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10월 22일 <부대신문> 제1004호

 
학교는 우리 힘으로 지킨다, 자치규찰대를 소개합니다 
  1990년 10월 17일에 제2기 자치규찰대가 발족했습니다. 자치규찰대 임시대장을 맡은 박희문 씨는 ‘학원탄압분쇄와 자주학원 사수를 위한 민족효원결의대회’에서 “우리 학교가 퇴폐소비문화의 온상지라는 불명예를 없애고, 교내폭행과 경찰의 학원난입을 방지하겠다”고 말했는데요. ‘퇴폐소비문화의 온상지’라는 표현과 학생운동을 사전 차단하기 위해 학내에 상주했던 사복경찰들의 모습이 지금으로서는 상당히 이색적으로 느껴집니다. 한편, 제1기 자치규찰대는 89년 10월에 발족해 두 달간 활동하다가학교와의 마찰로 해산됐다고 합니다.
엄혹한 현실 속에서도 공권력을 견제하기위해분투했던 학생들의 노력이 대단해 보입니다.

 

 
▲1997년 10월 27일 <부대신문> 호외
 
취업률 75.9%가 취업대란?
  1997년 10월 27일에는 <부대신문> 호외가 발간됐는데요. 취업특집호로서 우리 학교 학생들의 취업 현황 및 노하우와 채용 관련 내용들을 중점적으로 보도했습니다. 특히 1997년 2월 졸업생을 대상으로 한 취업률 조사가 눈에 띄는데요. 전체 졸업자 3,694명 중 1,958명이 취업해 75.9%의 취업률을 기록했다고 합니다. 당시 특집호는 정부가 IMF에 구제금융 신청을 했다는 사실을 공식 발표한 1997년 11월 21일 이전에 발간됐는데요. 현재로서는 준수해 보이는 75.9%의 취업률에도 불구하고, 당시 기사에서는 ‘취업대란’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보입니다. IMF 이후로 취업 현실이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보여주는 기사라고 할 수 있는데요. 작년 우리 학교 졸업생들의 취업률은 52%였습니다. ‘취업대란’을 넘어서 ‘초취업대란’이라고 해야 될까요? 
 
 
▲2004년 11월 1일 <부대신문> 제1286호
 
대학 본부, 드디어 부마민주항쟁을 품다
  1979년 10월 16일이 무슨 날인지 아시나요? 바로 우리 학교 민주화운동 역사의 자랑인 부마민주항쟁이 시작된 날입니다. 부마민주항쟁은 우리 학교 학생 4,000여 명이 유신정권 타도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며 촉발됐는데요. 하지만 대학 본부에서 부마민주항쟁을 기념하기 시작한 건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학내 외의 계속된 요구 끝에 부마민주항쟁 25주년이 된 2004년이 돼서야 대학본부 주관으로 기념식이 열릴 수 있었는데요. 당시 축사를 맡은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송기인 이사장은 ‘늦은감이 있으나 이를 계기로 부산민주항쟁의 역사적 의미를 되찾기 위해 분발해야한다’고 밝혔습니다. 이런 지난한 과정을 거쳐 학교 품으로 돌아온 부마민주항쟁인 만큼, 앞으로도 꾸준히 그 뜻을 기려나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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