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후된 부산 원도심 지역의 범죄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부산광역시는 셉테드(CPTED, 범죄 예방 도시디자인)를 시행해 이를 개선하고자 했지만 △구체적 대안의 미비 △셉테드 마을 중복 지정 △미미한 개선효과 등 많은 한계점들을 나타나고 있는 실정이다.

부산광역시는 2013년 ‘범죄 예방 도시디자인 조례’를 제정한 뒤, 총 11곳의 셉테드 마을을 운영하고 있다. 셉테드 마을에는 벽화 거리나 비상벨 등이 조성돼 있다

원도심의 낙후된 환경이 범죄를 유발한다

부산광역시(이하 부산시) 범죄율이 전국 14개 시·도 중 4위를 차지했다. 부산시 내에서 특히 범죄 발생률이 높은 지역은 강서구(10.9%), 중구(10.4%), 동구(6.6%)로, 과거 부흥했다가 낙후되고 있는 원도심이 많았다.
범죄의 대다수는 인적이 드물고 낙후된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다. 흉악 범죄로 떠들썩했던 ‘조두순 사건’과 ‘김길태 사건’도 어둡고 방범 시설이 부족한 곳에서 발생했다. 이러한 범죄와 환경의 상관관계는 연구 자료에서도 뒷받침하고 있다. 형사정책연구원 보고서에서 성폭력 위험지역은 △가스배관 덮개 미설치 △침입 경보 및 출입 감시 장치의 부재 등 공간적 특성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범죄 발생이 주변 환경에 큰 영향을 받는 것이다.
특히 공·폐가가 많은 부산 지역 원도심은 더욱 범죄에 노출되기 쉽다. 부산지방경찰청에서 순찰하고 있는 부산시 내 공·폐가는 현재 2,728곳이나 된다. 공가와 폐가는 범죄 현장이나 범죄자의 은신처로 이용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집중 순찰지역으로 지정한 것이다. 그러나 부산지방경찰청 생활안전계 김호희 직원은 “집중 순찰을 도는 곳이 2,728곳이지 실제 부산시 내에 있는 공가와 폐가는 훨씬 많다”고 밝혔다.

부산시, ‘셉테드’ 활용해 범죄와의 전쟁 선포

부산시는 이러한 도시 범죄를 줄이기 위해 물리적 환경을 개선하는 ‘셉테드(CPTED)’를 도입했다. 셉테드는 도시생활공간의 설계 단계부터 범죄를 예방할 수 있도록 도시계획을 수립하는 범죄 예방 전략이다. 시야를 가리는 구조물을 없애거나, 주민의 활동량을 늘려 자연적 감시가 늘어나도록 하는 방식으로 범죄를 사전에 차단하는 것이다. 벽화 거리 조성이나 비상벨 설치가 셉테드의 대표적인 예다. 부산시는 2012년 셉테드를 시범적으로 도입해 성과를 냈다. 부산발전연구원 연구자료 <도시문제를 해결하는 디자인의 힘>에 따르면 부산시는 셉테드의 일환으로 CCTV 설치 등 도시안전망 구축사업을 벌였고, 이를 통해 전년 대비 20% 이상의 범죄율 감소 효과를 거뒀다.
시범 운영에서 범죄 감소 효과가 나타나자 부산시는 2013년 <부산광역시 범죄 예방 도시디자인 조례>를 제정했다. 2013년부터 셉테드 시범 사업도 실시하고 있다. 올해 지정한 셉테드 마을 주민을 대상으로 부산시는 ‘주민 성향’이나 ‘불안감을 느끼는 이유’ 등 환경조사를 시행했다. 이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올해 지정한 셉테드 마을 4곳의 디자인 설계안을 제작하고 있으며, 올해 12월 내로 최종 설계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부산시청 도시경관과 윤무근 직원은 “2013년도에 시범 사업을 실시했던 마을에서 설문조사를 시행한 결과, 주민 만족도가 63%”라며 “사업 이후 두려움이 감소했다고 답한 주민도 58.5%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단순 가이드라인에 그친부산시 조례안

하지만 셉테드의 시행에도 한계점은 있었다. 셉테드 관련 법령이 없어 지방자치단체마다 제대로 된 시행안을 내놓기 어렵기 때문이다. 부산시가 제정한 조례안 역시 단순 가이드라인에 불과했다. 조례안에는 도시디자인의 목적이나 정의, 기본 원칙 등만 있을 뿐, 예산안 등의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 부산발전연구원 윤지영 연구위원은 “부산시의 셉테드 관련 조례가 구체적이지 못하다”며 “시행 방안이나 계획이 보다 분명히 명시돼야 한다”고 말했다.

같은 사업, 운영은 따로?

셉테드 마을을 운영하는 주체가 분산돼있어 행정력이 중복 투입되는 것도 문제다. 부산시청은 2013년에 4곳, 2014년에 3곳, 올해 4곳, 총 11곳을 셉테드 마을로 지정해 운영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부산지방경찰청에서도 총 16곳을 ‘셉테드 행복마을’로 선정했다. 그러나 부산시청에서 지정한 마을과 부산지방경찰청에서 지정한 마을이 겹치는 등 체계적인 운영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동래구 칠산동’과 ‘북구 구포동’이 중복 지정된 지역이다.
전문가들은 주관 기관의 분산과 더불어 부산의 셉테드 마을이 단순히 거리 환경 조성에만 그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형사정책연구원 신의기 실장은 “‘셉테드’하면 벽화 그리기를 가장 많이 떠올리지만 이는 셉테드의 한 종류일 뿐 전부가 아니다”며 “좀 더 고심해서 주민 공동체를 형성해 자연스럽게 범죄 예방 활동까지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지영 연구위원 또한 “거리 환경을 정비하는 단편적인 접근에서 나아가 종합적으로 셉테드를 적용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했다.

거창하게 시작했지만…변화는 미미?

범죄율이 줄었다는 부산시의 발표가 무의미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셉테드 마을로 지정된 곳은 원래 범죄 발생 건수가 적은 지역이기 때문에 범죄 ‘발생률’이 감소한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부산진경찰서 관계자는 “셉테드 마을로 선정된 곳은 저소득층이 거주하는 경우가 많아 강도 발생 건수는 크게 적은 편”이라며 “범죄가 10건 발생하다가 5건으로 줄어들면 범죄율이 50% 줄어든 것이니 크게 줄어든 것처럼 보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셉테드 마을에 거주하고 있는 주민들도 큰 변화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셉테드 마을로 지정된 가마실마을에 거주하고 있는 이상헌(부곡동, 54) 씨는 “셉테드 마을로 지정된 이후 변화가 피부로 느껴지지 않는다”며 “그저 형식적으로 조성된 느낌이다”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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