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일방적인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으로 인해 전국이 들끓고 있는 가운데, 정부와 여당은 이른바 ‘노동개혁 5개 법안’의 이번 정기국회 내 처리를 공언하고 나섰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의 추진과 마찬가지로 서둘러 밀어붙이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물론 고용불안과 일자리 부족이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현안인 상황에서 이를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국민이나 당사자인 노동자들에 대한 충분한 설득이나 동의 없이 밀어붙이기식으로 추진되는 법안이나 정책은 원활히 진행되기도 어렵지만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분열과 갈등은 감당하기 힘든 사회적 부담으로 이어진다. 지난 14일에 있었던 민중총궐기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현재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고 있는 노동개혁의 내용에 대해 그 타당성을 조목조목 평가하는 것은 매우 논쟁적인 데다가 지면도 이를 허용치 않는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법안의 내용보다는 노동개혁이 왜 필요하며, 이를 어떻게 추진해야 하는가에 주목해보고자 한다. 우선, 정부와 여당은 자신들이 추진하는 노동개혁, 즉, 임금피크제의 도입, 노동시간 단축, 노동의 유연성 제고 등이 당면한 청년실업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법이자 양극화 해소에도 도움이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노동계는 이에 반발하며 들끓고 있다. 정부를 신뢰할 수 없다고 여기는 탓도 있겠지만, 노동개혁이 본질적으로 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것, 즉 신자유주의적 무한경쟁 속에서 한국의 기업이 살아남아야 고용을 늘릴 수 있고, 그러기 위해서는 유연한 노동시장이 필요하다는 논리에 근거하여 노동자들의 양보와 희생을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것으로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노동개혁의 추진방식과 관련하여, 정부도 이러한 중요한 문제는 이해 당사자들 간의 합의가 중요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노사정 합의를 추진해 지난 9월에 이를 성사시켰고, 현재 제출되어 있는 관련 법안들은 이에 따른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알다시피. 노동계에서는 한국노총이 논의에 참가하여 합의문에 서명하였지만, 이로써 노동자의 입장이 충분히 반영되었다고 보는 이는 별로 없다. 오히려 법안의 입법을 앞두고 노동계가 다시 들끓고 있다. 노사정 합의 당시 쟁점이 되었던 기간제 및 파견근로자 관련 조항과 근로시간 단축 등의 핵심사항들은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향후 과제로 떠넘기면서 급하게 합의문에 서명했기 때문이다. 노사정 합의조차 밀어붙이기식으로 억지로 만들어낸 것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정쟁의 관점에서 벗어나, ‘왜 노동개혁이 필요한가’를 ‘일자리부족과 고용불안을 야기한 원인은 무엇인가’라는 관점에서 생각해보자. 그 대답은 간단하다. 일자리부족과 고용불안은 이윤추구에 기반한 무한경쟁의 자본주의가 낳은 구조적인 문제이다. 이론적으로는, 기술의 발전은 사회적 필요노동을 크게 감소시켜 인간은 적당히 노동하고도 이전보다 나은 물질적 풍요를 누릴 수 있게 된다. 하지만 현실의 상황은 기대와는 전혀 다르다. 기술 발전의 혜택은 이윤논리를 좇아 불평등하게 배분된다. 즉, 기계가 노동을 대신하면서 수많은 일자리가 사라져 실업자가 양산되며, 이에 새롭게 노동시장에 진입하고자 하는 청년들은 노동의 기회마저 갖기 힘들다. 그러다 보니 다행히 정규직의 일자리를 가진 자들은 그것이 특권이 되어 오히려 노동을 더 강화하고 있다. 즉, 노동의 양극화가 진행되어 한쪽에서는 강화된 노동으로 힘들어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일자리가 없어 고통받는 것이다. 고르(A. Gorz)가 제안한 것처럼, 노동과 소득을 분리하고, 일자리를 나눠 노동시간을 줄이면 해결될 수 있는데, 경쟁과 자기 이익에만 급급한 현실에서 이를 실현할 방법이 요원하다. 노동개혁을 위한 사회적 대타협은 이를 위해 필요하다.
  현실의 노동현장이 당면한 과제들, 즉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양극화가 심화되는 상황이나 평생고용이란 꿈도 꾸지 못하며 불안정한 프리캐리아트(precariat) 상태가 일상화되는 상황 등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이나 ‘최저임금의 현실화’와 같은 노동자를 위한 노동개혁이 적극적으로 모색되어야 한다. 노동개혁은 노동자들에 대한 존중에서 출발하여 이들의 행복하고 정의로운 삶을 지향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상봉
한국민족문화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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