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 자리 잡은 대안공간들이 운영난을 겪으며 공간을 이전하거나 문을 닫고 있다.
부산에서는 1990년대 말부터 정형화된 문화예술이 아닌, 실험적이고 독립적인 대안문화가 싹트기 시작했다. 이에 전시, 공연 등을 위한 공간이 만들어져 예술인들이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현재 많은 대안공간이 운영난으로 인해 자리를 떠나거나 운영을 중단하는 추세다.
공간을 이전하기 전, 옛 구서어린이집에 자리했던 독립문화공간 아지트의 모습 (사진=취재원 제공)
공간의 운영을 중단한 곳도 적지 않다. 2010년 장전동에 자리 잡았던 ‘생활기획공간 통’이 대표적인 사례다. 인문학 세미나, 창작모임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했던 생활기획공간 통은 운영난으로 인해 작년에 문을 닫기로 결정했다. 생활기획공간 통 송교성 대표는 “공간을 후원금과 지원금으로 운영했는데, 지속할 수 있는 형태가 되지 못해서 힘에 부쳤다”고 전했다. 2008년 ‘대안공간 반디(이하 반디)’가 사라진 것은 많은 문화예술인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1999년 ‘대안공간 섬’부터 시작한 반디는 대안적이고 발전적인 미술문화 형성에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반디 또한 공간 유지가 어려워 2번의 이전 끝에 문을 닫았다. ‘공간 힘’ 서평주 대표는 “부산 대안공간의 상징과 같았던 반디가 사라지면서 비영리 미술을 지향하는 작가들이 전시할 공간이 없어졌다”고 전했다.‘오픈스페이스 배’와 ‘독립문화공간 아지트(이하 아지트)’가 공간 이전을 결정한 대표적인 곳이다. 오픈스페이스 배는 현대미술을 위한 대안전시공간으로 2006년 기장에 닻을 내렸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 기장의 신도시 개발계획에 의해 다른 곳으로 떠나게 됐다. 다른 공간을 찾고 있지만 임대료 등의 문제로 쉽게 진행되고 있지 않다. 오픈스페이스 배 조형석 사무국장은 “실험적인 작업을 하는 신인 작가를 발굴할 수 있는 공간이 자금난에 부딪혀 어려운 것이 너무 아쉽다”고 전했다. 아지트는 시각예술 외에도 다양한 장르의 서브컬쳐를 아우르고자 갤러리와 녹음실, 합주실 등 여러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건물의 철거가 결정되면서 공간을 떠나야 했다. 대안문화행동 재미난복수 김건우 대표는 “건물 주인이 토지를 매각하기로 결정해 아지트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이 외에도 많은 대안공간이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 6월 문을 닫기로 한 ‘공간초록’의 경우 오래된 건물에 누수 등의 문제가 생겨 보수가 필요했다. 그러나 건물주가 투자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혀, 자원봉사자들이 십시일반 도와 건물 수리를 하기도 했다. 공간초록에서 활동했던 ‘부산온배움터’ 송명자 사무국장은 “힐링을 말하는 시대에 사실 제대로 쉴 수 있는 공간이 없었다”며 “생태주의가 잘 반영되어 편히 쉴 수 있는 곳이었는데, 없어지게 돼 안타깝다”고 전했다.
없는 자금에 지원까지 부족해
대안공간이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자본 문제다. 대부분의 대안공간을 비영리단체가 운영하고 있어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서평주 대표는 “영리를 추구하는 단체가 아니다보니 공간을 유지할 수 있는 자금이 전무한 실정”이라고 전했다. 따라서 지원금이 절실하지만, 지자체의 지원을 받기도 어렵다. 공간초록 김동규 공동운영위원은 “지자체의 지원금에 기대고 싶어도 행사나 인건비가 아닌 공간 자체에 대한 지원은 해주지 않는다”며 “더불어 예술인들의 생계도 보장되지 않으니 운영이 더욱 어려워지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관계자들은 이로 인해 대안문화활동가들이 문화·예술적 고민보다 생계문제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하는 상황이 많다고 전했다.
대안공간이 어려워진 것이 ‘젠트리피케이션 현상’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다. 조형석 사무국장은 “예술가들이 임대료가 싼 유휴공간과 변두리 지역을 활성화시키면, 임대료가 오르거나 개발을 해서 오히려 예술가들이 지역을 떠나게 되는 것”이라고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설명했다. 지자체가 민간예술공간을 지원하지 않고 오히려 같은 성격의 새로운 공간을 만드는 것을 지적하기도 했다. 부산광역시는 2013년 대안문화공간 ‘사상인디스테이션’을 개관했다. 이에 대해 사상인디스테이션 이동빈 프로그램매니저는 “개관 당시 대안공간에 악영향을 끼칠 것을 염려해, 독립문화가 덜 활성화된 서부산 지역으로 정착해서 균형을 맞추려고 했다”며 “그럼에도 균형이 맞춰지지 않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대안공간에 볕 들 날 오려면
이렇듯 어려움이 많지만 대안공간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대안공간이 문화생태계의 다양성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송교성 대표는 “기존의 예술장르가 아닌 청년문화나 독립문화 등 실험적인 예술들이 활성화되면 문화의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전했다. 독립문화를 실천하는 비주류문화활동가들은 기존의 화랑이나 공연장 등에 진입하기 쉽지 않다. 대안공간은 이런 문화를 책임지는 사람들의 활동장소가 되어줄 수 있다.
관계자들은 대안공간이 유지되기 힘든 환경을 해결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고 입을 모았다. 이동빈 프로그램매니저는 “정책의 방향성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하는 문제”라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지켜봐야 하는 문화인데 지자체가 단기간의 결과물을 중요시해 지원을 받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나 힘든 상황 속에서도 대안공간들은 활동을 지속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중이다. 김동규 공동운영위원은 “대안공간 사이의 네트워크 형성을 통해 어려움을 나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김건우 대표는 “공동체의 새로운 경제구조를 만들어서 자립할 수 있는 공간과 돈을 마련하는 방법을 모색 중이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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