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의 이상주의가 싫었던 한 사람이 맹자에게 짓궂은 질문을 던졌다. 왕의 아버지가 죽을 죄를 지었다. 왕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왕이 사형선고를 내리면 왕은 인륜을 저버림으로써 유가의 기준에서는 왕의 자격이 없어진다. 인정으로 아버지를 용서하면 왕의 자격이 없다.
맹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낮에 왕으로 아버지에게 선고를 한다. 그리고 밤에 옥문을 깨고 왕위를 버리고 아버지를 업고 도망친다. 맹자의 답변은 조금은 궁색하다. 유학자들 중에도 맹자의 해법을 지지하지 않는 분들이 있다. 그러나 이상주의자의 이상주의적인 답변임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법의 현실에 대한 냉정한 고백이 숨어 있다. 법은 판결과 운용이라는 두 가지 수단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과 중국의 사법제도 중에서 오랜 전통을 지닌 것이 대사령이다. 황제(왕)는 정기적으로 사면령을 내린다. 이유도 다양하다. 전쟁에서 승리했다. 왕이 즉위하거나 결혼했다. 세자가 태어났다. 자연재해가 심하다. 국가에 곤경이 닥쳤다. 공식적으로 이렇게 말한 적은 없지만, 이런 이유도 있었던 것 같다. ‘그동안 대사령이 너무 없었다’.
몇몇 경우는 거의 관행이 되어서 감옥에 있는 죄수들은 아예 사면령을 예측하고 기대하는 수준이 됐다. 대사령은 판사들의 판결에도 종종 어려운 딜레마를 던졌다. 어떤 사람이 도장을 위조했다. 한 사람이 그 사실을 알고 범죄를 교사했다. 아마 그 위조 도장을 이용해서 어떤 범죄를 저지를지를 구상하고 범죄계획을 세웠던 것 같다. 즉 그것을 이용해서 어떤 범죄를 저지르자고 계획을 세웠던 것 같다. 그런데 대사령에는 항상 기간이 명시되는데, 도장을 위조한 시기는 사면 기간에 해당되고, 범죄를 교사한 기간은 사면 기간에 해당하지 않는다. 이 범죄를 하나의 세트이자 연속 과정으로 보면 전체를 대사령에 포함시켜야 하는가 아니면 대사령과 무관하다고 보고 처벌해야 하는가? 아니면 위조한 자는 사면해 주고 교사한 자만 처벌해야 하는가?  
대사령은 권력형 비리, 부정부패를 저지른 사람을 무한 용서하고 복권시키는 역할도 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아 그것이 대사령의 숨은 목적이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것이 대사령의 본질은 아니다.
현대인의 기준으로 보면 근대 이전의 사법체제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불공정하고 고문을 용납하고 신정재판, 마녀재판 같은 온갖 부조리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이런 관행들이 인권 의식이 부족해서 나온 것이 아니다. 거의 20세기까지도 과학적 수사란 불가능했다. 범죄는 정황 증거와 증인, 자백으로 밝혀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자백이나 타인의 자백(증언)은 둘 다 신뢰하기 힘든 것이다. 이것은 동서양의 똑같은 고민인데 유독 한국과 중국에서 대사령이 발달했다. 그 이유는 중앙집권적 국가체제에 있다. 국가의 존재 이유가 국방과 치안이다. 국민들은 바로 이 기능 때문에 국가권력을 인정하고 세금을 바친다. 국가가 범죄를 증거불충분으로 방치할 수도 없고, 증거가 박약한 범죄자를 중형에 처할 수도 없다. 그래서 나온 방법이 범인을 체포하고, 처벌하되 간간이 전혀 다른 명분, 그 역시 국가적 경사를 명분으로 석방하는 것이었다. 대사령의 뒤에 있는 것은 불안정한 사법제도이고, 그 뒤에 있는 것은 강력한 국가주의다.
오늘날 우리는 현대적 수사능력과 사법제도를 가지고 있다. 보수고 진보고 모든 정당은 과도한 국가주의가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을 해친다고 하는 데 동의한다. 그러나 현재도 광복절 특사, 대통령 취임기념 대사면이 경쟁적으로 행해지고 있다. 선진국에서 사면과 특사는 있다. 그러나 그것은 범죄 입증 사실이 부족하다거나 특이한 경우 개인을 대상으로 검토된다. 우리처럼 절기적, 국가적으로 행해지는 사면령은 변명할 여지 없이 중세식이다. 근래에는 조금 반성을 해서 사면이 법질서를 어긴다고들 이야기는 많이 하는데, 여전히 중세식 사면령은 남용되고 있고, 여야를 가릴 것 없이 정치인들은 사면령을 요구할 때마다 ‘민심수습용’이라는 용어를 당당하게 붙인다. 사면령을 비판하는 사람들도 사면령 자체를 비판하기보다는 사면대상을 두고 싸운다.
민심수습용 사면이란 중세의 잔재이고, 권력의 가면이다. 그보다는 현대에도 대사령이 필요할 수밖에 없는 부당한 법과 제도, 여론재판, 진영논리에 움직이는 법 감정에 대한 반성과 노력이 필요하다. 

임용한 한국역사고전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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