민주주의는 수호됐다.
961호(1988년 10월 17일자)는 故 양영진(국어국문학 86) 씨의 투신 소식과 그의 유서를 지면에 실었다. 그는 유서에서 ‘군대해체’, ‘미군철수’, ‘조국통일’ 등의 꿈을 적고 ‘이 조국산하에 실하게 뿌리박은 진달래가 되려 한다’고 전했다. 우리 학교 구성원이 개인의 신념을 위해 목숨을 던지는 비극이 처음 있었던 일은 아닌 것이다. 그의 장례는 ‘민족해방열사 故 양영진 민주시민장’이라는 이름으로 거행됐고, 그의 유지를 받들고자 하는 이들의 움직임이 이어졌다. 그러나 그가 바랬던 조국통일은 이뤄지지 못했다.

발전계획을 통해 본 캠퍼스 개발

부산캠퍼스는 학생 수 증가로 만성적인 공간 부족에 시달려 왔다. 이 때문에 장기적인 계획 없이 필요에 따라 건물들이 난립했고 이를 체계적으로 정리할 필요성이 대두됐다. <부대신문> 1138호(1997년 6월 2일자)는 ‘캠퍼스 종합기본계획’의 설계 소식을 전하고 있다. 앞으로의 10년을 대비하는 중·장기 계획인 해당 계획은 24개의 건물을 철거하고 △공동연구소동 △공동실습관 △기숙사 △문화회관 등을 신설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세부적으로 △무분별하게 얽힌 캠퍼스 내 도로 정리 △금정산을 배경으로 자연 환경을 보존 △시설 확충을 위한 부지 확보 방안 마련 등의 목표가 세워졌다. 해당 발전계획은 이후 두 차례의 공청회를 거쳐 1998년 수정·확정됐다.
2004년 양산캠퍼스가 조성되고 2005년 밀양대학교와의 통합이 이뤄지면서 멀티 캠퍼스 환경에 맞는 새로운 캠퍼스 발전계획이 필요하게 됐다. 2012년 취임한 김기섭 전 총장은 “부산캠퍼스의 경우 새로운 마스터플랜을 세우겠다”고 밝혔다. 1469호(2013년 9월 30일자)에 따르면 그해 7월 열렸던 멀티캠퍼스 마스터플랜 공청회에서 ‘부산캠퍼스 발전계획’에 대한 의견을 모아졌다. 이 발전계획은 ‘PNU VISION 2030’의 일환으로 △보행자 중심 캠퍼스 조성 △대학의 건학정신 반영 △정문 개선 등의 내용을 담았다. 이를 바탕으로 한 부산캠퍼스 개선은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옛날 <부대신문> 기자들의 생활은?

시대가 변화함에 따라 <부대신문> 기자들의 생활 모습도 변화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오랜 세월 동안에도 변치 않고 이어져 내려오는 모습이 있다. 그동안의 창간기념특집호들을 살펴보면 이러한 사실을 잘 드러난다. <부대신문> 284호(1965년 11월 22일자)에는 <부대신문> 기자들의 좌담회가 실렸다. 이날 좌담회에서는 신문을 제작하면서 경험하는 고민이나 어려움 등 다양한 이야기가 오갔다. 기고글이 제 때 도착하지 않아 곤란할 때가 있다거나, 취재원들이 불친절하게 대해 불쾌하다는 등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은 고충들이 있었다. 반면 데모를 취재하다 주동자로 몰려 잡혀갔다는 등 생소한 이야기도 눈길을 끌었다.
1026호(1991년 11월 25일자)에는 ‘부대신문사 기자의 하루’라는 기사가 실렸다. 기사에서는 <부대신문> 기자의 일주일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엿볼 수 있다. 당시 기자들은 매주 진행되는 기획회의의 고통 등을 토로했다. 아울러 지금과 달리 <부산일보>에서 조판작업을 하며 겪는 어려움 등 신선한 내용도 있었다.
1348호(2007년 11월 19일자)는 ‘부대신문을 만드는 사람들’이라는 기사로 <부대신문> 기자들의 일상을 전했다. ‘똑같은 패턴으로 돌아가는 생활에 지쳐 일요일에는 잠자기에 바쁘다’, ‘친구들과 만나지 못해 관계가 소원해졌다’ 등 당시 기자들이 말하는 고민들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었다. 이처럼 <부대신문> 기자들은 61년의 세월 동안 언제나 치열하게 고민하고, 바쁘게 뛰어다녀 왔다.

김민관 기자  left0412@pu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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