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악기가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낼 때는 바로 적절한 조율이 됐을 때다. 마찬가지로 나무가 가장 건강하게 자랄 때는 적절한 햇빛과 물, 양분이 주어졌을 때다. 이렇듯 만물에는 적절한 선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의 수만큼 각자에게는 ‘적절한 리듬’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이다.
학교에선 학교 선생님이, 집에선 부모님이, 수많은 필독서에선 많은 훌륭한 위인들이, 매체에서는 수많은 멘토들이 ‘치열하게 살아라! 실패의 유일한 이유는 ‘노력 부족’이다!잠은 죽어서 평생 잔다!’라고 외치며 조금이라도 쉰다면 ‘너 자신의 죄’라고 말한다. 위인들처럼 하루를 새벽 4시 반에 시작하지 않으면 실패자가 된 듯하고 하루에 잠을 5시간 이상 자기라도 하면 재앙이 일어난 듯 죄책감이 가슴을 파고든다. 그렇게 하루하루 죄책감과 패배감에 사로잡히고 끝내 스스로를 패배자의 덫에 가둔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은 쫓기듯이 높은 기준에 스스로를 몰아붙이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모든 사람들이 에베레스트 산의 정상을 한 달 만에 밟을 수 있을까?그렇지 않을 것이다. 사람은 일정한 메커니즘 속에 짜 맞춰져 개성 없이 동일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기계가 아니다. 100명의 사람이 존재한다면 도착하는 데 걸리는 시간 역시 80가지 이상 존재할지도 모르겠다. 사람에게는 각자에게 맞춰진 적절한 리듬이 있다. 즉 적절한 속도감이 있는 것이다. 어떤 이는 아침형 인간이고 어떤 이는 새벽형 인간이듯이. 어떤 이는 집중력의 시간이 10시간이고 어떤 이는 30분이듯이. 연애가 그렇듯, 조율하는 현악기가 그러하듯, 각자에겐 지금까지의 삶을 살아가며 스스로와 밀고 당기면서 적절하게 자리 잡은 리듬이 있는 것이다. 모두가 새벽 4시 반에 일어날 필요도, 모두가 하루에 5시간을 잘 필요도, 모두가 화장실에서도 공부를 해야만 할 필요가 있는가?그렇게 하면 다들 성공이 보장되는가?
스스로의 등대, 자신의 길을 비추는 등대의 빛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길을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다면, 원하는 곳에 도달하기 위해 현재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면 그 속도가 빠르든, 느리든, 점프하다가 쉬었다 다시 점프하는 타입이든, 꾸준히 걸어가는 타입이든 그것은 각자의 방법인 것이다. 자신만의 모습, 나의 개성이라는 걸 알고 인정하는 것이다. 인생을 단 한 번밖에 살 수 없듯이, 에베레스트 산을 단 한 번만 갈 수 있다면, 산은 오르막이라 힘들 수밖에 없다면, 좋아하는 눈, 꽃, 동물, 하늘, 공기, 바람 등을 보고 느끼고, 다음 여정을 위해 쉬어가기도 하면서 그렇게 자신이 할애하고 싶은 곳에 시간을 할애하면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자신만의 리듬에 맞춰 힘들 수밖에 없는 고단한 여정 속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이해하고 인정하여 즐거운 곳곳에서 웃어가며 고단하지만은 않은 여정을 만들어 나아가는 것. 그렇게 단 한 번밖에 없는 자신의 여정을,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개성적인 자신만의 리듬에 맞추어 온전한 자신의 길로 닦아가며 나아간다면 먼 훗날 고단한 여정을 마치고 되돌아봤을 때 그 여정이 힘들었을지라도 즐겁고 아름다웠다는 걸 추억할 수 있지 않을까?  

 강현주(심리학 석사 15)

 

저작권자 © 채널PNU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