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 규모 9.0의 대지진이 일본을 덮치면서 후쿠시마 제1원자력 발전소 1~3호기의 전원이 멈췄다. 국제 원자력 사고 등급(INES)의 최고 단계인 7단계(Major Accident)를 기록한 이 사고는 전 세계에 ‘핵 발전’의 위험성을 각인시켜주었고, 세계 탈핵 운동에도 힘을 실어주었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독일 △벨기에 △스위스 △이탈리아 등의 국가가 이른바 ‘탈핵’을 결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사건이 벌어졌던 아시아의 분위기는 다르다. 한국을 비롯한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에 있는 원자력 발전소는 전 세계 원전(438기)의 23%(101기)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대만, 동아시아 탈핵 선도할까

  원자력 발전소(이하 원전)로 둘러싸인 동아시아 중 유일하게 탈핵의 불씨가 타오르는 곳이 있다. 바로 대만이다. 지난달 20일, 대만의 제4원전(룽먼원전 1·2호기)이 건설되고 있는 궁랴오 지역을 찾았다. 원전 시설은 관광지로 유명한 푸롱 해변에 자리잡고 있었다. 궁랴오 시가지와도 멀지 않았다. 하지만 원전으로 들어가는 길은 굳게 닫혀있었고 건물 주변에는 관리되지 않은 풀만 무성했다. 공정률 98%에 이르던 제4원전 건설이 중단됐기 때문이다.
본래 퀸산과 쿠오생, 마안산 3곳에서 총 6기의 원자로를 가동하던 대만 정부는 2000년부터 궁랴오 지역에 제4원전을 추가로 건설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후쿠시마 사고 이후 대만 내 반핵 운동이 거세지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작년 4월부터 대만 제1야당(민진당)의 전 대표가 무기한 단식투쟁을 진행했으며, 시민 20만여 명이 새벽 거리로 쏟아져 나와 원전 반대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대만 정부는 전국적인 반핵 운동의 물결 속에서 제4원전 건설 중단과 봉인을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 청년초록네트워크 강순 집행위원은 “후쿠시마 사고 이후 대만에서는 원전의 위험성이 크게 대두됐다”며 “대만 국민들의 적극적인 탈핵 운동이 신규 원전 폐쇄에 큰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대만의 탈핵운동은 에너지 전환 운동 단계로 진입했다. 신규 원전 건설 외에 기존 원전의 연장을 막아 온전한 탈핵을 이루기 위해서는 에너지 전환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고리 1호기의 퇴장, 폐쇄까지는 첩첩산중
한편 우리나라는 원전 운영 37년 만에 처음으로 원자로 가동 중지 계획을 세웠다. 지난 7월 22일, 산업통상자원부가 <제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통해 고리원전 1호기의 영구 정지 계획을 발표한 것이다. 이에 따라 1978년 상업운전을 시작한 고리 1호기는 2017년 6월부터 가동이 영구 정지될 예정이다.
하지만 남은 과제가 만만치 않다. 원전은 폐로와 사용후핵연료 처리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불완전 기술’이기 때문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017년 고리 1호기 영구 정지 이후 해체까지 최소 15년 이상이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원자력안전위원회 이은철 위원장은 해체 작업이 예상보다 지연될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했다. 우리나라는 원전 해체에 관한 법령이 미비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원전 폐쇄에 필요한 38가지 핵심 기술 중 21개 기술을 확보하지 못했다.
방사성 폐기물 처리도 문제다. 원자로 내부에서 나오는 ‘고준위 폐기물’부터 장갑, 방제복 등 상대적으로 피폭량이 적은 ‘저준위 폐기물’까지 처리해야 할 방사성 폐기물이 많다. 폐기물의 방사능 성분이 완전히 없어지는 데는 100만 년 이상 걸리기 때문에 지하 1,000m 이상의 깊은 곳에 저장고를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그런 부지는 찾기도 어렵고, 찾았다 한들 주민들이 반길 리가 만무하다.
고리 1호기의 폐쇄가 확정됐지만, 여전히 우리나라는 원전 대국이다. 2015년 현재 운영되고 있는 원자로의 수는 총 24기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원전 밀집도(0.217)를 기록하고 있다. 앞으로의 상황은 더욱 좋지 않다. 내년 초 준공을 앞두고 있는 신고리 3·4호기를 비롯해 신고리 5·6호기와 신한울 1~4호기, 총 8기의 원자로 건설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근 산업통상자원부는 신규 원전 2기를 추가로 건설할 계획임을 밝힌 상태다. <제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강원도 삼척시 또는 경북 영덕군 지역에 2기를 신규 건설한다’는 계획을 포함한 것이다. 세계 원전 밀집도 2위인 벨기에가 2003년 탈핵을 결정해 2025년 원전 완전 폐로를 앞두고 있는 것과 대조적인 모습이다.
특히 부산 인근 지역은 세계 최대의 핵 단지로 성장하고 있다. 현재 부산광역시 기장군에는 고리 1~4호기와 신고리 1·2호기가 가동되고 있다. 신고리 3·4호기는 내년 초 준공을 앞두고 있으며, 신고리 5·6호기의 착공은 올해 안에 시작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신고리 5·6호기는 시설용량이 1,400㎿ 규모로 고리 1호기의 2.4배에 해당하는 데다, 원전의 수명 또한 60년에 이른다. 2017년부터 고리 1호기가 폐로 된다고 하더라도, 이들 원자로가 들어서면 기장군 일대는 무려 9기의 원자로가 가동되는 세계 최대 핵 단지가 된다.

멀고 먼 탈핵의 길
동아시아 국가들의 미래도 어둡다. 현재 세계에 건설되고 있는 원자로 65기 중 46%(30기)가 동아시아에 건설되기 때문이다. 세계원자력협회(WNA) 역시 동아시아에서 원전이 더욱 확대될 것이라 보고 있다. 지난 7월 발표한 보고서 <Asia’s Nuclear Energy Growth>를 통해 2020년 세계 핵 발전 점유율의 대부분을 중국, 일본, 인도, 한국 가운데 세 나라가 차지할 것이라고 예측한 것이다.
신규 원전을 폐쇄한 대만과 후쿠시마 사고를 겪었던 일본 역시 완전한 탈핵까지는 갈 길이 먼 상황이다. 대만은 최근 건설된지 30년이 넘은 원전 제1~3원전의 수명 연장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다. 대만의 제1원전은 1978년 상업운전을 시작해 37년째, 제2원전은 1981년부터 34년째 가동 중이며, 제3원전은 2025년에 허가가 만료된다. 예정대로라면 이 원전들은 2025년 모두 폐쇄돼야 한다. 그러나 타이완전력(台電)공사가 제1원전의 20년 수명연장을 신청하면서 논란이 시작됐다. 이는 현 대만 정부가 후쿠시마 사고 이후 선포한 ‘원전 퇴역을 연장하지 않겠다’는 공약을 어긴 것이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원전 제로’ 상태를 유지했던 일본도 최근 다시 원전 가동을 시작했다. 일본이 43개 원자로를 가동 중지한 지 23개월 만이다.

핵의 위협 앞에 국경은 없다
동아시아 국가들이 원전 강국으로 떠오르는 사이, 아시아인들의 안전은 위협받고 있다. 특히 일본과 중국은 활성단층 위에 원전이 입지해 있어 그 위험성이 더 크다.
한국·중국·대만·일본에서 원전 반경 30km 안에 살고 있는 사람 수는 3,341만 명(2010년 기준)에 이른다. 원전 반경 30km는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방사선비상계획구역’으로 정하라고 권고한 범위다. 원전에서 방사능 누출 사고가 일어날 경우를 대비해 대피시설과 방호물품 등을 미리 준비해야 하는 구역이라는 의미다.
그러나 방사능의 위협은 원전 반경 30km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 강순 집행위원은 “후쿠시마 사고가 남긴 가장 큰 교훈은 원전 사고에는 국경이 없다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한 나라만 탈핵을 이뤘다고 해서 핵 사고의 공포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탈핵을 위해 전 세계의 공조가 필요한 이유다. 강순 집행위원장은 “국경을 넘어 세계가 함께 탈핵을 이뤄나가야 한다”고 전했다.

   
 2000년 건설되기 시작한 대만의 룽먼원전은 국민들의 반핵 운동으로 준공을 앞둔 작년에 폐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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