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날 때부터 오른손이 없던 한 프랑스 소년이 지난 달 자신에게 딱 맞는 인공 손을 얻었다. 인공 손을 얻은 소년은 이식수술을 받지 않고도 손가락을 쥐었다 펴며 물건을 잡을 수 있었다. 플라스틱과 스펀지, 고무줄, 나사 등 비교적 단순한 재료로 이뤄 인공 손을 벨크로로 손목에 고정시킨 후 손목을 위아래로 구부리기만 하면 됐다.
생존에 필수적인 부리의 절반(정확히는 윗부리의 절반)을 잃은 채 죽을 위기에 처했던 브라질의 큰부리새 한 마리는 최근 새로운 부리를 얻었다. 기존 자신의 것처럼 매끈한 부리를 단 큰부리새는 현재 먹이를 잡아먹을 수 있을 정도로 적응한 상태다.
위 두 사례에는 공통적으로 3D 프린팅 기술이 사용됐다. 최근 1~2년 새에 국내외 주요 미래유망기술로 많이 언급된 3D 프린팅은 현재 차세대 산업 동력으로 중요시되는 기술이다. 이 기술은 쉽게 말해 컴퓨터 화면 속 3D 모델을 그대로 눈앞에 구현하는 기술이다. CAD나 3차원 모델링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완성한 3차원 데이터를 3D 프린터로 프린팅하는 것이다. 프린팅 방식에는 얇은 막을 층층이 쌓아올려 입체적인 모양으로 만드는 방식도 있고, 합성수지를 둥근 날로 깎아가며 모양을 만드는 방식도 있으며, 전자제품을 한 번에 출력하는 방식도 있다. 어떤 방식을 사용하든 입체 모형을 얻을 수 있다.
사실 이 기술이 처음 개발된 것은 벌써 30년도 전의 일이다. 세계 최초의 3D 프링팅 제품은 컵이었다. 1983년 미국의 발명가 ‘척 헐’이 다른 실험을 하던 중 우연히 아이디어를 얻어 제작했다. 그는 액체 표면에 레이저를 쏴 얇은 동전 모양으로 굳히고, 그 위에 액체를 채우고 레이저로 굳히는 과정을 계속하며 컵을 만들어냈다. 1988년에는 미국의 발명가 스캇 크럼프가 척 헐과는 다른 3D 프린팅 방식을 고안해냈다. 그 역시 글루건을 사용하다가 우연히 아이디어를 얻었는데, 뜨거운 열로 녹인 플라스틱을 층층이 쌓아 제품을 만드는 3D 프린터를 개발해냈다. 그런데 이들은 자신이 개발한 3D 프린터로 창업했지만, 당시에는 별 주목을 받지 못했다. 결국 기술을 사용할 분야를 찾지 못해 본격적인 양산 전, 테스트용 시제품을 만드는 용도로만 사용됐다.
그 오랜 시간 별 존재감 없던 기술이 어떻게 이렇게 주목받게 된 것일까. 상황이 바뀐 건 21세기 들어와서다. 2004년과 2009년, 각각 척 헐과 스캇 크럼프의 특허가 만료되면서 프린터 가격이 저렴해지고,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작년 3D 프린터 관련 핵심 특허권이 줄줄이 만료되면서 접근성이 더욱 향상됐다.
3D 프린터에 사용되는 재료도 기존 고무나 플라스틱에서 더 나아가 금속이나 섬유, 유리, 음식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해졌다. 이로 인해 자신만의 개성을 살린 액세서리나 독특한 모형을 갖는 음식(예를 들어 장미꽃 모양의 파스타)부터 유리 공예품, 복잡한 제트 엔진 부품까지 만들 수 있게 됐다.
무엇보다 기대되는 분야는 ‘보건·의료 분야’다. 환자 맞춤형 의료 도구는 물론 코나 귀 같은 신체 부위까지 찍어낼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이 경우 재료는 콜라겐과 살아있는 연골세포가 든 ‘바이오 잉크’가 사용된다. 살아있는 세포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신체 안팎에서 자랄 수 있다고 한다. 현재 간이나 신장, 뼈, 혈관 같은 인공 장기를 만드는 연구도 한창 진행 중이다. 이러한 인공 장기는 모양이 자연스러울 뿐만 아니라 자신의 세포를 사용하기 때문에 타인의 장기를 이식받을 때 생기는 면역 부작용도 없앨 수 있다.
흔히 3D 프린팅 기술을 가리켜 ‘제조의 민주화’, ‘제3차 산업혁명’으로 표현한다. 하지만 스마트폰으로 물체를 간단히 스캔해 3D 프린터로 출력하는 것을 보면, 누군가의 말처럼 ‘21세기 연금술’이라는 표현이 더 와 닿는다. 비록 연금술까지는 아닐지라도 인류의 삶을 급격히 변화시킬 기술이라는 것은 의심할 수 없다. 하늘을 날기 위해 비행기를 만들고, 우주로 나가기 위해 로켓을 쏘고, 인간의 장기를 만들고…. 어찌 보면 무모해 보이는 인간의 도전은 이제까지 놀라운 성과들을 이뤄냈다. 이 때문일까. 새롭게 시도되는 연구들에 ‘과연 저게 가능할까?’라는 의문이 들면서도 기다려지는 것은.

 유기현 과학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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