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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뿐인 어린이보호구역, 등굣길 아이들이 위험하다
  • 신지인 기자
  • 승인 2015.11.08 05:16
  • 호수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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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찾은 장전초등학교 앞, 이곳이 어린이보호구역임을 알리는 노면 표시가 퇴색된 지 오래였다. 아이들의 등굣길은 공사 자재를 운반하는 덤프트럭들의 통행로로 변했다. 이곳을 지나는 대부분의 차량들은 빠른 속도로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 광경을 보던 학부모 전은실(금정구, 40) 씨는 “아이가 이곳에서 차량과 부딪힐까 봐 아이 혼자 등교시키기 불안하다”고 말했다. 아이들의 안전이 위협받는 어린이보호구역, 이대로 괜찮을까?

부산광역시 내 어린이보호구역에서 어린이 교통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어린이보호구역의 관리·운영에서 문제점들이 드러나 사고의 우려가 더욱 커지는 실정이다. 지난 8월에는 금정구와 사상구에서 2건의 사망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부산광역시(이하 부산시) 내에 설치된 어린이보호구역은 총 879곳이다. 이곳들은 어린이를 보호하기 위해 지정한 구역이지만, 어린이 교통사고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2010년부터 4년간 부산시 어린이보호구역 내에서는 300건에 달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현재 부산시는 전국 17개 시·도 중 어린이보호구역 1개소 당 사고 발생률이 0.34건으로 가장 높은 상태다.

   
 <부산시 어린이보호구역 교통사고 현황>


안전시설 부족으로 유명무실한 보호구역

   
 <부산YMCA의 '2015 부산지역 통학로 29곳 실태조사 결과'>

부산시 내 어린이보호구역에는 필수적인 안전시설조차 없는 곳이 많았다. 부산YMCA의 ‘부산시 내 73곳의 통학로 실태 조사’에 따르면 신호등이 없는 곳이 30곳(41.1%), 횡단보도가 없는 곳은 5곳(6.8%)이나 됐다. 과속방지턱이 없는 곳은 7곳(9.6%)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어린이보호구역 내 안전시설의 미비는 어린이들의 사고 발생률을 높이는 원인 중 하나다. 지난 8월 국민안전처는 <어린이 교통사고 다발 스쿨존 민관합동 점검> 결과에 따라 △노면 표식 퇴색 △안전표지 미부착 △속도 저감시설 미비 △중앙분리대 미설치 등 안전시설 미비를 교통사고 발생의 주원인으로 꼽았다.
금정구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금정경찰서 교통안전공단은 금정구 내 17곳의 어린이보호구역에서 83개의 문제점을 발견했다. △노면 표시 차선 퇴색 △과속방지턱·보호울타리 등 미설치 및 미보수 등의 문제였다. 장전초등학교 앞에서 교통 안내를 하는 고창식(동래구, 73) 씨는 “등하교 시간마다 교통 안내를 하고 있지만 건널목이나 모퉁이에서는 안전시설이 부족해 차량과 부딪힐 위험이 크다”고 말했다.
이러한 안전 문제를 해결하고자 해운대구청은 새로운 안전 시스템 도입을 추진했지만, 시 차원의 대책은 없는 상황이다. 부산시에서 어린이보호구역 내 사고 발생률이 가장 높은 해운대구는 재송동 신재초등학교 앞에 ‘교차로 알리미’를 설치하고 시범운영 중이다. 이 시스템은 어린이 보행자에 차량이 접근하게 되면 경고 메시지를 운전자와 보행자에게 실시간 제공한다. 하지만 부산시 차원의 정비 대책은 여전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

과속 못 잡는 과속 카메라?
보호구역에 설치된 과속 카메라는 그 수가 적은 데다가, 통행 속도 제한도 규정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부산시 내 보호구역 879곳 중 무인 단속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는 곳은 4%(28곳)뿐이다. 나머지 854곳의 어린이보호구역 내에는 차량이 과속하더라도 이를 단속할 수 있는 장치가 없는 것이다.
과속 카메라가 설치됐지만 ‘과속’의 범위가 넓어 제대로 된 단속이 어려운 경우도 있다. <도로교통법> 제12조에 따르면 어린이보호구역 내 차량 통행속도는 시속 30km 이내로 제한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그러나 현재 부산시는 일부 보호구역에서 일반 도로 규정인 60km 이하의 속도로 규제하고 있다. 간선도로를 끼고 있는 도로의 경우, 물류 수송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는 이유다. 부산지방경찰청 교통과 송영선 경사는 “규정에는 시속 30km 이하로 제한할 수 ‘있다’라고 명시돼 있지 ‘해야 한다’가 아니다”며 “기존 도로와 보호구역이 밀접해 있어 어쩔 수 없다”고 설명했다.

보호구역에 설치된 주차장, 사각지대에 놓인 아이들
어린이보호구역 내에 주차장이 설치돼 있어 현행법에 위반되는 곳도 많다. <어린이·노인 및 장애인 보호구역의 지정 및 관리에 관한 규칙(이하 어린이보호구역 규칙)>에 따르면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시설의 인근 도로에는 주차장을 설치할 수 없다. 그러나 부산시 보호구역 내 설치된 주차장은 110곳(2,378면)이나 된다. 심지어 그중 94곳(2,072면)은 보호구역이 지정된 이후에 설치된 것으로 드러났다. 부산YMCA 김현정 간사는 “후방 주차된 차량의 경우 사각지대가 생겨 어린이를 미처 보지 못하고 사고가 날 가능성이 높다”며 “법률상으로도 보호구역 내 주차장 설치는 어긋나므로 없애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이에 부산지방경찰청 측은 보호구역 내 주차장을 점진적으로 줄여나갈 계획을 밝혔다. 하지만 보호구역이 주거지역과 밀접해 있어 주차장 일괄 폐지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송영선 경사는 “주택가와 보호구역이 가까워 주차장을 없애면 불법 주정차들이 늘어나 일괄 폐지는 어렵다”며 “우선 내년까지 272면을 줄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위) 지난 5일 찾은 두실초등학교. 하교하는 학생들이 횡단보도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아래) 같은 날 우리학교 보육종합센터 앞, 어린이보호구역임을 알리는 노면 표시가 퇴색돼 있다

4년 사이 예산 655억 줄었다
어린이보호구역 설치 및 관리에 대한 국가 예산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어 보호구역 개선사업도 어려운 실정이다. 2011년에는 745억 원이었던 국가 예산은 2015년 현재 90억 원으로, 4년간 655억 원이 줄었다. 부산시청 교통운영과 조미숙 직원은 “2003년도부터 어린이보호구역이 신설됐기 때문에 현재는 관리 단계에 접어들었다”며 “예산 편성도 신설이 아닌 관리에 초점을 맞춰 줄어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줄어든 예산으로는 기존 어린이보호구역의 보수 및 관리가 어려운 상황이다. 연차적으로 어린이보호구역을 설치했던 부산시는 사업 초기에 설치한 보호구역의 노후화에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 금정경찰서 강명진 경위는 “금정구의 경우 올해 보호구역 예산이 1,600만 원밖에 편성되지 않았다”며 “유관 기관과 협의를 통해 예산 확보가 더욱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관련 기관 4곳, 정작 총괄 주체는 없다?
어린이보호구역의 관리 책임 주체가 명확하지 않은 것도 문제다. 현재 어린이보호구역의 책임 주체는 총 4곳이다. 부산시는 어린이보호구역 지정과 계획을 수립하고 부산지방경찰청과 각 지역 경찰서는 교통안전시설을 관리하고 차량을 통제한다. 도로에 교통 안전시설을 설치하는 것은 지역 구청의 역할이다. 2011년에는 <어린이보호구역 규칙>의 개정에 따라 어린이보호구역 개선 사업이 경찰에서 각 지자체로 이관되기도 했다. 결국 보호구역을 총괄 담당하는 명확한 주체는 없는 것이다. 이에 금정구의회 박인영 의원은 “보호구역 지정 및 보수가 필요해도 어디에 요구해야 할지 난감하다”며 “각 책임자가 다른 것은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있다는 것과 같다”고 비판했다.
이 같은 비판이 일자, 유관기관은 유기적인 대응 체계를 마련하기 위해 협의체를 구성할 계획이다. 지난 9월 부산지방경찰청이 어린이보호구역의 체계적인 운영을 위해 협의체를 구성하자고 제안한 것이다. 협의체는 부산시를 비롯해 교육청, 경찰청 등의 기관으로 구성된다. 이들은 연 2회 이상 모여 부산시 내 어린이보호구역을 합동 점검하고 안전시설을 검토할 예정이다.

신지인 기자  amigo@pu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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