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논문은 없고 이름만 있는 ‘박사’가 있다. 이른바 명예박사다. 무한경쟁의 시대에 들어서면서 대학들은 ‘생존’을 위한 승부를 벌이게 됐다.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재정지원, 사업추진 등에 매달려야 하는 것이다. 때문에 각종 로비를 위한 수단으로 명예박사 학위 수여가 남발되고 있다. 온갖 미사여구가 동원된 수여 이유와 함께.
지난달 20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동국대학교에서 정치학박사가 명예 학위를 수여받았다 |
대학과 학위 수여자 간의
은밀한 ‘거래’
그렇다면 도대체 명예박사 학위 수여의 기준은 무엇일까. 현재 우리나라 <고등교육법>에 따르면 ‘대학원에 박사학위 과정을 둔 학교는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할 수 있다’라고만 명시돼 있다. 구체적인 기준이 규정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문제는 각 대학의 자율적인 기준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학위 수여가 악용될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명예박사를 받는 사람에게 학위는 자신의 공로와 경륜을 내세울 수 있으며, 학위를 주는 대학 입장에서는 학교와 인맥과 연줄을 형성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관계는 지역 대학과 지역 의원들의 사이에서 나타난다. 명예박사 학위 수여를 함으로써 의원과 대학 간의 관계가 유지되고, 의원이 지역구와 학교의 이해를 위해 움직일 수 있는 명분이 생기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특혜’의 시발점이 된다. 특히 각 지방자치단체장은 각 지역 대학들의 개발 관련 인허가권을 쥐고 있어 대학과 상당히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명예박사 수여자의 입김이 여기서 작용할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전북대학교와 군산대학교에서 김완주 전북지사, 우리 학교에서 허남식 부산시장, 목표대학교에서 박준영 전남지사 등이 재임 중 관내 대학에서 명예박사를 받았다.
이 같은 ‘특혜’ 사례는 기업인이 학위를 수여받았을 경우에도 똑같이 발생한다. 이들은 명예박사 학위를 받은 이후 ‘기부’의 명목으로 기부금을 낸다. 1993년에는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명예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은 한국야쿠르트 윤덕병 회장이 이듬해부터 대학발전기금 14억 원을 냈다. 프라임그룹 백종헌 회장 역시 전남대학교에서 2005년 명예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은 지 2개월 만에 법대 연구동 건립에 10억 원을 기부하기도 했다. 2005년부터 100년 동안 매년 1억 원씩 기부하겠다는 약정서를 제출한 우림건설 심영섭 대표도 명예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아 입방아에 오른 바 있다. 결과적으로 명예박사 학위와 기부금을 맞바꿨다는 의혹이 제기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같은 행태가 계속해서 이어지자 학내구성원들이 반발하고 나선 경우도 적지 않다. 작년 6월, 경북대학교가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명예 경영학 박사 학위를 수여할 계획이었다. 수여 이유로는 ‘안정적인 국가경영에 이바지했다’를 들었다. 이 소식을 접한 학내구성원들은 크게 반발하고 나섰다. 당시 경북대학교 총학생회는 “대학본부는 명예박사 학위 수여에 대해 객관적이고 정확한 근거를 제시해야 하며, 학위 수여 규정과 맞지 않으면 추진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결국 대학본부은 학위 수여를 취소했다. 이 같은 일은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지난 2월 서강대학교는 마리오아울렛 홍성열 회장에게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하지만 홍성열 회장은 당시 마리오아울렛이 노동자들을 부당 해고해 한창 논란의 중심에 서 있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학생 15명과 마리오아울렛 해고노동자 6명이 학위 수여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학위 수여식으로 향했다. 하지만 학교 측이 부른 경찰이 학생들과 시민들의 통행을 막아섰고, 마리오아울렛 해고노동자 한 명이 연행되기도 했다.
계속되는 학위 수여
남용, 대안은?
최근 명예박사 수여자 수는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하지만 그 수가 항상 늘었던 것은 아니다. 1965년까지는 289명에게, 60년대 중반과 70년대 초반에 594명에게 명예박사가 수여되어 급증 추세를 보였다. 하지만, 90년대 중반까지는 잠시 주춤하기도 했다. 1970년 3월 정부가 ‘명예박사 학위 수여 승인 규정’을 제정하여 통제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1993년 교육법 시행령 개정으로 명예박사 수여 승인권이 대학으로 넘어가며, 몇 명에게 주겠다는 예정자 명단만 보고하게 된다. 원래 대학원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교육부 장관의 승인까지 받아야만 했던 이전절차가 없어진 것이다. 그 이후부터 명예박사 수여가 다시 급증하기 시작해 2000년에 이르러서는 그나마 남아 있던 대학의 수여 예정자 명단 사전 보고 의무조차 사라져 완전히 자율권을 누리게 됐다.
명예박사 학위 수여의 증가와 이에 따른 남용에도 해당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뚜렷한 방안은 없는 상태다. 극단적인 예로 명예박사라는 학위를 없애는 방법이 있다. 실제로 미국의 △MIT △코넬대학교 △버지니아대학교는 명예박사 학위를 아예 수여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불필요한 논란의 소지를 처음부터 제거한 것이다.
또한 학내에서도 잡음이 나오지 않기 위해서는 학내구성원들의 의견 수렴이 필요하다. 각 대학이 수여자를 선정하기 전, 명단 공개를 해야 한다. 그러곤 학생, 교수, 직원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마련돼야 한다. 구체적이지 않은 규정 역시 해결돼야 하는 부분이다. 구체적인 안과 명확한 기준을 마련하여 내부 심사를 강화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