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곽민지)
공공서비스를 축소하거나 민간 시장에 넘기고, 공기업을 민영화하는 것. 최근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공공기관 및 공기업 개혁 정책의 일환이다. 이 정책들은 ‘공공부문의 비대화와 방만한 운영을 정상화’하기 위해 추진되고 있다. 공공부문에서도 수익성을 먼저 찾는 요즘, ‘공공성의 의미와 우리 공공성의 현실을 짚어봤다.

2013년, 서부경남의 유일한 지방의료원 ‘진주의료원’이 폐쇄됐다. 적자와 부채 누적이 이유였다. 하지만 이 폐쇄 조치는 진주의료원이 의료 서비스 양극화 해소를 위해 설립된 공공의료기관이라는 점에서 논란을 낳았다.
하지만 적자 누적을 이유로 공공을 위한 서비스와 사업들이 축소·폐지된 것은 이 뿐만이 아니다. 공공병원과 각종 복지시설들은 만성 적자라는 비판에 시달리고, 진주남강유등축제, 부산불꽃축제 등 지역민의 축제마저도 유료화됐다. 모두 경제적 자생력과 경쟁력 강화가 이유다. 최근 경남 창원시도 진해군항제 등 지역 축제의 유료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창원시 안상수 시장은 “3대 축제를 관광산업과 반드시 연결해 수익을 내도록 해야 한다”며 아예 수익성을 목표로 잡았다. 지역민이 모두 영위하는 축제와 문화 공간은 안중에도 없다. 공공성은 뒷전, 수익성이 우선이다.

공공서비스는 민간으로, 공기업은 민영화?
중앙정부 역시 공공서비스를 축소하거나 민간에 넘기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1월부터 △공공기관 기능 조정 △임금피크제·성과연봉제 실시 등 방안을 포함한 ‘2단계 공공기관 정상화’를 추진하고 있다. 공공부문 비대화를 막고 적자를 줄이기 위해서다. 노동자 처우와 직접 관련돼 있을 뿐만 아니라 공공서비스에도 영향을 주는 정책들이다.
특히 기능 조정 방안은 ‘우회 민영화’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공공기관 간 유사·중복 기능의 통폐합을 진행하면서 공공시설 및 부지의 민간 매각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철도공사(이하 KORAIL)이 대표적이다. KORAIL은 올해 △물류 △차량 정비·임대 △유지·보수, 3개 부문에 책임 사업부 제도를 전면 도입하고 2017년부터 단계적으로 자회사 전환을 추진한다. 성남〜여주, 부전〜일광 등 일부 노선 운영권을 민간에 개방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공공 서비스도 민간 영역으로 넘긴다. 한국토지주택공사는 중대형 공공 주택공급을 폐지했고, 임대주택 관리를 단계적으로 민간에 개방한다. 농어촌공사는 사회간접자본(SOC) 설계·안전진단 등 공공시설 업무를 민간에 개방하고, 기상청은 정부와 민간 영역 중복 서비스라는 이유로 생활기상정보 서비스 29종 가운데 20종을 내년 1월부터 서비스 중단한다.
이에 따라 정부가 공공부문 민영화의 초석을 닦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공공사업 민영화 시도는 한두 해의 일이 아니다. 공기업이 운영하고 있는 수도, 전기, 가스, 철도 등 사업은 매년 민영화 의혹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고, 한국산업은행, 담배인삼공사, KT 등은 이미 경영 효율화를 위해 민영화됐다.
이러한 현상의 밑바탕에는 신자유주의적 발상이 깔려있다. 모든 것을 효율성이라는 기준에 맞춰서 판단하는 신자유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공공부문의 사업들은 애초에 수지를 맞출 수 없는 ‘밑 빠진 독’에 불과할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산업들이 모두 ‘공공성’을 띠고 있다는 점에 있다. 이같은 공공영역은 사적 영역에 잠식당하고 있을 뿐 아니라, 사회구성원 누구나가 공유해야 할 자원이 사유화된다는 점에서 공공성의 기반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의 역설
그렇다면 대체 공공성이란 무엇일까?공공성(公共性)의 사전적 정의는 ‘한 개인이나 단체가 아닌 일반 사회 구성원 전체에 두루 관련되는 성질’이다. 다수의 사람과 연관된 문제라면 개인에게만 맡기지 말고 사회가 나서서 삶을 지속할 수 있는 구조로 만들어야 한다는 게 공공성의 논리다.
하지만 ‘공공성’을 지니는 영역이나 서비스를 판단하는 기준은 명확하지 않다. 결국 어떤 재화나 서비스가 얼마나 많은 시민들과 연관되고 그들의 삶에 어느 정도로 영향을 미치는가에 따라 공공성의 여부가 판단된다. 결국 공공성은 공평(公)하게 삶을 지속기 위해 사회구성원이 함께(共) 결정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 현실에서는 공공성 실현을 위해 시민들이 함께(共) 고민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공공성(公) 자체가 뒷전이 됐다. 신자유주의가 세계 경제를 주도하면서 공공성이 사적 영역에 의해 잠식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승우(한양대 제3섹터연구소) 연구교수는 그의 저서 <공공성>을 통해 ‘신자유주의로의 세계 경제 흐름은 공적인 문제들을 사적인 문제로 전환하면서 사적인 삶의 자율성을 잠식한다’며 ‘공적인 간섭이 사라지면 사생활의 자유가 늘어날 것 같지만 실제로는 권력이 아니라 화폐라는 또 다른 힘의 규율을 다는 존재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라고 평했다. 신자유주의 확대로 공공복지와 사회안전망에 대한 요구가 늘면서 공공부문이 외형적으로는 확장하고 있지만, 공공부문에서마저도 수익성과 효율성으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적 가치가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한복판에서 공공성을 외치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 후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면서, ‘사회적 경제’가 주목받고있다. 이 개념은 자본보다 사람을 중요시하며 협동과 연대를 강조한다. 사회적 경제를 실천하는 조직으로는 협동조합, 사회적기업, 마을기업 등이 있다.
무너진 사회안전망 때문에 생긴 사회문제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건강한 적자’를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등장했다. 공공성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경제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지만, 그 역시도 사업성이 아니라 ‘지속성’을 위해서만 고려돼야 한다는 것이다. 공공성과 수익성 사이의 논쟁에서는 수입 감소나 적자 문제가 아니라 공공서비스로서 갖는 의미가 핵심이 된다.
새로운 주장을 하는 경제학파도 있다. 바로 현대통화이론(Modern Monetary Theory, 이하 MMT)을 주장하는 학파다. MMT는 정부가 민간의 재화·서비스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공공재가 창출되므로, 정부의 지출이 많아야 한다고 본다. 정부는 재정수입과 같거나 적은 규모로 지출해 재정균형(혹은 흑자)을 이뤄야 한다는 기존 시각과는 차별화된다. 정부와 민간의 현금 흐름을 180도 뒤집어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MMT는 정부는 민간의 세금으로부터 수입을 얻는 게 아니라, 정부가 현금을 발행하는 주체이므로 시장의 현금 흐름을 주도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정부가 재정흑자 정책을 시행해 현금을 풀지 않으면 민간의 현금이 줄어든다고 본다. 결국, MMT는 정부의 지속적인 재정흑자는 민간의 부채 증가를 초래함으로 정부의 재정적자를 경제성장의 필수 요소로 바라보는 것이다. 너무나 파격적이라 학자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많다.
하지만 ‘건강한 적자’를 인정하자는 목소리나 ‘사회적 경제’, ‘MMT’ 등 이론이 등장한 것은 그만큼 현대 사회의 공공성이 약화됐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한국의 특수성, 파괴된 공공성
특히 한국은 서구 사회보다 공공성 기반이 약하기 때문에 공공성의 훼손 정도가 더욱 심하다. 우리 사회에는 일제의 식민 지배를 거쳐 자본주의가 강제 이식됐다. 시민혁명을 통해 ‘근대성’을 이룩한 서구와 달리, 독재정권이 이끄는 ‘한국식 근대화’가 그 자리를 대신하기도 했다. 경부고속도로 등 공공사업이 진행됐지만 그것은 국가의 공식 사업이었을 뿐, 시민 복지를 증진하지는 않았다. 시민의 권리는 억압당했고 재벌 중심의 수출주도 경제는 내수기반을 취약하게 했다. 김영삼 정부는 ‘세계화 정책’과 더불어 신자유주의를 본격적으로 도입했고,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연이은 신자유주의 정책 기조의 국가 운영은 이명박 정부 들어서 더욱 왜곡·심화됐다. 결국 우리 사회에서 공공성은 언제나 경제논리 앞에서 무력했고 지속적으로 파괴됐다.
박근혜 정부 역시 같은 전철을 밟고 있다. 2012년 7월부터 ‘서비스산업 발전 기본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서비스 산업의 경쟁력과 생산성을 향상을 위해 ‘서비스산업선진화위원회(이하 선진위)’를 만들어 서비스 산업에 대한 규제 완화 등 각종 지원을 하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 법을 ‘경제활성화법’이라 지칭했지만, 노동계는 민영화의 수순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문제는 이 법안이 통과될 경우 교육·의료 등 공공 부문까지 서비스 산업의 범위에 놓인다는 것이다. 해당 법안은 서비스 산업을 ‘농립 어업이나 제조업 등 재화를 생산하는 산업을 제외한 경제활동에 관계되는 산업으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산업’으로 규정했다. 공공부문을 ‘서비스 산업’에 포괄하면, 해당 서비스를 민간으로 시장화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심지어 기획재정부 장관은 선진위원장으로서 공공부문 민영화가 가능하도록 ‘규제를 완화’할 수 있는 전권을 부여받는다.
결국, 여기에는 공평함(公)도, 국민과의 소통·협력(共)도 없다. 우리 사회의 공공성이 더욱 우려되는 이유다. 파괴된 공공성의 회복, 과연 가능할까.

■참고 자료
- <이제는 사회적 경제다>정관영 저/공동체/2013
- <공공성> 하승우 저/책세상/2014
- <공공성 담론의 지적 계보> 조승래 저/서강대학교 출판부/2014
- <공공성이란 무엇인가> 조한상 저/책세상/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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